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한식의 탄생

[5] 조선요리옥

浮萍草 2015. 6. 3. 08:00
    사랑놀음까지 차린 첫 요리옥, 혜천관
    
    1920년 10월 19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해동관(海東舘) 개업 광고〈사진〉는 그동안 불명확하던 국내 최초의 '조선요리옥'이 어디였느냐를 밝히는 기록이다. 
    오랫동안 최초의 조선요리옥은 1903년 개업한 명월관(明月舘)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필자가 발굴한 매일신보 해동관 개업 광고의 내용을 보면 혜천관(惠泉舘)이 등장하는데"(광고가 게재된 1920년으로부터) 29년 전(1891년) 개업한 조선 내 
    유일무이한 요리점"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이 맞다면 혜천관은 명월관보다 12년 먼저 개업했으니 국내 최초의 조선요리옥은 명월관이 아니라 혜천관이 된다. 
    요리옥은 요리점, 요릿집으로 불리기도 했다.

    정확한 개업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명월관보다 20여년 앞서 영업하던 수월루(水月樓)라는 곳이 있었고 이곳을 최초의 요리옥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수월루는 고급 요리와 더불어 장국밥도 팔고 이발도 할 수 있었던 일종의 다목적 공간이었다. 1936년 1월 16일자 매일신보에 따르면"(혜천관은) 종래의 수월루와는 전연 성질이 달라 현재 요리점같이 기생들을 불러서 질탕한 유흥도 하고 또는 공공한 연회 라든가 교자(상)로 요리를 배달하야 상류계급에서는 사랑놀음을 차리게까지 된" 본격 요리옥이었다. 혜천관과 명월관은 1920년대 이전까지 조선요리옥계의 쌍벽이었다. 혜천관 주인 윤계환과 명월관 주인 안순환이 1914년 조직된 '요리점조합'의 고문을 맡을 정도였다. 그러나 1918년 혜천관은 봉춘관으로 넘어가고 다시 해동관을 경영하던 동양흥산주식회사에 매각된다. 동양흥산은 당대의 모던보이이자 청년 벤처사업가인 박정래, 김동은, 민병조가 세운 회사였다. 이 회사는 해동관과 장춘관 세심관 등 여러 요리옥 운영은 물론 요리옥에 기생을 공급하는 대동권번에도 관여할 정도(1921년 3월 23일자 매일신보)로 사세(社勢)가 컸다. 그러나 동양흥산의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고 몇 년 안에 문을 닫는다.
    Premium Chosun ☜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음식강산' 저자

    ;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