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과학 이야기

26 입시학원의 배만 불리는 수능 난이도 논란

浮萍草 2014. 11. 25. 10:05
    수능 당일인 11월 13일 오전에 수능 출제경향을 발표하는 수능출제위원장.
    능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올해도 역시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절했고,출제의 근거와 문항 검토를 강화했다’는 수능출제위원장의 호언장담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물수능’논란과 출제 오류 지적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영어와 수학은 만점자가 넘쳐나서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으로 내려앉게 될 모양이다. 그렇다고 모든 과목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문과의 국어는 9월의 모의평가와는 정반대로 너무 어려워져서 수험생들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탐구 영역에서도 과목에 따라 난이도가 들쭉날쭉했다고 한다. 결국 불안해진 수험생들이 수시 논술로 몰려가면서 수능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ㆍ매년 반복되는 난이도 논란
    수능의 난이도 논란이 올해 처음 불거진 것은 아니다. 수능이 처음 도입됐던 1993년부터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반복되고 있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난이도 논란이 전개되는 양상도 변하지 않고 있다. 수능 시험이 시작되면 출제위원장이 언론에 등장해서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절했고 출제된 문제는 엄격하게 검토했다’는 요지의 인터뷰를 하고 수능이 끝나면 소위 ‘입시전문기관’으로 소개되는 사교육 시장의 명쾌한 분석들이 속보로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다음날이 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져버린다. 출제위원장의 인터뷰와 입시전문기관의 분석은 아무 근거가 없는 공허한 주장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수험생과 학부모는 어쩔 줄 모르고 허둥거린다. 대표적인 ‘물수능’이었던 2000년의 경우가 그랬다. 조금 어렵게 출제를 해서 전체 평균이 조금 떨어질 것이라던 출제위원장의 구체적인 발언과 달리 수능 다음날 공개된 거대 자본을 앞세운 입시 학원들의 가채점 결과는 정반대였다. 중상위권 학생들의 점수가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일선 교사와 수험생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져 버렸고 쉬운 수능에 대한 불만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궁지에 몰린 평가원은 2001년의 수능을 너무 어렵게 만들어 ‘널뛰기 수능’이라는 비난이 시작되었다. 대통령이 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에 대해 대국민 사과도 했다. 가장 어려운 수능이었다는 2002년의 경우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출제위원장은 지난 2년 동안의 경험을 고려해서‘적정한 수준’으로 출제를 했다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입시 학원들의 분석도 엇갈렸지만 대체로 평균이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거의 모든 학생의 성적이 크게 떨어져 버렸다. 어려운 수능의 충격은 엄청났다. 성적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언론 보도에 자신만 성적이 떨어졌다고 착각했던 재수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까지 생겼다. 출제는 쉽게 했는데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져서 생긴 일이라는 어설픈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재수생의 성적은 올라갔는데 재학생의 성적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 그런 분석의 근거였다. 입시 학원을 ‘입시전문기관’으로 격상시켜 엉터리 정보를 확산시킨 언론이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ㆍ첫 수능부터 실패했던 난이도 조절
    수능의 난이도 조절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수능을 처음 도입했던 1993년부터 분명하게 확인된 사실이었다. 문·이과 구분 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언어·수리·영어의 3개 영역에서 통합 교과적 사고력을 평가하겠다는 대학 수학능력시험(수능)을 도입했던 교육 당국은 난이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학생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가혹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교육 당국은 8월과 11월에 동일한 난이도의 수능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수능 성적으로 대학에 응시를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 교육 당국의 화려한 꿈이었다. 11월에 치러진 2차 수능의 출제위원장은 시험 당일 아침에 ‘1차와 비슷한 난이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문항의 내용과 형식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성적이 다소 올라갈 것’이라는 점잖은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시험 다음날부터 2차 수능의 성적이 1차보다 크게 떨어진 것으로 확인이 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80% 이상의 학생들이 1차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얻은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미국의 SAT를 흉내 내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는 교육 당국과 출제 전문 교육학자들의 어설픈 허세에 학생들만 골탕을 먹은 셈이 되고 말았다. 계열 분리와 과목 쪼개기가 도입되면서 수능은 난이도 조절은 물론 통합적 사고력 평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쳐버린 정체불명의 평가로 전락해버렸다. 우리가 지난 20년 동안 반복적으로 확인했듯이 출제 단계에서 수능의 난이도 예측은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난이도의 사전 예측은 미국의 SAT처럼 완벽한 문제은행을 운영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사회적 신뢰 수준이 턱없이 낮은 우리 사회에서 문제은행을 운영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지나치게 많은 선택과목이 제공되는 우리의 수능은 과목간 난이도 조절의 어려움 때문에 근원적으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잘못된 평가 제도다. 우리 아이들에게 출발부터 극단적인 좌절감과 불만을 안겨줄 수밖에 없는 수능은 하루 빨리 포기해야 한다.

    ㆍ사교육 시장의 배만 불리는 난이도 논란
    수험생의 입장에서 수능의 난이도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선택과목의 난이도 차이는 학생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정체도 불확실한 ‘변환점수’와 ‘표준변환점수’가 과목간 난이도 차이를 보상해준다는 교육 당국의 주장도 믿을 것이 아니다. 그런 통계적 조작은 수험생들의 성적이 통계적으로 정상적인 종 모양의 분포를 이루고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과연 학생들의 원점수를 통계적으로 변환함으로써 선택 과목의 난이도에 의한 불이익이 줄어든다는 분명한 근거는 한 번도 제시된 적이 없다. 난이도에 따라 대학을 선택하는 방법이 크게 달라진다는 언론과 입시 학원의 주장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수능의 난이도가 대학 선택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지나치게 쉬운 ‘물(水)수능’과 지나치게 어려운 ‘불(火)수능’의 경계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난이도 예측에서 번번이 헛발질을 하는 입시 학원의 호들갑에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민감한 관심을 보일 이유가 없다. 실제로 난이도 논란으로 이익을 챙기는 곳은 입시 학원뿐이다. 올해도 입시 학원이 개최한 입시 설명회는 성황을 이루었다. 2002년 수능 보도에 대해 스스로 뼈아픈 반성을 했던 언론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Premium Chosun        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