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과학 이야기

38 백수오와 이엽우피소의 불편한 진실

浮萍草 2015. 5. 18. 10:34
    겁게 달아오르던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된서리를 맞았다. 
    갱년기 여성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신비의 영약(靈藥)이라던 백수오 제품이 사실은 이엽우피소라는 낯선 이름의 싸구려 가짜 백수오로 만든 것이었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먼 벤처 기업이 원료의 품질 관리를 소홀히 해서 생긴 일이다.
    백수오 논란의 파장은 심각하다. 
    식품과학 덕분에 등장한 ‘건강기능식품’ 제도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병원을 찾아야 할 순진한 소비자들이 맹목적으로 값비싼 건강기능식품에 매달리는 현실은 결코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공연히 피해를 입게 된 선량한 농민들의 입장도 난처하다. 
    무책임한 언론과 증권회사의 선정적인 주장에 눈이 멀어버린 서민 투자자들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한국 백수오(왼쪽, 은조롱)와 중국 백수오(이엽우피소).

    ㆍ한국 백수오는 중국 백수오와 전혀 다른 약재
    토종 자생 약용식물인 은조롱(시나쿰 윌포르디이)의 추출물로 허가를 받은 벤처 기업이 중국의 약용식물인 이엽우피소(시나쿰 아우리쿨란툼)를 원료로 사용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건강기능식품 관리에 대한 법에 따르면 그렇다. 제도적으로 건강기능식품의 관리 책임을 지고 있는 식약처가 더 일찍 문제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엽우피소를 불법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경계했어야 한다. 국립수목원의 2006년 자료에 따르면 백수오 생산 농가의 90퍼센트가 중국에서 들여온 이엽우피소를 재배하고 있었다. 순진한 농민의 입장에서 생김새가 비슷한 이엽우피소는 재배가 어려운 은조롱의 훌륭한 대체작물이었을 뿐이다. 실제로 이엽우피소에 ‘넓은잎큰조롱’이라는 우리말 이름을 붙여준 것도 국립수목원이었다. 이엽우피소의 뿌리로 만든 가짜 백수오의 안전성에 대해 소비자원과 식약처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은 볼썽 사나운 일이다. 두 정부 기관의 공연한 기(氣) 싸움은 혼란에 빠져있는 소비자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이엽우피소는 대근우피소(시난쿰 분게이)나 격산우피소(시난쿰 로일포르디)와 함께‘중국 백수오’의 기원식물로 활용되어왔다. 결국 소비자원이 강조한 유해성은 모든 생약재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부작용을 지나치게 지적한 것이고,식약처가 강조한 안전성은 이엽우피소가‘중국 백수오’의 기원식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일 뿐이다. 생리활성을 가진 모든 의약품이 긍정적인 약효와 함께 부정적인 독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약용식물에서 생산한 생약도 예외가 아니다.
    은조롱의 대체 작물로 믿었던 이엽우피소.
    ㆍ이엽우피소 재배에 대한 대책을 외면했다
    식약처가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에 수록해놓은 ‘우리 백수오’는 동의보감에도 소개되는 우리의 전통 약재다. 전혀 다른 기원식물에서 생산한 ‘중국 백수오’와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이다. 기원 식물이 다르면 유효 성분도 다르고 그래서 당연히 약효와 부작용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두 약재가 실제로 똑같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심지어 재배 환경과 재배 방법에 따라 약효와 부작용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 생약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우리 식약처가 중국 백수오를 제도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식약처가 중국 약재를 무조건 인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식약처가 독자적으로 판단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생약으로 허용되지 않는 약용식물의 재배를 방치해왔던 것은 심각한 문제다.
    결과적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농민들은 이엽우피소에서 쓸모없는 가짜 백수오를 생산해서 유통시키는 불법을 저질러왔고 소비자들은 정부가 승인하지 않은 약재를 소비해왔던 셈이다. 이엽우피소의 식경험(食經驗)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식약처와 생약 전문가들이 지난 20여 년 동안 이엽우피소를 소비해왔던 우리의 경험을 외면했을 뿐이다.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농림축산식품부를 비롯한 정부와 약용작물 전문가들의 책임이 무겁다.
    소비자에게는 의약품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는 건강
    기능식품
    ㆍ건강기능식품은 의약품이 아니다
    건강기능식품은 법률에 따라 식약처가 기준‧규격‧표시‧광고‧이력추적 등 제조와 유통의 모든 과정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기능성 ‘식품’이다. 원료부터 ‘건강기능식품공전’을 통해 엄격하게 관리한다. 현재 식약처가 고시한 ‘공전’에는 기준규격과 기능성이 명시된 80여 종의 원료 성분과 230여 종의 ‘개별인정형’ 원료가 수록되어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백수오 제품은 2010년에 수록된 내츄럴엔도텍의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을 원료로 사용한 것이다. 갱년기 여성이 백수오 추출물을 식품으로 소비하면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백수오 제품을 건강기능식품으로 허가해준 식약처의 분명한 입장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인식은 전혀 다르다. 백수오 제품이 안면 홍조‧발열,기억력‧수면‧소변 장애, 우울‧불안‧신경과민 관절‧근육 통증과 같은 구체적인 질병을 예방‧치료해주는 ‘의약품’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시중에 유통되는 건강기능식품 중에는 소비자가 의약품으로 오인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제품이 적지 않다. 더욱이 소비자에게는 식약처의 의도보다 선정적인 언론 보도와 인터넷 정보가 훨씬 더 큰 설득력을 발휘하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서(醫書)임에 틀림이 없는 동의보감까지 들먹이는 선동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다. 정부가 일반적인 건강 증진을 위한‘식품’으로 허가한 건강기능식품이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쓰는‘의약품’으로 둔갑해버린 현실을 바로잡지 못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전통 생약재의 현대화가 시급하다
    ㆍ전통 생약재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우리의 전통 의학을 공연히 외면하거나 무시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동의보감의 명성에만 매달리는 전통 의학은 의미가 없다. 21세기 첨단과학기술의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에게 과거의 의술을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강요 하는 것은 오히려 조상을 욕보이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 소비자가 요구하는 것은 동의보감(1610)이나 동의수세보원(1894)의 비법이 아니다. 지난 400여 년 동안 질병과 예방‧치료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질병도 있고 원인과 치료 방법이 완전히 변해버린 경우도 많다. 백수오 논란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듯이 전통 의서에 소개된 약용식물의 정체부터 분명하게 확인해야 한다. 은조롱과 이엽우피소의 재배에 대한 약용작물 전문가들의 학술논문은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과연 전통 의서에 소개된 짤막한 글귀만으로 약용식물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지부터 확실하지 않다.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 땅에서 자라는 약용식물도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이름이 변했을 수도 있고, 잡종이 생겼을 수도 있고 외래종이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약용식물의 성장이나 재배 환경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약용식물에 대한 현대 분류학적 연구를 강화하고 생약재의 유효성분‧약효‧부작용에 대한 현대 과학적 연구도 서둘러야 한다. 전통 의학을 현대 과학적 방법으로 재해석해서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전통 비법만 고집하는 것이 전통을 지키는 길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Premium Chosun        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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