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과학 이야기

28 유가폭락 속 정유산업의 탈출구는?

浮萍草 2014. 12. 22. 11:20
    유 가격 폭락으로 세계 경제가 다시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런데 원유 가격이 떨어지면 실물 경기가 좋아졌던 과거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유가 하락이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도 전에 국제 금융시장을 강타해버렸다. 
    러시아는 디폴트를 걱정하는 형편이 됐고, 원유 수입국인 터키·인도네시아와 같은 신흥국도 혼란에 빠져버렸다. 
    선진국의 상황도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기름값이 떨어진다고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그동안 정부의 잘못된 에너지 정책 탓에 정유산업과 석유화학산업의 체력이 극도로 약해진 것도 문제다. 
    무작정 전기와 가스 요금을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안이하고 부적절한 것이다. 
    국제 석유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미국의 셰일가스

    ㆍ거세게 밀어닥친 셰일가스 바람
    산업혁명 이후 지난 200여 년 동안 인류 문명은 놀라운 발전을 거듭했다. 석탄·석유·천연가스를 비롯한 화석연료가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건강하고, 안전하고,평등하고,민주화된 사회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서 자동차 등의 연료와 섬유·플라스틱·고무 등의 다양한 석유화학제품의 기초 소재로 활용되기 시작한 석유는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해왔던 것이 사실 이다. 실제로 지난 한 세기 동안 세계 경제는 원유 가격에 따라 울고 웃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동안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국제 원유시장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변화의 바람은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고운 진흙이 단단하게 굳어져서 만들어진 혈암(頁岩) 또는 이판암(泥板岩)의 틈새에 들어있던 셰일 가스가 국제 원유시장의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주성분이 메탄인 셰일 가스는 천연가스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다만 위로 불룩한 배사(背斜) 구조에 많은 양이 모여 있는 석유나 천연가스와 달리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 셰일 가스를 채취하려면 새로운 기술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셰일 가스를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매장량과 기술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엄청난 양의 원유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세계 시장에서 원유를 수입해왔던 미국이 이제는 셰일 가스와 함께 원유까지 수출하기 시작했다. 중동과 러시아를 비롯한 전통적인 원유 수출국들이 저유가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원유 생산량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 아직은 충분한 경제성을 갖추지 못한 미국의 셰일 가스 생산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것이 OPEC의 입장일 것이다. 무력으로 우크라이나를 점령해버린 러시아에 대한 국제 사회의 거부감도 급격한 유가 하락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제유가 폭락에 대응력을 잃어버린 정유산업.

    ㆍ허약 체질로 변해버린 화학산업
    해마다 1천 억 달러가 넘는 원유를 수입하고 있는 우리에게 유가 하락은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이 없다. 원유 가격이 떨어지면 기업의 생산비가 줄어들고, 연료비가 줄어든다. 유가가 10% 하락하면 성장률이 0.2%포인트씩 올라간다는 분석도 있다. 연료비가 부담스러웠던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도 나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것이 기름 한방울 나지 않고,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안타까운 형편 때문이다. 원유 가격의 등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성장을 계속할 수 있는 비법(秘法)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환상일 뿐이다. 우리의 산업구조에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굴뚝산업의 비중을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 화학산업의 체질이 유난히 허약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정유산업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우리는 하루 300만 배럴에 가까운 원유를 정제할 수 있는 시설을 가진 세계 6위의 정유강국이다. 정유 공장에서 생산하는 나프타와 용매 등을 기초 소재로 활용하는 섬유·플라스틱·고무·의약품 등의 석유화학산업의 규모도 엄청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정유산업과 석유화학산업을 합친 ‘화학산업’은 생산·내수·수출 모두에서 자동차·전자·반도체·조선·중공업을 훌쩍 넘어선 최대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명백한 국가 기간산업이다. 오늘날 우리가 에너지와 기초 소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정유산업과 석유화학산업이 제 역할을 해준 덕분이다. 우리의 생활환경이 몰라보게 개선된 것도 정유사들이 엄격한 환경 규제에 필요한 탈황 설비와 같은 시설에 투자를 할 수 있는 충분한 기술력과 자금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정유산업과 석유화학산업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국가 기간산업을 책임지고 육성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잘못된 정책으로 정반대의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우선 에너지 정책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 원전 증설로 전기가 남아돌기 시작했던 1990년대 말부터 우리 정부는 ‘유류 소비 현대화’라는 명분으로 엄청난 규모의 유류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석유 소비를 줄이는 대신 남아도는 전기의 소비를 늘리겠다는 잘못된 에너지 정책이 시작된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휘발유 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류세가 서민들에게 고통을 주기 시작했고,전력 소비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해마다 전력난에 허덕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와 2008년의 고유가 상황과 맞물렸던 고환율 정책으로 기름값이 치솟게 된 책임을 고스란히 정유사에게 떠넘겨버렸다. 우리 정부의 정책에서 에너지는 조세·복지·산업(농수산·운수)·환경 정책의 일부로 격하되어 버렸다. 더욱이 ‘기름값이 묘하다’는 대통령의 묘한 발언으로 시작된 정부의 무분별한 시장 개입으로 문제는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심지어 우리 정유사들을 압박하기 위해 정부가 앞장서서 관세를 면제해주고 일본산 경유를 수입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도 알뜰주유소·전자상거래 제도·동북아 유류허브 사업 등이 모두 국민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고 정유사의 체질을 약화시킨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로 평가될 것이 분명하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화평법과 화관법도 화학산업을 압박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우리 정유산업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인도·중동이 적극적으로 정유 시설을 늘려가고 있는 마당에 석유제품의 수출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가장 중요한 국가 기간산업인 정유산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오늘날 에너지는 연료와 기초 소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에너지 안보가 무너지면 생존이 불가능한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 형편에 국제 원유가격의 불안정은 온 몸으로 극복해야만 하는 시련이다. 화학산업의 체질을 강화시키는 것 이외에 다른 묘책은 있을 수가 없다.
    DongaPremium Chosun        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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