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한식의 탄생

[10] 설렁탕

浮萍草 2015. 6. 5. 13:30
    서울서 설렁탕을 안 팔면 '껄넝껄넝'한 식당이었다
    렁탕이 언급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809년 쓰인'규합총서(閨閤叢書)' 중 '충주 검부 앞 셜넝탕'이다〈사진〉. 서울 음식으로 알려진 설렁탕이 충북 충주 검부(禁府) 앞 명물로 기록된 건 19세기 전국에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시장 음식으로 딱 맞는 설렁탕도 전국적으로 퍼졌기 때문이다. 설렁탕의 기원과 어원은 다양하다. 이 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선농단(先農壇) 기원설'은 1940년 쓰인 '조선요리학'이 가장 오래된 근거 기록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필자가 최근 확인한 결과 이보다 3년 앞선 1937년 10월 22일자 '매일신보'에도 선농단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기사가 게재된 바 있다. 몽골어로 '고기 삶은 물'을 뜻하는 '슐루(슈루)'가 음운 변화를 거쳐'설렁'이 됐다는 설(1768년 몽어유해(蒙語類解)), 개성 사람 설령(薛鈴)이 고려 멸망 후 한양으로 이주해 탕반 장사를 하면서 그의 이름에서 설렁이 유래했다는 설 (1954년 8월 29일자 경향신문),일본의 이두 전문가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이 주장한 '설넝은 이두로 잡(雜) 이라는 뜻'이라는 설 등도 있다. 캐나다 선교사 게일이 1897년 펴낸 '한영자뎐'에는 설렁탕을 소의 모든 부위가 아닌 'a stew of beef intestines (소 내장으로 끓인 국)'으로 설명돼 있기도 하다. 설렁탕 표기도'셜렁탕''셜넝탕''설넝탕''설녕탕''설농탕(雪濃湯)''설농탕(設農湯)'등 1950년대까지 통일되지 않고 사용된다. 그러나'설렁탕 하면 서울이 따라붙는다. 이만큼 설렁탕은 서울의 명물이다. 설렁탕 안 파는 음식점은 껄넝껄넝한 음식점이다(1920년 8월 11일자 동아일보)'라고 여겨질 정도로 확실한 서울 음식이었다. 설렁탕의 전성기는 일제 강점기였다. 1920년 서울 안팎에 25군데(1920년 10월 8일자 매일신보) 정도였던 설렁탕 집은 1924년 100곳(1924년 6월 28 일자 동아일보·경성부 재무당국 조사)으로 급격히 늘어난다. 당시 종로와 청계천 주변은 설렁탕 집들로 빼곡했다. '민중의 요구가 다비하고 조선 사람의 식성에 적합한 설렁탕은 실로 조선 음식계의 패왕(1924년 10월 2일자 매일신보)'이 된다.
    Premium Chosun ☜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음식강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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