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한식의 탄생

[21] 미나리 강회

浮萍草 2015. 6. 10. 13:30
    봄 향기 가득한 초파일 時食… 19세기부터 고기 넣어 먹기도
    가탄신일이면 옛사람들은 미나리강회를 시식(時食)으로 먹었다. 불가(佛家)는 물론 일반인들도 육류나 어류는 먹지 않고 느티떡,콩볶음,미나리강회를 먹었다. 강회는 숙회(熟鱠)의 일종으로 채소를 살짝 데쳐 말아 먹는 것을 말한다. 예부터 미나리는 봄을 대표하는 채소였다. '봄이 되면 살이 오르는 미나리로 만든 미나리강회를 초고추장에 꾹 찍어먹으면 이건 봄을 먹는 겁니다' (1966년 10월 6일자 경향신문)라고 할 정도였다. 고려 시대부터 근전(芹田), 즉 미나리밭을 운영할 정도로 미나리를 많이 먹었다. 서울 동대문 밖 특히 왕십리 주변은 조선시대 연암집(燕巖集)에도 기록이 여럿 남아 있을 정도로 미나리밭으로 유명했다. '冬至(동지) 섣달 어름이 꽝꽝 어른 논 속에서도 새파랗케 새싹이 난 미나리를 캐내는 것은 서울이 안이고는 그 生新(생신) 한 맛을 보지 못할 것이다.'(1929년 9월 27일자 별건곤) 미나리강회 조리법이 최초로 기록된 시의전서(是議全書·1877년 추정)에는'미나리를 다듬어 끓는 물에 데쳐 상투 모양으로 도르르 감는다. 달걀,석이,고추,양지머리를 채치고 실백을 가운데 세우고 다른 채친 재료들을 옆으로 돌려가며 색색이 세워서 미나리로 감는다. 접시에 담고 초고추장을 곁들인다'고 나온다. 초파일 시식이었던 미나리강회가 19세기 요리로 발전하면서 육고기를 넣게 된 것이다. 1884년 일본에서 발간된 한국어사전'교린수지'(交隣須知·사진)에는'芹(미나리)'이란 항목이 있는데'미나리강회는 됴흐니라(좋으니라)'라는 한글 예문이 붙어 있다. 옛사람들은 '봄 미나리 살진 맛 님에게 드리고저'라고 읊고 미나리를 먹으며 나른한 봄날을 보냈다.
    Premium Chosun ☜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음식강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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