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과학 이야기

44 중국 톈진항 사고에 대한 공연한 불안

浮萍草 2015. 8. 24. 10:28
    ▲  톈진항 폭발 사고 현장.
    난 12일 자정 무렵에 중국 톈진(天津)항 부두의 물류 창고에서 참혹한 화학물질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인공위성에서도 보일 정도의 거대한 화염을 동반한 폭발로 톈진항과 인근 주거지역이 쑥대밭이 돼버렸다. 180여 명의 사망·실종자를 포함해 1천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고 피해액은 추정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고가 일어나고 1주일이 넘었지만 톈진항의 상황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8차례 이상의 소규모 폭발이 이어졌고 현장의 대기와 토양이 모두 극도로 오염된 상태다. 생화학 부대를 동원했지만 사고 현장을 완전히 정리하고 주민들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하다 ㆍ허술한 관리 탓에 일어난 인재
    폭발 사고가 일어난 곳은 독성물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물류회사의 창고였다. 그러나 폭발로 완전히 사라져버린 창고도 허술하게 지은 가건물 수준이었고 운송을 위해 컨테이너 박스에 보관되어 있던 독성물질의 종류와 양도 엄청나게 많았던 모양이다.
    ▲  효소에 달라붙어 기능을 마비시켜버리는 맹
    독성의 시안화나트륨
    시안화나트륨 이외에도 칼슘카바이드,질산암모늄,질산칼륨을 비롯해서 40여 종의 독성물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수천 톤의 다양한 독성물질에 대한 관리도 허술했던 것으로 보인다. 폭발 사고의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폭발 사고가 일어난 후의 대응도 적절하지 못했다고 한다. 화재·폭발 현장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소방관들이 무작정 물을 뿌려서 화를 더 키워버렸다고 한다. 화재 현장에는 물과 격렬하게 반응해서 아세틸렌과 같은 가연성 기체가 발생되는 칼슘카바이드도 있었고 폭약 으로도 사용하는 질산암모늄도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소방관들이 희생된 것도 사고 현장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화학산업도 세계 6위권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다. 우리나라도 엄청난 양의 독성물질을 수입·생산·활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도 톈진항의 폭발 사고를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독성물질이 유출되는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독성물질을 포기해버릴 수는 없다. 독성물질을 모두 포기해버리는 비겁한 자세로는 현대의 삶이 불가능해진다. 위험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적절한 안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철저한 준비에 필요한 투자와 노력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ㆍ시안화나트륨에 대한 공포
    우리 언론에 집중적으로 소개된 시안화나트륨(NaCN)은 맹독성 물질이다. 과거에는 일본식으로‘청화(靑化)소다’라고 불렀고 현재 대한화학회의 공식 명칭은‘사이안화소듐’인 흰색 분말 형태의 시안화나트륨은 세포기관인 미토콘드리아 에서 일어나는 호흡 작용을 차단시켜버린다. 시안화 이온이 호흡 작용에 관여하는 효소에 단단하게 결합해서 기능을 마비시켜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안화나트륨은 산소 호흡을 하는 생물을 즉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치명적인 독성 물질이다. 치사량이 200밀리그램 정도인 시안화나트륨은 사형 집행을 위한 사약(賜藥)으로 쓰기도 했다.
    Premium Chosun        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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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톈진발 독성물질이 우리나라를 위협하지 못하는 이유
    ▲  1984년 인도 보팔에서 일어났던 이소시안산메틸
    (MIS) 유출 사고의 피해 지역.
    러나 시안화나트륨은 스스로 불이 붙어 폭발할 수 있는 인화성 물질은 아니다. 화학적으로 소금과 같은 이온성 염(鹽)으로 분류되는 시안화나트륨은 물에 잘 녹기 때문에 사고 지역의 토양 수질을 심각하게 오염시킨다. 시안화나트륨이 물에 녹으면 미량의 시안화수소가 발생하지만 대부분의 시안화수소는 물에 녹은 상태로 존재 하게 된다. 다만 물에 산성 물질이 투입되면 사정이 달라져서 상당한 양의 시안화수소가 공기 중으로 배출될 가능성이 있다. 사고 현장에서 관찰된 거품도 사고 현장에 남아있는 다른 독성물질 때문일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시안화나트륨이나 시안화수소가 아니더라도 톈진항의 사고 현장은 여러가지 독성물질로 심각하게 오염된 상태일 것이다. ㆍ독성 화학물질의 확산
    ▲  서울과 톈진의 직선 거리는 870Km.
    독성물질은 공기나 물을 통해 확산되면서 피해가 나타나게 된다. 구미에서 일어난 불화수소 누출 사고에서도 그런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독성물질은 넓은 범위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희석(稀釋)되는 것이 상식이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흰 연기가 확산되면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흰 연기를 구성하는 미세입자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기 중으로 확산되면서 희석되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독성이 아무리 강한 물질이라도 넓은 범위로 확산되어 충분히 희석되고 나면 독성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된다. 역설적일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독성이 강할수록 피해 범위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화학물질의 독성은 화학적 반응성 또는 결합력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독성이 강할수록 다른 물질과 더 쉽게 반응해서 분해되거나 단단하게 결합한다.
    그러나 독성물질은 분해되거나 결합되고 나면 독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치명적인 살상력을 가진 총알도 한 번 발사하고 나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성이나 반응성이 약한 황사나 미세먼지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영향을 줄 수 있지만,반응성과 독성이 강한 시안화나트륨과 같은 맹독성 물질의 경우에는 사고 지역에 인접한 곳에서만 피해가 나타난다. 방사성 오염 물질이나 중금속의 경우와 달리 시안화나트륨과 같은 강한 독성물질의 유출에 의한 피해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구미의 불화수소 누출에 의한 피해도 누출 지역에 인접한 마을에 한정되었다. 1984년 인도의 보팔에서 일어났던 치명적인 이소시안산메틸(MIS) 폭발 사고의 경우에도 보팔시의 85개 구(區) 중 36개 구의 주민 50만 명이 피해를 당했다. 보팔은 지금도 3,787명이 사망한 폭발 사고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톈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독성물질에 의한 토양과 수질 오염을 복구하고, 주민들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는 뜻이다. 톈진으로부터 87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우리가 폭발 사고에 의한 독성물질의 피해를 걱정할 이유는 없다. 누출된 독성물질이 우리에게 도달하기 전에 충분히 희석되고 공기 중의 수분이나 미세먼지에 의해 제독(除毒)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톈진에서 우리 쪽으로 바람이 부는 경우에도 그렇다. 실제로 톈진항 폭발 사고 이후에 우리나라 대기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난 적도 없었다. 서해를 통한 수질 오염의 피해를 걱정할 이유도 없다. 공연히 괴담에 흔들리기보다는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는 톈진 주민에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필요한 상황이다.
    Premium Chosun        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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