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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박태준 회장은 창업주인가 공장장인가.

浮萍草 2015. 3. 24. 11:01
    2012년 12월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박태준 명예회장 부조 제막식 및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유가족 및 주요 참석자들의 모습./조선 DB
    난 1993년 3월 포스코(당시 포항제철)에 대 변혁이 일어났다. 새로 집권한 YS(김영삼 대통령)정부가 포스코 박태준 회장의 흔적 지우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TJ(박태준)의 흔적은 곳곳에서 없어졌다. 포항본사와 서울 사무소에 내 걸렸던 사진 역시 치워졌다. 1973년7월3일 포항제철공장이 준공하는날 화입식 장면 한장 빼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YS가 지난 92년 대통령 선거때 자신에게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태준 지우기’에 나선 결과다. 지금까지 사용하던‘포항제철’이라는 이름도‘포스코’로 바뀌는 작업이 진행됐다.(이 개명작업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로 관철되지는 않았지만 2002년 정식 개명되었다) TJ맨으로 불리던 인사들은 대부분 사법처리를 받았다. 전직 회장과 사장을 역임했던 황경로 박득표씨등이 이때 구속되었다. TJ는 지병을 핑계로 일본으로 출국,한동안 망명아닌 망명생활을 시작했다. 2004년 모친이 별세하자 장례식 참석을 이유로 김해 공항을 통해 귀국 국내에 정착했다.물론 검찰 수사는 피할 수 없었다. 그 뒤 1997년 대선에서 DJ(김대중 대통령)가 당선되면서 TJ는 다시 화려한 복귀를 한다. 포스코엔 없어졌던 TJ흔적들이 다시 복원되기 시작했다. 사법처리 됐던 TJ맨들도 화려하게 포스코로 돌아와 그들의 천국이 됐다. 그후부터 2011년 12월 타계하기전까지 TJ는 포스코의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자서전출간과 TV드라마로도 방영됐다. 그의 아호를 딴 ‘청암장학재단’도 포스코가 거액을 출자 만들어 졌다. 지난해에는 포스코 서울 사옥 1층 로비에 대형 흉상이 세워지기까지 했다. 전신 흉상은 서울사옥만이 아니라 포항제철과 광양제철 사옥에도 만들어졌다. 서울 계동 현대건설 본사 로비에 세워진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의 반신 흉상을 압도할 만큼 그의 흉상은 화려하다. 포스코에 TJ의 위상이 얼마인가를 가름하는 상징으로 손색이 없다. 이러한 TJ우상화에 최근 새로운 조짐이 일고 있다. TJ는 포스코의 ‘공장장’역할이었을 뿐인데 ‘창업주’처럼 행세했다는 비판의 시각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현 정권의 핵심부에서 그러한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사실 포스코의 설립은 박정희 대통령이 기획하고 ‘고용사장’으로 TJ를 앉힌 것이나 다름없다.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 직후부터 포스코는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애착을 갖고 만들었는데 최근 부정과 경쟁력 약화가 불거져 안타깝다고 연속해서 밝힌바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포스코의 창업주는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어서 TJ우상화와는 상충되는 발언이다. 사실 그렇다. 박 전대통령은 집권 초기 독일을 방문했을 때 철강과 자동차에 관심을 갖고 한국에 철강회사를 만들려는 거대한 구상을 하게 된다. 이 구상을 TJ에게 맞겨 실행에 옮긴 것이다. 박 전대통령은 ‘종이마패’를 만들어 줄 정도로 TJ에게 전권을 위임,반대세력을 무력화 시켰다. 포항제철이 준공하는 날 직접 포항에 가 친필 휘호를 써주며 격려하고 포스코의 중요성을 알렸다. 세계 최강의 제철회사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근저에는 박 전대통령의 절대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90년대 중반 ‘한보비리’사태가 터졌을 때 정태수 회장이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당시 언론들은 당진의 한보철강 공장을 짓는데 광양제철의 3배가 넘는 돈이 투입돼 이중 일부를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집중제기할 때였다. 정 회장은 “광양제철은 정부에서 바다를 메워주고,고속도로를 만들고,전기를 설치해 주는 등 혜택을 받아 세워졌지만 한보 공장은 진입로를 사비로 만들고 전기는 발전기를 직접 설치해 충당했다”며서“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언론 보도가 올바른 것이냐”고 반문한 적이 있다. 그의 주장은 일면 옳은 면이 있다. 