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광복 70년… 물건의 추억

11 1966년 서울 '육교市'… 16개 건설, 미니 스커트 여대생들은 "보이콧"

浮萍草 2015. 9. 10. 12:00
    ▲  1966년 6월 22일 개통 첫날의 서울 신세계백화점
    앞 육교.구경하러 온 사람들까지 몰려 온종일 계단이
    인파로 꽉 찼다.
    1966년은 '육교(陸橋)의 해'라고 부를 만하다. 1년간 무려 16개의 보행자용 육교가 서울 도심에 우후죽순처럼 세워졌다. '불도저'란 별명의 김현옥 서울시장은 임명받자마자 육교 건설부터 시작했다. 취임 19일 만인 4월 19일,서울시경 앞,신세계백화점 앞,대한극장 앞 등 도심 6곳에 육교를 일제히 착공해 8월 15일까지 모두 준공하겠다고 했다. 시내가 온통 육교 공사판이 돼 교통지옥이 펼쳐지자 시민들 원성이 터져 나왔다. 야당인 민중당의 김대중 대변인과 김영삼 원내총무까지'무계획한 공사'를 성토하자,김 시장은 비상수단을 썼다. 철야 작업이었다. 짧은 공사 기간을 50일이나 앞당겨 6월 22일 6개를 일제히 개통했다(조선일보 1966년 6월 23일자). 6월 10일엔 안국동 로터리 앞, 이대입구 등 10곳에 육교를 또 무더기로 착공해 같은 해 모두 개통했다. 이 중 7개는 66일 만인 8월 15일 초스피드로 준공됐다. 야당 의원은 '서울특별시가 아니라 서울 육교시'라고 논평했다(경향신문 1966년 7월 30일자). 육교 건설의 1차적 목표는 횡단보도를 줄여 차들이 더 빨리 달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조선일보 1968년 10월 1일자). 서울시는"육교 개통으로 하루 11만3600여대 차량의 정차 시간이 약 930시간 단축됐다"는 식의 통계도 내놓았다. 보행자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워엔 육교 건너는 데 3~4분씩 걸렸다. 사람이 떨어져 숨지기도 했다. 결국 장애인·노약자를 포함한 사람의 편의성을 중시하게 되면서 육교의 시대는 저물었다. 2010년 190개였던 서울의 육교는 2014년 162개로 줄었다. 차량이 먼저이던 옛 가치 기준도 육교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빼놓을 수 없는 건 여성들의 불편. 공교롭게도 본격 육교 시대가 열린 이듬해(1967년)에 미니스커트의 유행이 시작됐다. '여성과 육교'문제는 1966년 국회에서까지 논의됐다. 시장은 '미풍양속에 반하지 않는 시설'을 갖추겠다고 답변했지만 묘책은 없었다. 이대입구 육교를 오르던 이화여대생들은 펄럭이는 치맛자락이 불안해 되돌아 내려오는 촌극을 빚었다. 일부 이대생은 논의 끝에'육교 사용 보이콧'결정을 했다(동아일보 1966년 8월 29일자).
    여성을 훔쳐보려고 육교에 얼씬거리는 남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신문 독자란에는'그렇게도 신경 쓰이면 안 입으면 될 것'이라는 식으로'여성들이 조심하라'는 의견만 보인다. 치마 입은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은 이제 에스컬레이터로 무대를 옮겼다. '남자들이 조심하라'는 목청이 높아진 게 반세기 동안의 변화다.
    Premium Chosun ☜       김명환 조선일보 사료연구실장 wine8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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