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잊혀진 유라시아 이야기

17 여대생이 강의 시간에 아이 데리고 와 수업하는 나라

浮萍草 2015. 10. 13. 10:08
    부터 결혼은 인륜지대사라 한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결혼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이다. 
    그런데 남녀가 모두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연애결혼이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남녀가 자유롭게 연애를 할 수 있다는 사고는 근대화와 더불어 생겨난 매우 근대적 개념이다. 
    따라서 낭만적 사랑과 연애결혼은 중세인의 세계관과 삶의 패러다임의 변화 결과 생겨난 근대성의 상징물이다. 
    우리나라도 근대화와 더불어 등장한 신여성들이 근대성 실현의 하나로 주장했던 것이 자유연애와 자유결혼이 아니던가. 
    그렇게 보면,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유연애를 할 수 있도록 세상이 변한 것도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구소련에서 독립한 신생독립국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국가는 상황이 어떨까.
    오랜 과거의 결혼 전통에서 유목민인 중앙아시아인들에게는 이른바 “납치 혼”이 존재했다. 
    마음에 드는 여성을 납치해서 신부로 삼는 제도이다. 
    이미 사라진 관행이라고 믿고 싶기는 하지만 여전히 유목 전통이 비교적 강하게 남아 있는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러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아 오랫동안 서구 문화를 접해왔던 중앙아시아의 투르크족에게 자유연애만큼은 아직 보편화하지 않았다. 
    이들은 관습적으로 아직도 중매결혼을 선호한다. 
    중매를 시작하고 결혼식을 올리기까지의 과정이 대체로 한 달 남짓에 불과하다. 
    이렇게 서둘러 결혼을 진행하고 연애결혼을 터부시하는 이유는 혹시라도 지역 공동체에서 불미스러운 소문에 휘말리게 될까 하는 전통사회 특유의 두려움 때문
    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만일 젊은 여자가 연애를 하다가 들키거나 외간 남자와 손이라도 잡고 걸어 다니다가 들키면 당장 결혼해야 한다. 안 그러면 가문에 대한 평판이 매우 나빠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미혼의 여자가 외간 남자와 사귄다는 것을 부정한 행위로 간주하여 그것을 커다란 가문의 수치라고 여긴다. 이런 불미스런 사태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부모들은 자기 딸이 연애를 시작하면 무조건 결혼을 시킨다. 심지어는 가문명예를 실추시킬 싹을 미리 자르기 위해 일찌감치 시집을 보내버리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혼 연령도 매우 이르다. 대부분 조혼이 이루어진다. 결혼연령은 16세부터 시작되기도 하는데 대체로는 18세부터가 결혼 적령기로 여겨진다. 그래서 대학 캠퍼스에서 임산부 여학생들을 종종 보게 된다. 출산을 앞두고 있어도 여학생들은 휴학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몇 달씩 학교를 나오지 않고 시험도 보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 출산에 대해서 교수들이나 학교 행정 당국은 무척 관대하다. 교수들은 간단한 리포트 정도로 알아서 학점을 주는 것이 관행이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이면 미혼인 여학생의 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런 조혼 풍습 때문에 어린 신랑 신부는 생활력이 없거나 학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대부분 펭귄족으로 살아간다. 아이를 낳아도 부양은 전적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의 몫이다. 돌잔치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해준다. 경제적 문제 때문에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이른바 한국의 삼포 세대가 중앙아시아에 등장하지 않는 것은 엄밀하게는 자식의 육아와 생활비를 부모가 공동 으로 분담하는 있기 때문이다. 학생 부부의 육아는 당연히 시어머니의 몫이다. 그런데 가끔 대학교 3~4학년 수업에 여학생들이 집에서 돌봐줄 사람이 없다면서 아이를 데리고 수업을 듣기도 한다. 서너 살 된 아동은 수업을 듣는 엄마 곁에 앉아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그림책을 읽기도 한다. 그러다가 지겨워지면 목을 놓아 울기 시작한다. 어린 대학생 엄마가 당황해서 아이 입을 틀어막으면 강의를 진행하던 교수님은 너그럽게“아이가 힘들어하니 그만 집에 가봐라”며 조퇴를 허용해주신다. 임신,출산,육아를 담당하는 여성에게는 매우 관대한 사회이다. 중앙아시아 투르크 민족에게 중매문화가 보편적이지만 그렇다고 전문 중매쟁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남자가 동네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가 생기면 자기 어머니를 그 집에 중매쟁이로 보내 의사를 묻는 형태이다. 중매쟁이는 나이가 지긋하고 덕망이 있는 사람을 선호하지만 대부분 친어머니나 누이,형,친지 등이 담당한다. 중매쟁이의 첫 번째 청혼이 거절당하더라도 남자는 시간을 두고 연속적으로 몇 차례 더 중매쟁이를 ‘파견(?)’한다. 생각할 시간을 주면 마음을 돌릴 것이라는 계산에서이다.
    Premium Chosun        오은경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euphra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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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일처제 투르크인 순결이나 평판에 집착하지만 고려인은?
    혼식은 최대한 성대하게 하는 것이 투르크인들의 습성이다. 
