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잊혀진 유라시아 이야기

16 낙제 거듭하다 퇴학당한 학생이 졸지에 대통령 되더니…

浮萍草 2015. 10. 2. 23:49
    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를 꼽으라면 북한과 쿠바를 들 수 있다. 
    “인간이 아닌 이데올로기를 섬겨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 또 한 나라 투르크메니스탄을 추가시킬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앞의 나라들은 “깡패국가(rogue state)”로 분류되어 온 것에 비해 투르크메니스탄은 적어도 이웃국가에 아무런 위협을 가하지 않는 “착한 나라”
    라는 사실이다.
    유라시아 대륙 중앙아시아에 자리 잡은 투르크메니스탄은 위로는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남쪽과 서쪽으로는 이란과 카스피 해와 
    접하는 나라이다. 
    언어는 알타이어족 투르크 어군에 속하며 터키어와 아제르바이잔어와 가장 가깝다. 
    이들 세 민족 모두 오우즈 투르크 족의 후예이다.
    투르크멘 족은 원래 유목민이지만 10-11세기 가즈나 왕조 시대에는 카스피해에서 이란,아프가니스탄,중앙아시아 영토를 석권하고 인도까지 원정하여 이슬람과 
    페르시아 문화를 인도로 전파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으며 18세기 유라시아권에서는 셰익스피어와 버금가는 시인 마흐툼쿨리를 배출하기도 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19세기 말 러시아에 합병되었다가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1991년 독립을 한 신생국가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초대 대통령(1991~2006)으로는 당시 투르크메니스탄 소비에트 공산당 제1 서기장이었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가 취임했다.
    1998년 세워진 높이 75cm의 아치형 동상.꼭대기에 있는 것이
    높이12m에 이르는 니야조프 전 대통령 황금상이다. /조선일보 DB
    니야조프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소비에트 고아원에서 자랐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공업 전문대를 졸업한 이후 모스크바에서 학업을 계속했으나 낙제를 거듭하다 퇴학당하고 만다. 하지만 그는 공산당원으로서 열렬히 활동하다 고르바초프에 의해 지역당서기장으로 발탁 되었으며 예기치 않은 소련의 붕괴로 인해“무임승차”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자신의 이름을“모든 투르크멘 족의 수장”이란 뜻의“투르크멘바쉬” 로 개명했다. 그의 공식적 호칭 앞에는 항상“각하”와 더불어 기다란 수식어가 붙었다. 그를 찾아온 또 다른 뜻밖의 행운이 있었다면 이 나라가 천연가스와 석탄 매장량이 매우 풍부한 자원 부국이라는 사실이었다. 세계 4대 천연가스 생산국인 투르크메니스탄은 중국과 카스피 해로 가스관을 연결해 상당한 국부를 축적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니야조프 대통령은 모든 국민에게 전기,수도,가스,그리고 정제 소금을 2020년까지 무료로 공급한다는 특별 법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니야조프는 공산주의의 흔적을 개인의 우상화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도시들과 별들, 그리고 달의 이름까지“투르크멘바쉬”라는 자신의 이름을 따게 하였다. 마치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으로 숭배하듯 그를“세계 투르크멘 족의 아버지”로 숭배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니야조프에게는 나름 기발한 면도 있었다. 그는 매월의 명칭과 일주일의 명칭을 자기 식대로 바꿔 모든 달력의 표기를 대체했다. 예를 들어,월요일은“첫째 날”,화요일은“젊은 날”,수요일은“기분 좋은 날”,목요일은 “정의의 날”,금요일은“어머니 날”(니야조프는 자신의 어머니를 자주 기릴 정도로 어머니 에겐 효자였다),토요일은“영혼의 날”,일요일은“휴식의 날”로 명칭을 바꿔버렸다. 그는 참외를 지나치게 좋아한 나머지 8월의 둘째 주 일요일을“참외의 날”로 정해 우리 나라의 추석명절처럼 만들었다. 무언가 투르크멘식의 주체사상이 떠오른다. 게다가 니야조프는 자신의 저서“루흐나마(영혼의 책)”을 발간하여 모든 대중 도서관을 폐쇄해버린다. 어차피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 국민인데 쓸데없는 책들을 읽느니 자신의 저서 한 권만 이라도 제대로 읽으면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이 책을 기리기 위해 9월의 명칭도 “루흐나마”로 바꿔버린다. 모든 대학 입시생들,운전면허 준비생들,또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야 했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이 책과 견줄 수 있는 유일한 책은 코란이다.
    Premium Chosun        오은경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euphra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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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 소녀 수백 명 '하렘(북한식 기쁨조)' 만들어 쾌락 즐기다 심장마비 사망
    야조프는 법제도 개편의 목적으로 사형제를 영구 폐지하고 매년 만 명의 죄수를 사면해왔다. 
    그럼에도 유엔 인권위원회의 보고서를 보면 이곳에서 최악의 인권위반사례가 빈발한다고 한다. 
    개인우상화가 절정에 이르는 2000년에는 모든 PC방이 폐쇄당하고 국민의 0.7%인 3만 6천명만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허가를 받는다. 
    2004년과 2005년에 걸쳐 수도를 제외한 전국의 의사,간호사,양호교사들은 모두 해직당하고,지방의 모든 병원은 폐쇄명령을 받는다.
    병이 나면 누구나 수도인 아슈하바트로 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모든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 대신 대통령인 니야조프에게 선서를 해야만 했다. 
    2006년에는 모든 연금수혜자의 3분의 1에 연금지급중단 명령이 내려졌다. 
    자식들을 놔두고 어른들이 국가에서 연금을 받으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였다. 
    그러면서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 연금수혜자들이 그만큼 사망해서 중단된 것이라고 외국 언론에 변명했다.
    니야조프는 2005년 국가주도의 모든 공연,명절 및 결혼식을 포함한 문화행사 그리고 TV 방송에서 립싱크를 금지했다. 
    녹음된 음악은 음악예술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모든 발레, 오페라, 서커스 공연을 금지했다. 
    이런 장르의 예술은 투르크메니스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또한 니야조프는 수도에서 모든 개를 퇴출시켰는데,개에게서“향기롭지 못한 냄새”가 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수도 근처 사막 한가운데에 사는 사막 거주민들도 스케이트를 타라고 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이스링크를 세우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결국 2008년 “아이스 궁전”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최초로 사막 한가운데에 실내 스케이트장이 건설되었다.
    베르디무함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왼쪽), 베르디무함메도프 황금상. /조선일보 DB

