萍 - 계류지 ㄱ ~ ㄹ/광복 70년… 물건의 추억

24 옛 택시 미터기, 캔맥주 5개 무게… 급정거 때 승객 머리 때리기도

浮萍草 2015. 10. 29. 09:24
    1969년 4월 30일 저녁 서울 시내를 달리던 택시 안에서 보기 드문 사망 사고가 일어났다. 
    사람을 피하려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조수석 승객이 숨진 것. 원인은 택시 미터기였다. 
    급정거하는 순간, 대시 보드 위에 버티고 있는 큼지막한 기계식 미터기에 승객이 머리를 찧은 것이다(조선일보 1969년 5월 1일자). 
    요즘 미터기는 카오디오 부근에 쏙 파묻혀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 반세기 전엔 무지막지하게 큰 '쇳덩이'였다. 
    1960년 11월 시험 도입된 일본제 미터기의 크기는 가로 10.5㎝, 세로 12.2㎝, 폭 7.1㎝나 됐다. 
    무게는 1.8㎏으로 캔맥주(355mL) 5개와 맞먹었다. 
    미터기 한 대 값이 7만5000환. 
    요즘 물가로 약 104만원이나 되어 많은 기사는 월부로 구입했다. 
    택시 미터기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건 1962년 4월 17일부터다. 
    택시 300대가 '자동요금계산기'를 달고 서울 시내를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 보급된 국산 미터기는 1주일에 서너 번씩 고장이 났다. 
    그러니 당국도 미터기 부착을 밀어붙이지 못했다. 
    1963년 8월까지도 서울 택시 2929대 중 약 500대가 미터기 없이 달렸다(조선일보 1963년 8월 9일자).
    1970년대 택시마다 조수석 쪽에 돌출돼 있던 택시 미터기. 승객들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물건이었다.

    구식 미터기는 바퀴 회전을 전달받은 뒤 표준적 타이어 둘레를 기준으로 주행 거리를 잡아 요금을 표시했다. 그러다 보니, 눈 내린 겨울날 체인을 감으면 바퀴 둘레가 약간 늘어난 셈이 되어 같은 거리를 달려도 미터기가 덜 돌아갔다. 1500원 나오던 거리를 체인 감고 달리면 1200원만 나오자 일부 택시들은 빙판길에서도 체인을 안 끼웠다. 이와 반대로 닳고 닳아 지름이 줄어든 타이어로 주행하면 요금이 더 나오자 택시에 일부러 헌 타이어를 끼우는 일까지 있었다. 1990년대 택시 미터기라면 전광판 안에서 열심히 달리는 조그만 말(馬)이 연상된다. 1960~70년대 미터기는 요금 올라가는 '찰칵' 소리로 기억된다. 소음 많던 옛날 자동차 안에서도 그 기계음만은 또렷이 들리며 종종 승객들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어쩌다 3200원만 들고 택시를 탔던 한 작가는 찰칵찰칵 소리에 가슴 졸이다 숫자판이 '3200'이 되자 컴컴한 터널 안에서 도중하차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택시 미터기는 늘 빨리 돈다. 호주머니가 가벼우면 더 빨라졌다. '모범택시 미터기처럼 흐르는 시간'이란 비유법도 나왔다. 외국도 비슷한 듯, 러시아 작가는 작품에 이런 구절을 썼다. "나이 서른 넘으면 세월은 택시 미터기 돌아가듯 지나간다."
    Chosun ☜       김명환 조선일보 사료연구실장 wine8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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