    자존심이 강한 투르크인들은 남에게 보여 지는 자신의 모습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허세와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투르크인들의 결혼식은 매우 성대하다. 
    자신의 위세와 권력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것이 결혼식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투르크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의 미래 결혼식에 쓸 돈을 그때부터 모으기 시작한다.
    평생 벌어서 모은 돈을 결혼식을 위해 모두 쏟아 붓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식에는 그동안 알고 지냈던 모든 사람들을 초대한다. 
    최대한 많은 인원이 모여야 혼주의 체면이 산다고 믿는 것이다. 
    과거 냉수 마시고도 이를 쑤시는 우리의 허세나 최근 결혼식 하객 알바까지 등장시켜 그럴 듯한 결혼식을 올리려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렇듯 성대한 결혼식을 치룬 투르크인들은 아직도 보수적 전통이 강하기 때문에 결혼 후 문제가 생겨도 여성들이 이혼을 결심하기란 쉽지 않다. 
    남편이 폭력을 휘둘러도 주변의 눈이 두려워 참을 수 있을 만큼 참고 살려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심한 가정폭력, 알코올 중독 등의 이유로 이혼을 하게 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면 친정에서 이혼한 딸을 기꺼이 받아준다.
    구소련 치하에서 만들어진 사회주의 법을 따르고 있어서 이혼절차나 과정이 그리 어렵지는 않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쉽게 이혼할 수 있다. 
    같은 이슬람 문화권이라 해도 아랍 사회처럼 딸이 이혼 당하고 돌아왔다고 해서 가문의 수치라며 명예살인을 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이혼하고 돌아온 딸의 자녀는 친정부모가 친자식처럼 돌봐주고, 딸이 경제력과 생활력이 없으면 당연히 부양을 해준다. 
    게다가 아이의 외삼촌이 기꺼이 아버지 노릇을 해준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한편, 공식적으로는 일부일처제이지만 이슬람 율법에 따른 이맘 집도 하에 비공식 결혼을 올리기도 한다. 이렇게 두 번째 부인을 얻으면 호적에는 올릴 수 없지만 관습적으로 이들은 부부로 인정된다. 호적에 오르지 않은 두 번째 부인과 결혼생활을 하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합법적인 부부는 아니지만 관습에 따라 사람들은 두 사람을 부부로 대우해준다. 다만,여행을 가서 호텔에 숙박할 때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혼인증명서를 제출해야 한 방에 투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은 거의 130개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다문화 사회이기 때문에 같은 나라에 살고 있다 해도 우즈베크나 키르기스 등의 투르크인들과 러시아 문화에 완전히 동화된 타민족의 삶의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특히 한민족인 고려인만 해도 이들의 결혼과 이혼은 같은 나라에 사는 우즈베크인에 비해 훨씬 자유롭다. 러시아 문화와 삶의 방식을 따르는 고려인도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가 되면 거의 결혼한다. 그러나 순결이나 평판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우즈베크인에 비하면 현저한 사고와 관습 차이를 보여 고려인은 결혼 전에 신랑 신부가 동거를 하는 경우도 흔하다. 게다가 평생 세 번 이상 결혼하는 고려인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서로 미성숙한 상태에서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관계로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 후 최대한 10년 정도 버티다 헤어지는 사례가 많다. 자녀를 한명 정도 두는 삼십대 중반의 이혼 남녀들은 아이가 대학을 들어가고 사십 정도가 되면 또 한 번 결혼 한다. 이미 인생을 어느 정도 체험하고 성숙한 상태에서 결합한 재혼은 성공적인 확률이 높다. 그런데 배우자가 사망하거나 부득이한 사유로 또 이혼을 해서 60세 정도 되면 다시 황혼 결혼을 맞이한다. 황혼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80세가 다 되어가는 러시아의 고려인 작가 아나톨리 김은 현재 네 번째 신혼을 즐기고 있다. 재혼한 고려인들의 자녀는 어머니에게 양육권이 자동으로 넘어가므로, 여자의 경우 전남편의 아이와는 함께 살지 않고 자신이 낳은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한집에 살기 보다는 가까운 거리에서 따로 살게 하고 보살펴 준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때만 함께 사는데, 함께 살더라도 자녀는 어머니의 새 남편이나 아버지의 새 아내를 아버지나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도 “우리 엄마의 남편” 혹은 “우리 아버지의 부인”이라고 소개한다. 고려인들은 부모일지라도 자녀의 결혼 결정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유럽과 러시아의 영향 탓인지 그들은 자녀의 결혼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강요보다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려 노력한다. 다양한 결혼제도가 공존하는 프랑스에서 미래학자 파비엔 구 보디망은 “결혼은 없어지지 않고 진화할 것이며 앞으로는 제도권 밖의 다양한 형태의 결혼이 인정될 것이다” 말한 바 있다. 같은 시대, 한 나라에서 민족에 따라 다양하게 공존하는 결혼제도는 결혼이 어떻게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이 결혼제도 역시 인간의 발명품이다. 인간을 위한 결혼 제도 인간을 발목 잡지 않는 제도로 진화하여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Premium Chosun        오은경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euphra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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