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Her Story

강수연 국제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

浮萍草 2015. 9. 2. 22:32
    “배우 된 것 날마다 후회… 하지만 다른 삶은…”
    네 살 때 연기를 시작해 46년 동안 배우로 살아온 강수연. 어린 시절부터 그의 이름 앞에는‘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번개돌이’‘똘똘이의 모험’등 어린이 드라마에 출연할 때는‘아역스타’로 불렸고,청소년 드라마‘고교생 일기’ (1983년)를 통해‘하이틴스타’로 올라섰다. 또‘씨받이’(1987년)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제아제 바라아제’(1989년)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월드스타’ 반열에 올랐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으로 활동해온 그는 지난 7월 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집행위원장 취임 후 두 달 가까이 제20회 영화제 준비를 위해 바쁘게 지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  지난 7월 부산국제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취임한 배우 강수연은“계획이 없던 자리에 앉게
    됐지만 최선을 다해 20회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치러
    낼 것”이라고 각오를 밝히며“올해 영화제에서는 관객
    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확대했으니 많이 찾아
    달라”고 당부했다.연합뉴스
    수연 위원장과의 첫 대화는 최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베테랑’ 속 대사로 시작했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으로 지난 8월 29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이 영화에서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 (유아인)가 저지른 범죄를 수사하던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은 수사를 방해하는 동료 형사가 조태오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음을 직감하고“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대사를 날린다. 류 감독이 인터뷰 자리에서 이 말을 강 위원장에게 들었다고 밝히며 영화 흥행과 함께 강 위원장이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술자리에서 재밌으라고 한 말이에요. 몇 년 전에 임권택 감독님과 류승완 감독 등 영화인들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려고 그 말을 했는데 류 감독이 적재적소에 잘 쓴 거죠. 영화에서 그 대사를 들으니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이 대사는 강 위원장의 평소 모습과도 잘 어울린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선 굵은 연기를 펼쳐온 그는 위원장 자리에 오른 후에도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왔다. 특히 취임 한 달을 맞아 8월 6일 영화 담당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났다. 그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자리에 오른 배경에는 지난해 영화제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상영한 후 부산영화제와 부산시가 빚어온 갈등이 깔려 있다. 부산시가‘다이빙벨’상영을 문제 삼아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고,영화계 는 거세게 반발했다. 부산시와 수개월 간 협의를 벌인 이 위원장은 시와 영화계가 모두 인정하는 공동 집행위원장을 선임하자는 안을 제시했고,시가 이를 받아들여 강 위원장이 위촉됐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첫 기자회견에 나선 강 위원장은“여러분이 뭘 우려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잡음이 있었던 것도 알고 있다”며“부산국제영화제가 20회 만에 세계적인 영화제가 된 것은 정치성을 떠나 예술적 완성도로 영화를 골랐기 때문이다. 매년 그랬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밝혔다. 강 위원장의‘카리스마’는 술자리에서 더욱 빛난다. 이 위원장은 이날 강 위원장과의 협력에 기대감을 나타내며“제가 단독 위원장을 하면서 쓸쓸한 게 술을 잘하는 분(김동호 위원장)이 떠났기 때문인데 이제 그 못지않은 강력한 분(강 위원장)이 계셔서 행복하다” 고 밝혔다. 또 김동호 전 문화융성위원장도 한 인터뷰에서 영화계 대표 주당 여배우로 강 위원장을 꼽았다. 강 위원장의‘술 실력’은 부산영화제 현장에서도 여러 차례 확인됐다.
