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광복 70년… 물건의 추억

21 풀 죽은 솜 되살린 마법의 '솜틀'… 솜사탕 같은 러브신 배경 되기도

浮萍草 2015. 10. 1. 09:55
    솜틀을 이용해 헌 솜을 새 솜으로 재생해 주던
    1960년대 솜틀집 모습.박물관에 재현된 모형이다.
    1963년 1월 서울시 위생시험소가 시내 환경오염 실태를 조사한 끝에,주택가에 흔한 업종 하나를 '연탄 공장 못잖게 먼지를 일으키는 시설'로 지목했다. ' 솜틀집'이었다. 쉽게 말해 헌 이불솜 재생하는 집이다. 솜틀집이 얼마나 많았는지, 서울 공기를 오염시키는 대표적 업소로 꼽힌 것이다. 1960~1970년대엔 동네마다 두어곳씩이나 됐다. 이불을 몇 년 덮어 솜이 뭉치고 푹신한 느낌이 떨어지면 솜을 삶아 빤 뒤 솜틀집에 맡겼다. 풀 죽은 솜도 솜틀에 넣고 돌리면 마술처럼 부풀어올라 새 솜이 됐다. 요즘 오리털 점퍼를 세탁해 말린 뒤 두드려 주는 것과 똑같다. 겨울이 유난히 추웠던 옛 시절, 솜틀집이란 폭신폭신한 솜이불처럼 따뜻한 느낌의 공간이었다. 너나 없이 어려웠기에 누리끼리해진 솜덩이 하나도 버리지 않고 틀고 또 틀어 되살려 썼다. 동네 솜틀집에선 대개 아낙네들이 머릿수건 두르고 마스크 쓴 채 땀 흘려 솜을 틀었다. 솜먼지가 날리는 곳이었지만 동네 아줌마들 수다 떠는 사랑방이 되기도 했다(경향신문 1997년 9월 19일자). 1980년대 어느 솜틀집은 하루에 약 100관(375kg), 즉 이불 약 100채 만들 솜을 틀었다. 솜틀집은 198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줄어든다. 화학솜에 이어 오리털 이불까지 나타나 목화솜을 밀어냈다. 게다가 난방 시설이 발달하다 보니 한겨울에도 굳이 두꺼운 솜이불을 덮을 필요가 없어졌다. 공학박사 이면우 교수는 낡은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세상 변화를 모르다 망한 기업을 '캐시밀론 이불을 등한시 하다가 사라진 솜틀집'에 빗댔다(조선일보 1999년 1월 22일자). 박물관들은 옛 서민 동네를 재현하면서 연탄 가게,노점,공동 화장실과 함께 솜틀집을 빼놓지 않았다 (조선일보 2005년 10월 19일자). 솜틀집은 잊힐 만하면 한번씩 추억된다. 탈탈탈 솜틀 돌리던 소리는 생활 소음에 가까웠지만 한때는 방아소리,새소리 등과 함께'정감 있는 소리'로 전화를 통해 서비스됐다(조선일보 1992년 12월 15일자). 2010년 방영된 6·25 배경의 TV 드라마'로드 넘버원'에서 남녀 주인공(소지섭·김하늘)은 솜틀집에서 파격적 러브신을 선보였다. 바닥에 깔린 솜들은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비치고, 솜털 먼지는 꽃가루처럼 날리며 낡은 솜틀집이 몽환적 공간이 됐다.
    솜틀집 아들로 자라난 청년이 미술 작가가 되어 솜의 이미지를 줄기차게 작품으로 빚어내고 있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솜을 먹고 자랐다'는 작가 노동식씨는 지난 4월 열린 전시회에도 솜의 추억과 아버지의 온기를 시각화한 작품을 선보였다. 고단한 시절의 솜틀집이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선 따뜻한 공간이다.
    Chosun ☜       김명환 조선일보 사료연구실장 wine8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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