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한식의 탄생

[1] 삼계탕

浮萍草 2015. 6. 1. 10:50
    닭 고아낸 '국물'은 정력제… 1917년부터 요리로 먹었죠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음식강산' 저자
    1921년 9월 11일자'매일신보'에 실린 조선요리점 '해동관'개점 광고 말미에"계삼탕(鷄蔘湯)-보원제로 극상품"이란 문구가 등장 한다〈사진 왼쪽 흰 선〉. 계삼탕 즉 삼계탕에 관한, 필자가 현재까지 확인한 최초의 기록이다. 공교롭게도 바로 옆에는 인삼과 녹용을 달인 '삼용보익수(蔘茸補益水)' 광고도 등장한다〈사진 오른쪽〉. 일제강점기 이후 인삼 가루와 인삼정 같은 제품과 인삼을 이용한 식품들이 선보였다. '삼계'란 명칭은 개화파 김윤식이 쓴 일기 '속음청사(續陰晴史)' 1886년 9월 16일자에 처음 등장한다. 인삼과 닭을 넣고 푹 곤 "삼계고(蔘鷄膏)"가 그것이다. '삼계탕'이란 단어는 1923년 일제 총독부가 작성한'중추원조사자료'에 처음 나온다. 이 자료에는"여름 3개월간 매일 삼계탕(蔘鷄湯),즉 암탉의 배에 인삼을 넣어 우려낸 액을 정력약(精力藥)으로 마시는데 중류 (中流) 이상에서 마시는 사람이 많다"고 적혀 있다. 보약 아닌 요리로서 삼계탕과 가장 유사한 음식에 대한 기록은 1917년 판 '조선요리제법'에 등장하는 '닭국'이다. 1924년 발간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같은 조리법의 요리가 '계탕(鷄湯)'이란 이름으로 소개된다. 1950년대 중반부터 지금의 삼계탕과 같은 계삼탕이 외식으로 등장한다. 삼계탕이 대중화된 것은 1960년대 양계산업이 본격화되면서다. 1980년대 들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거치면서 보신탕이 문제가 되자 삼계탕은 국민 여름 보양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는다. '계탕'은 닭고기보다는 닭을 곤 국물을 약으로 먹었다.
    요즘도 삼계탕으로 이름난 식당에 가보면 닭이 작다. 살코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국물을 주로 먹기 때문이다. 국물을 보양으로 먹었던 삼계탕 문화의 기본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던 보양식은 어느덧 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 음식이 되었다. 한식 세계화는 강요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수용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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