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18 설파상언(雪坡尙彦)

浮萍草 2015. 10. 18. 00:00
    동국화엄 꽃 피운 화엄보살
    東國華嚴 若存若亡 我師間生 整其頹綱 十玄法門 重得恢張 其誰不曰 再來淸凉 “동국의 화엄이 있는 듯 없는 듯 우리 스님 살아 계실 적 무너진 기강을 세우고 십현법문을 거듭 크게 펼쳤으니 그 누가 청량국사가 다시 왔다 말하지 않겠는가!” 운사에 모셔진 설파상언(雪坡尙彦, 1707~1791) 선사 진영에 실린 영찬이다. 이 영찬은 연담유일(蓮潭有一, 1720~1799)의 <임하록(林下錄)>에 수록된 설파화상찬(雪坡和尙贊)의 앞부분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두 스님은 호암체정(虎巖體淨)의 제자로 사형사제간이지만 배움에 있어서는 연담스님이 설파스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영찬에서 중국 화엄종 4조인 청량징관(淸凉澄觀738~839)이 동국에 다시 온 것 같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설파스님의 생애에는 조선후기 화엄학의 역정이 오롯이 투영되어 있다. 진영에도 이와 같은 스님의 삶을 반영하듯 평소 탐독했던 화엄경함(華嚴經函)이 그려져 있다. 스님은 선운사 운섬(雲暹)스님에게 출가해 호암스님의 법제자가 된 후 25회에 걸쳐 <화엄경>을 강설하였고‘화엄경소’와 ‘화엄경소초’의 오타와 오류를 수정해 <화엄십지품사기(華嚴十地品私記)><화엄청량소은과(華嚴淸凉疏隱科)><구현기(鉤玄記)> 등의 해석서를 저술했다. 특히 백암성총(栢巖性聰, 1631~1700)이 1690년에 개판한 징광사의 화엄경소초 목판이 화재로 소실되자 1775년에 이를 중간해 영각사(靈覺寺)에 보관하였다. 스님이 입적하자 영각사에 부도를 세울 정도로 영각사 화엄경소초 판각은 가장 중요한 업적이었다. 판각을 도운 연담스님은 스님 자체가 중간(重刊)의 처음과 끝(始終)이라 하며 존경의 마음을 담아 동국 화엄의 꽃을 피운 스님을 찬탄하며 영찬을 지었다. 또한 영의정인 채제공(蔡濟恭,1720~1799)은 설파스님의 비문(碑文)에“화엄의 충신”이라 칭찬하였으며,후손인 설두유형(雪竇有炯, 1824~1889)은“화엄보살”이라 칭송했다..
    ☞ 불교신문 Vol 3120 ☜      
    제찬 해제=정안스님(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진영 설명=이용윤(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