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과학 이야기

30 위험한 사회를 안전 사회로 바꾸는 방법

浮萍草 2015. 1. 27. 10:31
    남산 터널 안에서 LPG 택시에 불이 난다면
    현대 위험사회에 대한 경종을 울려준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
    극적인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안전’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져 주었다. 실제로 치명적인 안전 불감증에 빠져버린 우리 사회를 바닥부터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는 극단적인 국가 개조론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해경이 해양경비안전본부로 이름을 바꿨고 총리실 산하에 국민안전처라는 거대 행정조직이 만들어진 것이 고작이다. 미래부도 국민 안전을 위한 과학기술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진정한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가시적인 노력이나 성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로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도 아니다. 사소한 부주의에서 시작된 의정부 화재가 참혹한 참사로 끝나버린 것이 가장 확실한 증거다.
    ㆍ우리는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다
    새해 첫날에 심장마비로 아깝게 세상을 떠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주장처럼 오늘날 우리는 정말 심각한 위험 사회에 살고 있다. 실제로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그런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원전만 무서운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안심하고 이용하는 자동차도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액화석유가스(LPG)를 쓰는 택시나 압축천연가스(CNG) 쓰는 시내버스가 그렇다. 만에 하나 인구가 밀집된 도심이나 러시아워에 터널 안에서 폭발이나 화재 사고가 일어난다면 그 결과는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끔찍할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있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험 요소다. 심지어 현대 정보화 사회의 꽃인 인터넷도 우리 사회를 극심한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어느 날 갑자기 위험 사회로 변해버린 것은 아니다.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지구 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상상을 넘어서는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먹을 것을 찾아내는 일에도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비바람을 피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어둠이 찾아오면 위험은 더욱 심각해졌다. 단순 사고의 위험만 커지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목숨을 노리는 야행성 맹수를 피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태풍·폭우·폭설·산불·지진·화산·해일이 모두 심각한 위험 요소였다.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역병(疫病)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함께 살고 있다고 믿었던 이웃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험 요소로 돌변하기도 한다. 인류의 역사는 정치·종교·이념 등을 앞세운 대규모 살상과 참혹한 전쟁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ㆍ과거보다 더 위험해진 것은 아니다
    1959년 추석에 사라호 태풍 때문에 초토화된 영남 지방
    현대 사회에서 상상을 넘어서는 끔찍한 초대형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서해페리호와 세월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삼풍백화점 붕괴,대한항공 여객기 추락,대구 지하철 화재 등이 모두 그렇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도 침몰했고, 추락한 말레시아의 여객기는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모두 수백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끔찍한 사고였다. 자연 재해의 규모도 더욱 커지고 있다. 2005년 멕시코만에서 시작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의 유서 깊은 도시인 뉴올리언스를 초토화시켜 버렸고 2013년 필리핀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 하이옌은 무려 1만 2천여 명을 죽거나 다치게 만들었다. 2004년의 수마트라 지진과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도 2만 여 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인간이 자초한 끔찍한 재앙도 끊이지 않고 있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 정권은 1975년부터 4년 동안 양민 200만 명을 학살했다.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가 과거보다 훨씬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세의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은 당시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제물로 삼았다.
    신대륙의 잉카인과 인디언들은 구대륙에서 전해진 천연두 등의 역병으로 몰살을 당하기도 했다. 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18년 겨울부터 전 세계를 휩쓸었던 스페인 독감의 피해도 엄청났다. 당시 인구의 1퍼센트가 넘는 20만 명 이상이 원인도 알 수 없었던 괴질로 목숨을 잃었다. 3·1 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의 우리 사회는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참혹한 상황이었다. 태풍의 역사도 정확하게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59년 9월 17일 영남 지방을 휩쓸고 지나간 사라호 태풍으로 849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37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3천 억 원의 재산 피해가 생겼다. 당시의 인구와 사회 상황을 고려하면 엄청난 규모의 피해였다. 결국 인간은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부터 줄곧 위험 사회에 살아왔던 셈이다. 오히려 현대에 들어서면서 위험을 예측·예방·복구하는 새로운 기술이 발전하면서 피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인간의 무지·실수·태만 등 인재(人災)에 의한 피해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ㆍ실질적인 비용과 노력이 필요
    민방위 훈련은 실질적인 대피 훈련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에게 위험을 극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안전을 전담하는 행정 부서를 만들고, 제도를 정비하는 일도 중요하다.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안전 매뉴얼을 만드는 일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안전 불감증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캠페인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그런 노력을 게을리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고 그동안 정부가 준비한 위기 대응 매뉴얼의 수만 해도 3천 여 개를 넘는다. 전국의 다리와 도로에 인접한 경사면에 안전 점검을 위한 거대한 철제 구조물도 설치했다. 아파트와 상가를 비롯한 거의 모든 건물에 소화기도 마련해두었다. 119 구급대의 활약도 세계적 수준이다. 그런데도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고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금까지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겉치레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한 노력에는 일회성의‘투자’가 아니라 상시적인 ‘비용’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다리와 경사면에 철제 구조물을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그런 구조물을 이용해서 다리와 경사면의 안전을 점검하기 위한 상시적인 예산이 필요하다.
    건물에 소화기와 화재탐지기를 마련해 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소화기의 상태를 점검하고 정기적으로 교체하는 비용도 준비를 해야 한다. 세월호의 경우처럼 전시용으로 단단하게 고정시켜둔 구명정은 아무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구명정은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투입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실질적인 노력도 필요하고 그런 노력에 따른 상당한 수준의 불편을 감수할 의지도 있어야만 한다. 화재탐지기와 화재경보기를 갖춰 놓았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화재 경보가 울릴 경우에 대피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회적 신뢰다. 우리 모두가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신뢰가 없는 사회에서는 안전을 위한 비용과 불편이 모두 자신에게만 강요되는‘손실’이고 희생’ 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런 비용을 아까워하고 불편을 견뎌내지 못하고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는 절대 안전 사회가 될 수가 없다.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민방위 훈련을 현실적인 소방 훈련으로 바꾸는 노력도 필요하다.
    Premium Chosun        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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