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과학 이야기

36 과학자는 점쟁이가 아니다

浮萍草 2015. 4. 21. 09:47
    태풍 ‘매미’에 의해 초토화된 재해의 현장.
    가적인 대규모 자연 재해나 재난에서 과학자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과학자가 국민 안전에 대해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위험의 예측과 사태의 수습 과정에 과학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과학기술계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서 재난‧안전 분야의 연구개발을 확대해서 과학자들이 재난의 예방과 대응에 필요한 첨단 융복합 기술을 개발하고 국가 재난관리 시스템을 정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의 예측과 해결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국가적 재해‧재난의 예보·예방‧구호‧복구에서 과학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지의 문제는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ㆍ과학기술은 가장 현실적인 안전 대책
    육체적으로 연약한 인간이 거칠고 위험한 자연에서 안전하고 화려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하게 과학기술 덕분이었다. 추위와 더위를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하고, 질병을 퇴치하고, 자연 재해를 극복하기 위한 모든 노력이 과학기술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광포(狂暴)한 자연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던 재앙을 막아보려던 주술적·종교적 노력과 희생은 일시적으로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 줄 뿐이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위험에 대한 과학기술의 역할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선체 인양을 위한 대형 크레인과 쓸모 없는 부표
    설치도 전문가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재해·재난의 예보와 예방, 인명의 구호와 시설물의 복구에 모두 과학기술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과학기술의 부작용에 대한 인문·사회 분야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국민 안전에 대한 과학기술의 기여는 분명하다. 현대 사회에 대한 온갖 종말론적인 예언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계의 인구가 70억명을 넘어서고 평균 수명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다. 우리나라에서 태풍에 의한 인명 피해에서도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과학기술을 이용한 현대적 사회 기반시설을 갖추지 못했던 1936년 8월의 태풍은 무려 1,232명의 인명을 앗아 갔다. 전설적인 1959년의 사라호에서도 849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사라호보다 훨씬 규모가 컸던 루사(2002)와 매미(2003)의 희생자는 각각 246명과 132명이었고, 볼라벤 (2012)의 경우에는 고작 14명에 지나지 않았다. 반세기 동안의 인구 증가까지 고려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변화임에 틀림이 없다. 과학기술을 이용한 사회 기반시설의 확충이 인명 보호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ㆍ과학자의 참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과학자가 국민 안전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원칙적으로는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과학자도 민주화된 과학기술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예방·구호·복구에 필요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과학자의 참여가 매우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과학자에게 무작정 참여를 강요하기는 어렵다. 위험 상황에서 과학자의 현실 참여에는 심각한 현실적인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해·재난 상황에서 과학자의 참여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과연 누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고 사회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과학자인지를 가려내는 일부터 간단하지 않다. 모든 과학자에게 무작정 위험 현장에 대한 정보를 공개할 수도 없다. 과학자들이 모두 복잡한 위험 상황에 대해 동일한 예측이나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의 어떤 의견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실제로 그동안 언론을 통해 소개되었던 많은 과학자와 전문가들의 능력은 대부분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언론에 소개되는 엉터리 전문가들의 황당한 주장 때문에 사태가 악화됐던 경우도 많았다. 긴박한 상황에서 민주적인 절차만 강조할 수도 없다. 실제로 비윤리적·반도덕적 의도를 숨기고 접근하는 엉터리 과학자·전문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천안함과 세월호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한 일이다. 엉터리 전문가들이 무책임한 언론을 통해 무의미한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고,그런 압력 때문에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갈등이 빚어지기기도 했다. 과학자에게 위기 대응에 참여하는 비전문가에 대한 설득을 요구하는 것도 불합리하다. 비전문가에게도 과학적 상식과 합리적 사고방식을 갖추도록 요구해야만 한다.
    라퀼라 지진의 예측 실패로 사법적 책임을 추궁 당했던 이탈리아의 과학자들.

    ㆍ과학자에게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재해·재난 상황의 예측이나 해결에 참여하는 과학자의 책임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물론 정부나 사회로부터 사태 해결에 대한 권한을 부여받는 경우에는 사법적·제도적·윤리적 책임을 묻을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전문가의 자격으로 위기 상황에 대한 예측이나 해결책을 제시한 과학자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위기 상황이 종료된 후에 과학자가 제시했던 의견에 대해 실질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논리적·현실적으로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과학자는 미래의 일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점쟁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예측이나 해결책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에서는 어느 전문가도 소신을 가지고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 어떤 전문가도 100퍼센트 완벽한 예측이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서 파악할 수 있는 정보와 자료가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재해·재난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불완전할 수도 있다. 결국 위기에 대한 과학적 예측이나 해결책에는 상당한 수준의 불확실성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재해·재난의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는 그런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수도 있다. 결국 위기 해결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과학자의 책임과 역할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 언론의 책임과 역할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언론이 전문가 선택에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언론이 자격과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엉터리 전문가에 의한 불필요한 논란을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적 책임도 외면하지 않겠다는 각오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언론이 위기 상황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과학적 상식을 갖춰야만 한다. 자신들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불확실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책임 있는 언론의 자세가 아니다. 물론 자연 재해와 재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응 자세도 갖춰야 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 확보한 과학기술뿐이라는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리의 과학적 이해와 기술이 완전하지 못한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Premium Chosun        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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