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영하 65도 야쿠티야 이야기

6 얼어붙은 시베리아강에 구멍만 뚫어도 몰려드는 물고기들… 건져내면 바로 냉동

浮萍草 2015. 5. 18. 19:03
    가 시베리아에 봄이 없다 하는가? 
    누가 시베리아를 황량한 벌판이라 하는가? 
    시베리아에도 봄은 붉은 매화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시베리아에도 사계절이 있다. 계절에 대한 정의가 다를 뿐이다.
    이 사람들은 겨울을 눈이 오는 것으로 기준을 잡지 않는다. 
    눈은 봄에도 오고 가을에도 내릴 수 있다. 
    눈이 쌓여 온 세상이 완전히 하얘지면 그때 비로소 겨울이 왔음을 인정한다. 
    적어도 수은주가 영하 30도로 내려갈 때까지는 겨울로 인정하지 않는다.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이는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는 근심 없는 세상이 된다. 
    눈 덮인 하얀 길을 또박또박 걸어가는 여자를 상상해 보라! 우아한 털모자 샤프카, 반지르르한 모피코트, 긴 부츠.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다운가? 
    느낌만으로도 전율이 흐르지 않는가?
    시베리아에선 어디를 가도 한겨울엔 더러운 구석을 찾을 수 없다. 
    모든 것을 하얀 무명천으로 덮은 듯 백색의 향연이 어우러진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백설공주가 되고 공주를 맞이하는 왕자가 되는 꿈을 꾼다. 
    하얀 눈은 세상을 물리적으로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다.
    이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도 바꾼다. 
    집에 들어가면 긴 털코트를 벗고 가벼운 반소매만 입어야 한다. 
    목욕탕에선 언제나 뜨거운 물이 나온다. 
    추위에 언 몸을 녹이기에 충분하다. 아무리 물가가 오른다 해도 빵과 우유와 고기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페레이스트로이카 이후 집단 농장은 사라졌다. 
    대신 기업농들이 나타나 농업의 효율성은 높아지고 있다. 
    밀은 러시아가 수출해야 할 정도로 풍부하다. 
    빵 값이 오를 리 없다. 
    축산업은 기업처럼 발전하고 있다. 
    걱정은 과일,야채,쌀값 정도 그런 것은 덜 먹으면 된다.
    시베리아의 겨울은 영하 50도까지 내려간다. 
    온도만 보면 분명히 춥다. 
    그러나 바람이 없다. 
    영하 50도라 해도 외투에 털모자,부츠만 있으면 추위가 두렵지 않다. 
    해가 뜨는 한낮에는 오히려 한국의 3월쯤 햇살이 주는 달콤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이들은 모든 것을 눈 속에 감추고 근심도 잊는다. 
    그러면서 봄을 기다린다.
    시베리아 시골마을의 봄 풍경.

    2월이 되면 기온은 영하 30도로 올라간다. 영하 40도와 30도는 엄청나게 다르다. 갑자기 옷을 벗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지난 겨울 잠깐 이곳을 방문했던 한국 사람이 옷을 가볍게 입고 모자도 쓰지 않고 나가려 해 걱정을 시킨 일이 있다. 그렇다고 모자를 벗고 외투를 가볍게 입으면 안 된다. 그럴수록 조심해야 하는 게 시베리아의 겨울이다. 시베리아의 겨울은 아름답다. 그러나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가 있듯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된다. 3월이 되면 거리엔 활기가 넘친다. 야외 스케이트장, 야외 스키장이 사람으로 가득 찬다. 사냥꾼들은 총을 꺼내 기름칠을 하고 사냥 준비를 한다. 강위엔 낚시꾼들이 구멍을 얼음 위에 뚫고 고기를 퍼낸다. 강 위 얼음에 구멍을 내면 한겨울 얼음 속에 갇혀 산소 부족을 느끼던 물고기들이 구멍 주위로 몰려든다. 낚시꾼은 바가지로 퍼내듯 고기를 건져내면 된다. 물고기는 얼음 밖으로 나오는 순간 냉동이 된다. 아름다운 시베리아를 경험하고 싶으면 3월에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4월이 되면 여기저기서 축제가 열린다. 주로 순록 축제이다. 순록 치기들은 더 추운 북쪽으로 떠나기에 앞서 한바탕 몸 풀기를 한다. 경주를 하고 음식을 나누며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다. 이때가 되면 눈 속에 파묻혀 겨울잠을 자던 나무들도 깨어난다. 스틀라니크(stlanik)라는 나무가 있다. 삼나무의 일종이다. 겨울이 되면 곰처럼 납작 엎드려 눈 속에 몸을 숨기고 혹한을 피한다. 4월쯤 되면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높이가 어른 키를 훌쩍 넘는다. 4월의 시베리아는 눈부시다.
    에벤의 봄맞이 축제.

    아침 5시면 동이 튼다. 이때부터는 커튼을 두껍게 치든가 일찍 일어나야 한다. 백야가 이미 시작되는 것이다. 한낮에 나가려면 선크림이라도 발라야 한다. 아니면 얼굴이 벌써 타기 시작한다. 야쿠츠크의 봄은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한다. 모스크바에서 봄을 보낸 적이 있다. 몹시 힘들었다. 햇빛도 없고 자주 가랑비가 내렸다. 날씨는 음산하고 바람마저 불면 몸이 그냥 움츠러들었다. 그때 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았다. 그걸 야쿠츠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4월 중순이 되면 약간의 근심거리가 찾아든다. 햇살이 눈에 부시지만 발아래 길거리는 눈 녹은 물로 질퍽거린다. 동토에 하수도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녹은 물들이 그대로 물구덩이가 되어 고여 있다. 운전사들이 행인을 배려할 만큼 문화적이지는 않다. 잘못하면 흙탕물을 바가지로 쓸 수 있다.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4월의 가장 큰 근심거리이다. 5월이 되면 뜨거워지는 햇살이 모든 걸 해결한다. 눈 녹은 물은 하늘로 빨아올려져 먼지가 일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모두 여름철 휴가를 어디로 갈까 궁리하느라 다른 걱정은 다 잊는다. 6월을 지나 한여름이 되면 기온도 영상 30도를 넘는다. 사람들은 더위를 참을 수 없다는 듯 휴가를 떠난다. 소치로, 터키로, 방콕으로, 형편이 좀 좋으면 제주도로 그 돈이 어디서 나느냐고? 러시아에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게 좋다. 시인 추체프는 러시아를 이해하려 하지 말라고 했다. 있는 그대로 믿으라 했다. 어쨌든 한여름이 되면 시베리아의 중심 야쿠츠크 시는 텅 비어 버린다. 바닷가로 달려가 한겨울 쌓였던 모든 피로를 떠내려 보낸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9월이 되면 한여름 미루어 놓았던 일들을 마무리하느라 정신들이 없다. 10월까지 바쁜 가을을 보낸다. 일들을 대충 마무리하고 한숨을 돌릴 만하면 눈이 내린다. 세상은 백색의 설국으로 바뀐다. 여인들은 모피코트, 샤프카,부츠를 꺼내 겨울 왕국의 백설공주로 변신한다. 난방이 완벽한 아파트 실내에서 겨울은 두렵지 않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사내들은 사냥총을 손질하며 지난해 놓친 산양의 발자국만 생각한다. 이번 겨울엔 그놈을 잡을 수 있을까? 시베리아의 1년이 이렇게 지나간다.
    Premium Chosun        강덕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kangds@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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