    니야조프는 1997년 폐암수술을 받고 담배를 끊었다. 그 이후로 그는 전국의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금지했고 모든 공무원에게 금연령을 내렸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담배를 씹는 행위도 금지되었다. 그리고 모든 국민에게 금니를 해서는 안 되니 금니를 모두 뽑으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대신 자신이 어린 시절 경험했던 기억을 교훈 삼아 이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뼈를 씹으라고 권장했다. 그러면 이도 빠질 확률이 낮아진다고 했다. “어렸을 적에 나는 강아지들이 뼈를 씹으면서 이가 튼튼해지는 것을 봤다. 이가 빠진 사람들이 뼈를 씹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명령은 니야조프 사후에 대통령이 된 당시 보건부 장관이었던 베르디무하메도프에 의해 시행되었다. 베르디무하메도프는 치과의사 출신이었다. 니야조프는 TV보도기자와 남녀앵커들 모두에게 화장을 금지시켰다. 방송 중 남자인지 여자인지 식별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10대 소녀들을 수백 명 차출하여 하렘(북한식 기쁨조)를 만들어 중세 왕조의 쾌락을 즐겼다. 그러다가 결국 그는 2006년 12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러나 수도의 중앙광장에 세워진 그의 황금상은 매일같이 태양의 방향을 따라 오늘도 돌아가고 있다. 기록상 니야조프가 북한의 김일성을 추종했다고 나와 있지는 않지만 그의 처신은 김일성의 족적과 매우 흡사했다. 유라시아 국가 지도자들의 대부분이 박정희 대통령을 롤 모델로 삼았던 점에 비추어 니야조프는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니야조프의 대를 이은 것은 치과의사출신의 보건부 장관이었던 현 대통령 베르디무하메도프였다. 그는 전임자보다는 훨씬 인간적이고 의사로서의 사명의식을 갖춘 인물이다. 그는 전임자가 금지했던 인터넷 사용을 다시 확대시켰고,학교에서 금지했던 체육,외국어,예술교육을 복귀시켰다. 그리고 해직시켰던 의료인들을 복직시키고 연금이 끊겼던 노인들에게 다시 연금을 지급했으며 그동안 폐쇄당했던 학술원도 복귀시켰다. 요일과 월의 명칭도 이전의 명칭으로 되돌렸으며, 개인우상화 작업도 약화시켰다. 하지만 절대 권력이란 역시 어쩔 수 없나 보다. 하얀 대리석 언덕에서 말을 타고 가는 베르디무하메도프의 찬란하고 거대한 황금상이 수도인 아슈하바트에 2015년 완공되었다.
    Premium Chosun        오은경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euphra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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