당시 한보철강에 가려면 도로사정이 상당히 열악했다.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해 4시간은 걸려야 도착할 수 있을 만큼 도로 사정이 어려웠다. 정부의 힘으로 만들어진 광양제철과 개인에 의해 세워진 한보철강이 비교되는 일화다. 어쨌든 현재 포스코를 둘러싼 온갖 루머와 투서가 난무하고 있다. 정준양 회장이 재임했던 5년동안 포스코의 경영실적은 곤두박질했고 각종 비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이를두고 포스코에 오래 몸담았던 한 임원은“박태준 회장의 잔재를 털지 않고는 해결 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진단했다. 포스코 창립 이후 TJ의 그림자가 너무 깊게 깔려 있다는 얘기다.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이 용광로 고로에 화입하는 모습./조선 DB

    TJ는 1966년 창립이후 YS집권시절인 1993년부터 1997년까지를 제외하곤 절대적으로 포스코 경영에 관여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의 경영 철학은 포스코 순혈주의다. 즉 외부인사의 경영 배제다. 실제 1994년 재무장관을 지낸 김만재 회장을 제외하곤 역대 회장 모두 포스코 출신이다. 그렇다보니 자연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다. 회장 선임을 위해 TJ와 정치권에 줄대기위해 온갖 로비를 일삼았다. 경영능력보다 누가 TJ와 가깝냐와 정치권과 밀접하냐에따라 회장 선임이 결정되었다. 거의 대부분이 TJ 천거로 회장이 선임되었으나 2009년 정준양 회장이 선임될 때는 달랐다. 새로 집권한 MB(이명박 대통령)쪽 인사와 가까운 정준양회장이 당시 사장이던 윤석만씨를 누르고 회장이 된 것이다. 이 당시 두사람의 회장 선임을 위한 로비전은 불꽃을 튀었다. TJ와 MB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혈투로 비쳐졌다. 그러나 승자는 역시 살아있는 권력인 MB측 인사였다. MB측의 도움으로 정준양 사장이 회장으로 선임되었지만 TJ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11년 TJ가 타계하자 정준양 회장은 그를 우상화하는 작업에 앞장선다. 사옥 곳곳에 설립된TJ전신 흉상이 이를 방증한다. 이를 두고 포스코 내부에서 조차“하나 정도의 흉상은 봐줄만하지만 곳곳에 설치된 것은 너무 심한 것 같다”는 비판이 나온다.정 전회장이 자신이 정통성이 없으니까 TJ를 우상화 함으로써 자신을 그 반열에 놓으려는 술책이었다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포스코가 이만큼 성장하는데 TJ의 헌신이 있었다는데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에게 전권을 일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업주가 아닌 경영인으로서의 역할만 부각해야 정당한 것 아니냐는 반문이 나온다. TJ아들인 박성빈씨의 회사가 포스코와 거래하면서 급성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포스코 주변에서 입방아를 낳고 있다. 실제로 박씨가 운영하는 SP코리아는 설립 이듬해부터 포스코의 기업용 전화 교환기를 설치하는 일을 맡아 급성장했다. 그는 청암재단 이사로도 등재,포스코의 막강한 배후 실세로 알려졌다. 최근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씨가 한 일간지에 기고하고 있는 회고록에 아주 의미있는 증언을 했다. 1992년 집권 민자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왔던 그가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만나 TJ를 후계자로 밀면 어떠시냐는 건의를 하자 노 대통령이 TJ는 절대 안된다면서 이유를 설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유를 자신도 밝힐 수 없을 것 같다면서‘묘한 뉘앙스’만 풍김점이다. 특별한 내용이 아니면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포스코 경영자로서 TJ는 훌륭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를 창업자 이상으로 우상화하며 지금도 그의 잔영들이 떠돌아 다니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다. 창업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포스코가 정상화 하려면 정치권의 간섭과 TJ의 잔영도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는 얘기들이 포스코 주변에 나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Premium Chosun        홍성추 조선일보 객원기자 sch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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