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한식의 탄생

[2] 아이스케키

浮萍草 2015. 6. 1. 15:00
    여름의 총아 '아이스케키'… 대만·일본 거쳐 우리나라로
    1934년 6월 25일자 매일신보 기사 사진
    '아이스케키(아이스케이크)'즉 꼬챙이를 끼워 만든 얼음과자가 국내에 등장한 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34년을 크게 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확인한 국내 최고(最古) 기록은 1934년 6월 25일자 매일신보 기사다.〈사진〉 이 기사에 따르면 아이스케키는 등장하자마자 커다란 인기를 모으며 "하절(夏節)의 총아"가 된다. 아이스케키는 일본식 영어인 '아이스케익'(1934년 7월 3일자 동아일보)에서 온 말이다. 아이스케익은 아이스케이크 혹은 아이스캔디로도 불렀다. 원래 이름은 '팝시클(popsicle)'이다. 1905년 미국 프랭크 에퍼슨(Epperson)이 개발한 팝시클은 1920년대 중반 이후 대만을 거쳐 일본에 상륙한 후 한반도에 유입된다. 적은 돈으로 큰 이윤을 낼 수 있는 탓에"특히 근 이삼 년래로 총아가 된 아이스케익은 작년에 비하야 부내(府內·서울) 에만 2배나 증가되고 행상 수에 있어서도 도약 두 배를 바라보고 있다"(1938년 5월 13일자 동아일보)고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위생 문제로 불량식품의 대명사라는 오명도 함께 얻는다. 해방과 전쟁 이후에도 아이스케키 열풍은 계속된다. 1960년 당시 인구 250만 명 정도의 서울에는 얼음과자집이 293개소(1961년 9월 11일자 동아일보)나 있었다. 1963년 보사부에서는 얼음과자 행상을 통제하기 위해 '행상기장(行商記章)'을 달도록 할 정도였다. 1962년 '삼강하드'가 등장하면서 1967년까지 아이스케키 시장을 주도한다. 1967년 해태제과가 아이스크림 생산을 시작했고, 1970년 '브라보콘'을 출시했다. 이때부터 빙과류 시장은 아이스케키·하드에서 아이스크림 중심으로 바꾸었다. 1970년대 초반을 넘어가면서 아이스케키는 급속하게 사라진다. "여름철만 되면 골목길을 누비며 길게 뽑아대던 아이스케이크가 질 높고 값싸며 종류가 많은 아이스크림에 밀려나 이제는 자취도 없다."(1972년 5월 30일자 동아일보) 아이스케키 행상은 사라졌지만 아이스케키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여름이면 불티나게 팔리는 '하드'가 결국 아이스케키이니 말이다.
    Premium Chosun ☜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음식강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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