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한식의 탄생

[6] 송편

浮萍草 2015. 6. 3. 15:30
    사시사철 먹던 떡… 19세기부터 추석 음식으로
    선 헌종(1827~1849) 때 문인이자 실학자 정약용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가 지은'농가월령가'8월령에는'신도주 (新稻酒),오려송편,박나물,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란 구절이 나온다.〈사진〉 추석에 송편을 시식(時食)으로 먹은 최초의 기록이다. 오려는 올벼, 즉 조생종(早生種) 벼를 말한다. 추석은 신라시대부터 중요한 명절이었다. 신라는 물론 중국 당나라에 있었던 신라촌(新羅村) 사람들도"수제비와 떡 등을 마련하고 8월 15일의 가절을 경축 했을 정도로"(839년 입당구법순례행기) 중요했다. 하지만 이때 먹은 떡이 송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송편은 사시사철 먹던 떡이었다. 조선시대 허균이 쓴 도문대작(屠門大嚼·1611년)에 송편은 서울에서 봄에 먹는 음식으로 나온다. 신흠이 지은 상촌고(象村稿·1630년)에는 유두일(流頭日·음력 6월 15일) 음식으로 등장하고 택당집(澤堂集·1674년) 에는 사월 초파일(석가탄신일) 먹는 시식으로 나온다. 송편을 빚는다는 표현은 찰기가 부족한 멥쌀을 가루로 만들어 떡을 쳐서 다시 도자기처럼 빚기 때문에 나온 표현 이다.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는 지금과 거의 같은 떡 속에 콩가루 소를 넣고 솔잎으로 찐 송편 만드는 법이 나온다. 청나라 사신으로 갔던 이해응이 지은 계산기정(�山紀程·1803년)에는 청나라 환향하를 건너 7리쯤에 있는 고려보 (高麗堡)에서 팔던 고려병(高麗餠)으로 송편(松餠)과 인절미(粟切餠)가 등장한다. 송편이 추석 음식으로 자리 잡은 건 19세기로 보인다. 농가월령가가 대표적 사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년)에도 '2월 1일 노비일(奴婢日)과 추석 음식으로 송편을 먹었다'고 적혀 있다. 무슨 이유로 송편이 추석 절기 음식으로 자리 잡았는지는 기록이 없다. 다만 둥근 송편 소의 모양은 보름달을 형상화한 것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추석 시식 중에서 송편은 하늘,밤과 대추는 땅,토란은 땅속의 결실을 대표하는 음식들이다. 19세기 이후 추석 대표 시식이 된 송편은 1960년대 이후 쌀 부족으로 분식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차츰 우리 삶 에서 멀어졌다.
    Premium Chosun ☜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음식강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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