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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浮萍草 2014. 9. 28. 11:49
    추사가 원교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었을까
    [왼쪽 편액] 김정희의 글씨 ‘무량수각’
    가철의 대흥사 계곡은 피서객들로 가득했다. 지금까지 보아 왔던 기억 속의 대흥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8월 땡볕이 가득한 경내에는 사람의 발길이 드물었다. 아침의 그 지리하던 안개와 좀 전까지 북적대던 많은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연리지가 된 거대한 나무를 끼고 돌아 두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금당천을 건너 대웅보전 안마당에 들어섰다.
    대웅보전 소맷돌 돌사자의 인상은 꽤나 엄숙하고 강하게 느껴진다. 반면 기단 모서리에 순진한 얼굴로 쇠고리를 물고 있는 돌짐승은 무척 대조적이다.

    금당 앞으로 훤칠하게 솟은 종려나무 두 그루가 인상적이다. 외래종인 종려나무가 고찰의 분위기와 조화롭지 못하다는 혹평도 있다. 하지만 몇 년씩 건너 찾게 되는 나와 같은 먼 곳의 순례자에게 나무의 성장은 즐겁다. 변함없는 건물들 사이에서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는 듯 반갑기 때문이다. 남도의 정취를 자아내는 듯 한 이 나무는 올 때마다 조금씩 그 키를 더해 가는데 이제 처마 높이에 조금 못 미칠 정도로 자랐다. 언젠가 전각 보다 높게 자라게 될까? 앞으로 나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 옆으로 걸린 대웅보전 편액은 이광사의 글씨로 남다른 사연을 갖고 있어 유명하다. 원교 이광사는 조선 후기 문인으로 글씨에서 독특한 서체를 이룩하여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훗날 제주도로 귀양 가던 추사가 대흥사의 초의선사를 만나기 위해 들렀다가 이 편액을 보고 조선의 글씨를 망쳐 놓은 이광사의 글씨라며 떼어 내길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해탈문에 걸린 물 흐르듯 유려한 글씨의 편액도 이광사의 흔적인데 이 문을 들어서면 대흥사를 품에 안은 두륜산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이 산세를 보고, 비로자나불이 누워 있는 형상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귀양살이 9년 후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른 김정희는 자신의 경솔함을 인정하였고 이광사 글씨는 다시 제자리에 걸려 지금까지 전해 내려 오게 된 것이다. 외로움과 서글픔이 가득했던 귀양살이에서 추사체를 완성하고 여러 학문을 익힌 그에게 인생 후반에 찾아 온 깨달음이 진정 위대한 학자이자 예술가를 만들어 낸 것일까. 그런 그의 글씨도 대웅보전 옆 스님들의 거처인 백설당에‘무량수각’이라는 글자로 남아 있으니 이광사와 김정희는 한 공간에서 글씨로써 나란히 마주하게 된 셈 이다. 나는 한 동안 잘 볼 줄도 모르는 두 명필가의 글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처마의 그늘은 여름 오후의 강한 햇살만큼 짙게 드리워졌고,그림자 또한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흑백의 경계를 나누고 있었다. 더위가 강렬한 만큼 가을이 성큼 가까워 오는 걸 느낀다. 계절의 변화는 모호했던 새벽안개가 말끔히 걷히듯 분명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그토록 확신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는 않다. 그래서 더욱 그 옛날 추사 김정희가 깨달았던 인생의 의미가 자못 궁금해질 따름이었다.
    ☞ 불교신문 Vol 3037 ☜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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