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과학 이야기

29 공포의 바이러스가 밀려오고 있다

浮萍草 2015. 1. 13. 09:40
    에볼라 출혈열을 일으키는 에볼라 바이러스(왼쪽)와 계절형 독감과 조류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오른쪽)
    겨울은 정말 매섭게 춥다. 예년보다 온화할 것이라던 기상청의 장기예보는 처음부터 믿을 것이 아니었다. 겨울이 시작되는 12월의 첫날부터 전국적으로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쳤다. 하룻밤 사이에 기온이 10도나 떨어져버렸다. 그런데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칼바람만 차가운 것이 아니다. 찬바람과 함께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AI(조류독감)과 구제역도 전국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서아프리카에 창궐하고 있는 에볼라에 대한 공포도 외면할 수 없다. 인도적 목적으로 파견된 우리 의료진이 치명적인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생명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미물(微物)인 바이러스가 그렇지 않아도 매서운 바람에 움츠러든 우리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만 명 이상을 희생시킨 스페인 독감 환자 수용소의
    모습
    에볼라보다 더 무서운 인플루엔자 A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 1월 4일 현재 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기니를 비롯한 서아프리카 8개국에서 2만747명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8235명이 목숨을 잃었다. 1976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3주 정도의 잠복기가 지난 후부터 눈·코·입·장기에서 출혈이 시작된다. 치사율이 90퍼센트에 이르기도 한다. 감염을 막아줄 예방 백신도 없고, 뾰족한 치료제도 없다. 그나마 감염 경로가 비교적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다행일 뿐이다. WHO에 따르면 에볼라 바이러스는 감염된 사람이나 동물의 혈액·땀·정액·토사물·설사 등과의 직접 접촉에 의해서만 옮겨진다. 40여 년에 가깝도록 에볼라가 서아프리카의 한정된 지역에서만 간헐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에볼라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바이러스가 있다. 겨울철에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가 그렇다. 매년 300만 ~ 500만 명이 계절형 독감에 감염되고,그 중 25만에서 50만 명이 사망한다. 감염자나 희생자의 수에서 에볼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더욱이 계절형 독감은 계절에 따라 남반부와 북반부를 오가면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그러나 워낙 오랜 세월 동안 반복되는 탓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일상적인 일이 돼 버렸다.
    비록 예방 백신과 몇 종류의 치료약이 개발돼 있고 치사율이 비교적 낮은 것이 다행이지만 결코 안심할 수가 없다. 자칫 대유행(pandemic)이 시작되면 사태는 정말 걷잡을 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2009년 대유행의 경우에도 214개국에서 2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가 발생했다. WHO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계절형 독감의 발생 현황을 실시간으로 감시해서 경고를 발령하고 적절한 백신 개발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글로벌 인플루엔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참혹했던 1918년 스페인 독감의 정체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던 1918년 겨울에 시작된 인플루엔자 A 대유행은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참혹했다. 전자현미경이 없었던 탓에 바이러스의 존재도 알 수 없었고 백신이나 치료약도 없었다. 건강했던 신병이 아침에 열이 나기 시작해서 저녁에 숨을 거둘 정도로 치명적인 ‘괴질’이었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참혹한 ‘역병’이었다. 다급해진 미국은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인체 실험도 실시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일제의 침략으로 어수선했던 우리나라에서도 1919년 3·1 운동이 시작되기까지 당시 인구의 1퍼센트에 해당하는 20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변변한 역사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은 스페인 독감의 진짜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현대 생명과학 덕분이었다. 미군 당국이 훗날을 위해 파라핀에 넣어 보관했던 독감 희생자의 가검물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부서져버릴 정도로 긴 세월이 흐른 후였다. 결국 알래스카 동토 지대의 얼음 밑에 묻혀 있던 당시 희생자의 시신에서 온전한 바이러스를 찾아내고 그 정체를 밝혀낸 과학자들의 끈기와 집념은 대단했다. 세계적인 과학 저널리스트인 지나 콜라타의 <독감>(안정희 옮김,사이언스북스)에 소개된 현대 생명과학자들의 활약은 감동적이다. 2009년 ‘신종 플루’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와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H1N1형의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가 바로 1918년 스페인 독감의 주범이었다.
    3000년 이상 인류를 괴롭히다가 1977년에 영원히 자취를 감춘 천연두 바이러스
    바이러스와의 불편한 동거 1898년에 처음 그 존재가 밝혀진 바이러스는 대부분 광학 현미경으로도 그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미물이다. 바이러스도 DNA나 RNA와 같은 유전물질을 가지고 있고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를 하지만 역시 미물로 알려 진 박테리아(세균)와 달리 숙주 세포의 대사 과정을 이용하지 않으면 스스로 후손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온전한 생명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생명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바이러스는 아마도 지구상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진화를 시작할 때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정체를 확인한 바이러스는 대략 5000여 종에 이른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의 종류는 수백만 종이 넘을 것이 분명하다. 하찮은 미물에 불과한 바이러스도 존재 이유가 있다. 특히 수중 생태계에서 바이러스의 역할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10밀리리터 정도의 물에는 백만 마리 이상의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수중 바이러스는 식물이나 동물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 대신 수중 박테리아를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실제로 바이러스는 수중 생태계에서 탄소 순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적조(赤藻)와 녹조(綠藻)를 해결해주는 것도 바이러스라고 한다. 대장균과 마찬가지도 숙자와 평화롭게 공생을 하는 바이러스도 많다.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멀쩡하게 살아있는 철새도 많다. 그런데 박테리아처럼 바이러스도 쉽게 돌연변이를 일으켜 변종을 만들어낸다. 더욱이 동물·식물·박테리아는 물론 생물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생태계 전체를 비교적 자유롭게 옮겨 다니기도 한다. 그런 바이러스 중에는 우리 인간을 비롯한 특정한 숙주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기는 경우도 있다. 올 겨울 우리를 얼어붙게 만드는 에볼라,AI(조류독감),구제역, 에볼라를 포함해서 감기,천연두, 홍역,볼거리,백일해,HIV(에이즈),대상포진, 자궁경부암 등이 모두 그런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다.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항생제로 비교적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박테리아 감염과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 항생제와 마찬가지로 바이러스를 직접 퇴치해주는 항바이러스의 개발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우리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면역 기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이용해서 후천적으로 면역 기능을 길러주는 백신이 고작이다. 15세기경부터 중국에서는 일종의 천연두 백신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세기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에 의해 개발된 천연두 백신 덕분에 천연두 바이러스는 1977년 이후에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렇다고 백신의 개발이 쉬운 것도 아니다. 애써 백신을 개발하더라도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버리면 속수무책이 되어 버린다. 매년 새로운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생산하는 독감 백신과 마찬가지로 구제역 백신도 바이러스의 변신에 따라 개발을 해야만 한다. 바이러스와의 동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Premium Chosun        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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