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스케치여행

속초 신흥사

浮萍草 2014. 12. 14. 11:54
    주인공이던 설악의 줄기는 배경으로 물러앉고 
    절집의 향기는 깊고 은은하게 배어 나오네
    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겨울이 되면 산야에 남겨진 상록수들의 초록빛은 더욱 선명해진다. 무더운 여름, 녹음에 가려져 특별하지 않았던 그들의 존재가 화려한 가을 단풍 뒤에 유난히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다. 내겐 설악산의 신흥사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싶다. 몇 번이고 정상까지 오르내렸던 설악의 품이거늘 그동안 사찰에 대한 기억은 산정을 오가며 만나왔던 청동불좌상의 거대하고도 묵묵한 미소뿐이었다. 아마도 설악이라는 명산을 향한 출발의 설렘과 하산의 지친 발걸음 사이에서 늘 스쳐 지났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스케치만을 위해 산사로 향하는 오롯한 발걸음은 새롭기까지 했다. 따뜻한 초겨울이라지만, 산 속의 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만들었다. 찻집을 돌아 담을 따라 걸은 뒤 사천왕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섰다. 고즈넉했다. 항상 주인공이었던 설악의 줄기는 배경으로 물러앉았고 절집의 향기는 깊고 은은하게 배어 나왔다. 왜 미처 몰랐을까. 오래 전 설악을 처음 넘던 기억 속 한 켠에서부터 절집이 자리했다면 그간 이 장소에 대한 단상은 또 얼마나 다르게 자라왔을까. 하지만 후회는 없다. 세상에는 상록수의 초록빛처럼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되는 것들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처마 밑에 앉아 기와선 위로 잎을 떨어뜨린 가지들이 부드럽게 번져 올라오는 것을 바라본다. 그 너머로 널찍이 퍼진 짙푸른 상록수의 울안에서 신흥사의 빛깔은 청명하고 아득하게 시간을 더해가고 있었다.
    ☞ 불교신문 Vol 3063 ☜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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