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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금정총림 범어사

浮萍草 2015. 1. 25. 11:16
    ‘금빛 바람’…범어사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아름답다
    부산 시내의 막히는 번잡함에서 해방된 기분 때문인지 금정산 오르는 일방통행 자동찻길도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 이르는 길도 아름답다 주차장에서 이어지는 대숲 사이 계단을 걸어 경내로 올라서는 길 또한 더 없이 아름답다
    쪽 다리의 일부분을 잃었지만 대웅전의 기둥 초석에 자연스레 기대고 있는 금고(金鼓)의 풍경이 일품이다. 금고는 우리나라의 전통 타악기인데 보통 ‘징’이나 ‘대금’으로 불리고 사찰에서는 ‘금고’나 ‘태정’이라 부른다. 낮고 부드러우면서도 긴 여운과 깊은 울림이 있다. 설법전 앞으로 한가득 늘어선 메주덩어리가 포근하게만 느껴진다. 길지 않지만 오묘하고 맛깔스런 계단길이다.
    ㆍ일주문

    보물 제1461호. 1694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배흘림한 원형 돌기둥 네 개에 세워 놓은 지붕구조물이 300여년을 넘게 안정적으로 서있는 것이 놀랍고 거친 주초석의 우람한 형태가 아름다운 걸작이다. 일주문 뒤로 천왕문과 불이문이 조금씩 꺾인 진입로의 깊이감이 한참을 바라보게 만든다. 날짐승을 위해 한가득 남겨둔 감나무의 주황빛 감이 파란 겨울 하늘에 유난히 돋보인다. 어디서 불어왔는지 귓가를 살랑이며 스쳐가는 바람.남쪽 지방의 햇살은 겨울이지만 봄을 생각나게 하는 부드러운 느낌이다. 이내 바람은 길 양옆을 메운 대나무 숲을 흔들며 파도 같은 일렁임과 소나기 같은 소리로 번져 나간다. 범어사에 거대한 물결이 흐른다. 황금색 물이 가득 찬 우물이 있어 금정산이라 불렸던 곳,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헤엄치며 놀았다는 금빛 물고기가 기원이 되어 범어사라 이름 붙여진 곳 그 곳곳마다 햇살 담긴 금빛 바람이 잔잔하게 스며들어간다. 그렇게 또 한해가 시작되고 있었다.

    범어사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아름답다. 부산 시내의 막히는 번잡함에서 해방된 기분 때문인지 금정산을 오르는 일방통행 자동찻길도 아름답고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에 이르는 길도 아름답다. 주차장에서 이어지는 대숲 사이 계단을 걸어 경내로 올라서는 길 또한 더 없이 아름답다. 모든 것들이 그렇듯 이 아름다움들도 시대를 거쳐 끊임없이 변해온 것이 사실이다. 자동차길 주변으로 늘어가는 건물들과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왜곡되어진 사찰 곳곳의 풍경들,그리고 다시 전통적인 사찰 가람을 되찾기 위해 벌어졌던 근래의 공사들. 비록 오래지 않은 익숙함들에도 미련이 남게 마련인지라 변화가 아쉽기도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범어사의 일부분이 될 것이기에 새로움이라는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사찰 일주문의 대명사가 된 듯한 조계문을 지나 천왕문과 불이문을 거쳐 새로 만든 보제루의 거대함과 만난다. 그 밑을 빠져나가듯 계단 끝에서 만나는 금당 구역 익숙하면서도 명쾌한 이 동선은 바로 화엄 사찰의 영향이다. 신라 흥덕왕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왕이 의상대사와 함께 금정산에 올라 기도 후 창건되었다는 의상대사의 화엄십찰 가운데 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맥락은 임진왜란에도 이어져 서산대사가 이곳을 사령부로 삼아 승병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현재 규모면에 있어서도 지붕 기와 능선이 만드는 중첩된 선들의 장관이 웅장하기만 한데 해인사,통도사와 더불어 경남의 3대 사찰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과히 마르지 않는 금정산 전설의 우물처럼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역사를 짐작할 만하다.

    대나무 숲 옆길을 다시금 돌아 나오며 낯익은 소리에 고개를 치켜든다. 나무에 날아든 까치 두 마리가 까치밥으로 놓아둔 감을 쪼며 연신 깍깍 대고 있다. 새해를 맞은 그들의 인사는 언제 들어도 반갑다. 나무 가득 걸린 감들이 모두 없어질 때면 다시금 가지에 새 잎도 돋아나고 봄바람도 불어오리라. 그때쯤이면 범어사의 남은 공사도 마무리되어 있을까. 새 마저 떠나가고 햇살조차 숨을 죽인 듯한 고요한 대나무 숲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범어사를 떠나기 전 한 번 더 일주문의 투박한 돌기단에 손길을 주고 싶어 길을 재촉했다.
    ☞ 불교신문 Vol 3075 ☜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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