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광복 70년… 물건의 추억

22 한 집 1개씩… 'TV안테나의 숲' 수신 상태 조정하다 감전死도

浮萍草 2015. 10. 8. 08:54
    1970년대 후반 난시청 지역 집집마다 높다랗게 세운
    TV 안테나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저것들 다 가짜 아닙니까?" 1972년 9월 남북 적십자 회담 때 서울에 온 북한 기자는 아파트 옥상마다 숲처럼 수없이 꽂힌 TV 안테나를 보고 그렇게 물었다. 국민을 웃긴 북한 측의 '황당 질문'이었다(조선일보 1972년 9월 14일자). 당시 서울의 TV 보급 대수는 50만9000대. 약 2.3가구당 한 대꼴이었다. 그땐 아파트 주민들도 집집마다 하나씩 커다란 잠자리 모양의 안테나를 옥상에 올렸다. 한 대로 여러 가구가 함께 쓰는 공시청(共視聽) 안테나나 중계 유선 방송이 태어나기 전이었다. 한 동네에서 TV 안테나가 올라가는 집의 순서는 재력(財力) 순위와 대체로 일치했다. 안테나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도둑을 불러들이는 확실한 표적도 됐다. 옛 TV 안테나란 여간 까다로운 물건이 아니었다. 방향을 잘 맞춰 놓아야만 전파가 제대로 잡혔다. 얼마나 방향을 탔는지 1970년대 후반 동독 주민들이 공산권 TV에 염증을 느껴 재미있는 서독 TV를 몰래 보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TV 안테나를 서독 쪽으로 돌려놓는 것이었다. 서독 TV를 보는 동독 주민이 75%에 이르자 놀란 동독 당국은 안테나가 서독 쪽으로 돌려진 집을 색출하는 유치한 방법을 쓰기도 했다(경향신문 1976년 11월 30일자). 바람 불어 안테나 방향이 틀어지기라도 하면 TV 화면은 엉망이 됐다. 이럴 때면 식구 중 건장한 남자가 지붕에 올라가 안테나를 손봤다.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며 아래를 향해"어때? 잘 나와?"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면 방에선 "어! 좋아요. 조금만 더…"라고 맞고함을 쳤다. 안테나 때문에 자기 집 지붕에 생전 처음 올라가 본 사람이 많았다. 영화화된 조해일의 소설 '지붕 위의 남자'에서는 안테나를 고치려고 지붕 위에 올라가 본 사내가 맛본 '신선하고 홀가분한' 모험의 느낌이 언급됐다. 모험치고는 너무 위험한 모험이었다. 안테나 조정하려다 사람 잡는 수가 있었다. 1971년 4월엔 옥상의 안테나를 만지던 청년이 6000v 고압선에 감전돼 사망했다. 이를 잊었는지, 두 달도 안 돼 똑같은 사고로 또 세 사람이 한꺼번에 감전사했다. '지붕 위의 참사'는 198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벼락이 안테나에 떨어지는 바람에 안방 TV가 폭발하기도 했다. 신문은 '안테나 잘못 달면 벼락을 중계하는 TV가 된다'고 경고했다(조선일보 1981년 5월 21일자). 지상파도 유선으로 수신할 수 있게 되면서 1가구 1안테나 시대는 저물었다. 하지만 불과 30여년 전까지도 우리는 선명한 TV화면을 위해 목숨 걸고 지붕 위에 올라갔다.
    Chosun ☜       김명환 조선일보 사료연구실장 wine8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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