    그가 지나간 파티장에서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배우들과 영화 관계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누가 왔다 갔냐’고 물으면 매번“강수연”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강 위원장은 취임 기자회견을 마친 후에도 기자들과의 가벼운 술자리에서‘파도타기’를 주도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는‘주량이 얼마나 되냐’는 질문에 정색을 하며 손사래까지 쳤다. “술자리를 좋아하지만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해요. 그냥 분위기를 띄우려고 주위 사람들에게 권하는 거예요.” 그에게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의 수장 자리에 오른 소감을 묻자“위원장 역할 또한 배우를 잘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린 시절에 자아나 의지 없이 영화 현장에 나가 배우가 된 후 다른 삶을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어요. 앞으로도 제 인생에 배우 말고는 없을 거예요. 사업이나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계획에 없던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어쩔 수 없이 맡게 됐으니 배우를 오래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야죠. 영화제를 통해 좋은 작가들을 만나 함께 작업을 하고, 훌륭한 영화인들과 교류하며 영화 제작 환경을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배우가 된 걸 후회해본 적은 없냐’는 질문에도 그는 “매일 후회한다”고 바로 답했다. “힘드니까요. 매일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로 살며 힘든 점을 말하라면 3박 4일 동안 할 수 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힘들지만 그중 가장 힘든 건 사람들에게 알려진 삶을 평생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가며 책임져야 할 부분도 많아지고요. 또 어떤 작품을 만날지 제 자신이 어떻게 변해갈지 어느 정도 해낼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되는 불안한 직업이에요.” 그러면서도 그는 작품에 목말라 있는 모습을 드러냈다. ‘위원장 자리에 있는 동안은 영화 출연을 못 하지 않냐’고 묻자 살짝 흘겨보며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잘라 말했다. “마지막으로 출연한 장편 영화가 5년 전에 찍은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예요. 2년 전에는 김동호 위원장님의 연출 데뷔작인 단편 영화 ‘주리’에 출연했고요.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어렵겠지만 여유가 생기고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계속 연기를 할 거예요.” 그는 위원장에 취임한 후 이 위원장과 함께 쓰는 사무실에 대형 칠판을 설치해놓고 열심히 ‘공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취임 초기 영화계에서는 그를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나선‘구원투수’정도로 평가했지만 영화제 개최 기자회견에 나온 그는 20주년을 맞은 영화제의 의미부터 프로그램,이벤트 등을 자세히 소개하며 적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자리에 앉았으니 최선을 다해야죠. 내 역할을 책임지려면 남의 것도 알아야 해요. 전혀 안 해본 영화 행정 일을 하나하나 알아가기 위해 더 노력해야죠. 일단 업무량이 많아요. 그동안 영화제에 손님으로 참여해오다 손님을 맞아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으니 당연히 공부를 많이 해야죠. 지금도 모르는 게 많아요.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이 알게 되겠죠.” 영화제 집행위원장 자리는 비상근이지만 그는 서울에서 사람을 만나거나 해외 일정이 없을 때는 거의 매일 사무실로 출근한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일찍 나가고 늦게까지 일해요. 다들 그렇게 해요. 요즘은 밤도 자주 새고요. 근데 일한다는 느낌은 안 들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오랫동안 알고 지내와 낯설지 않은 스태프들과 영화 얘기를 하는 게 정말 즐거워요.” 그는 20주년을 맞은 올해 영화제에 관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마련했다고 홍보하며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아무래도 영화제 프로그램은 영화 관계자들을 위한 게 많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일반 관객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어요. 또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도 대폭 확대했고요. 많이들 와주세요. 이거 꼭 써주셔야 해요(웃음).”
    Munhwa ☜     김구철 부장대우(문화부)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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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년 연기 인생… 4세 데뷔, 드라마 ‘고교생 일기’ 하이틴스타
    영화 ‘씨받이’ 열연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1969년 아역 배우로 데뷔해 학교보다 방송국 문을 먼저 드나든 강수연의 연기 경력은 어느덧 46년. 강산이 4번 변하는 시간 동안 그는 오롯이 배우로 살았다. 아역 배우로 기초를 다진 강수연이 빛을 보기 시작한 작품은 1983년 방송된 KBS 드라마 ‘고교생 일기’다. 당시 최재성, 채시라, 손창민 등과 함께 출연한 이 드라마는 ‘하이틴스타’ 강수연의 탄생을 알렸다. 1987년은 강수연이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성인 배우’로 자리매김한 해다. 국내에서는 영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로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그 해 9월 열린 제44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해외에도 강수연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한국 영화 역사상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첫 사례였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옥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스물한 살 여배우가 산고를 온몸으로 표현한 ‘씨받이’의 한 장면은 역대 한국 영화를 통틀어 백미로 꼽힌다. ‘씨받이’는 강수연을 임권택 감독의 페르소나로 만드는 신호탄이 된 작품이다. 1989년에는 역시 임 감독이 연출하고, 강수연이 주연을 맡은 ‘아제아제 바라아제’가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낭보를 전했다. 이 작품에서는 강수연의 삭발 장면이 화제가 됐다. 이후 삭발 연기에 도전하는 여배우들은 약속이나 한 듯“강수연 선배님의 연기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강수연의 발자취는 곧 충무로의 역사였다. 1990년대 들어서는 현대적이고 파격적 소재를 다룬 영화로 독보적 위치를 점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년) ‘경마장 가는 길’(1991년)‘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년)‘처녀들의 저녁식사’(1998년) 등 다양한 ‘문제작’들을 양산 하며 시대를 풍미했다. 2010년에는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에 출연하며 임 감독과 21년 만에 재회했다. 강수연이 연기 인생을 시작한 드라마 시장에서도 그의 활약은 돋보였다. 특히 2001년 SBS ‘여인천하’에서는 정난정 역을 맡아 그해 연말 열린 ‘SBS 연기대상’에서 당당히 대상을 품에 안았다. 2010년 이후 강수연은 연기보다는 영화계 부흥을 위해 각종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아왔으며 지금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계가 낳은 최고의 스타이자 최대 수혜자였던 그가 이제는 받는 사랑이 아닌 주는 사랑으로 충무로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Munhwa ☜     안진용 문화일보 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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