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세종 회장과 충무공 사장

23 기생 출신 거부 김만덕 (下)

浮萍草 2015. 1. 5. 22:12
    굶어죽는 제주도민 위해 전재산 수백억원 기부한 미녀재벌
    5. 동반성장 철학의 절세 미녀 재벌 김만덕은 경영의 천재
    제주도 건입 포구 모습
    (상)편의 내용과 같이 제주도에서 태어난 김만덕은 12세에 고아가 되어 모진 고생을 하다가 돈 몇 푼에 기생집 심부름꾼으로 팔려갔다가 뛰어난 미모와 성실한 품성으로 기생으로 선발되었다. 그녀는 제주 최고의 기생이 되었는데 그녀를 보기위해 육지의 고관직을 포기하고 제주 목사로 좌천 발령을 원하는 고관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기생으로부터 탈출 노력을 하여 24세에 제주 목사로부터 양인 판정을 받고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 24세의 젊은 그녀는 유통업 발달이 시대적 추세임을 인지하고 제주 여인으로서는 최초로 객주를 창업한다. 김만덕은 자신은 물론 선후배 미인 기생들과 함께 고객들에게 최고 서비스를 제공해 제주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객주가 되어 단 1년 만인 25세에 현재 가치 100억 원의 거액을 벌었다. 김만덕은 미모와 기예가 뛰어남은 물론 누구에게나 배려가 깊은 탁월한 경영자였다. 제주도는 돌섬이므로 갯벌이 없고 농토가 적어 소금과 곡물이 매우 귀했다. 김만덕은 제주도에서 구할 수 없는 소금과 곡물을 육지에서 수입해 오고 제주 특산물인 미역(당시 제주 미역은 전국 생산량의 약 50% 차지),귤,양태와 말총 등을 육지로 수출하는 교역을 하였다. 육지에서는 제주산 같이 좋은 미역과 귤 그리고 양태와 말총을 구할 수 없었다. 현대의 성공적인 주식 투자와 같이 비수기에 쌀 때 매수해 값이 폭등하는 성수기에 파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에 폭리를 취할 수 있었는데도 폭리 대신 적정 이윤을 붙인 가격을 받는 방법을 택하였다. 그렇게 그녀는 모든 사람이 함께 이익을 취하면서 같이 살아야 한다는 동반성장 철학을 실천했다. 당시는 “장사꾼은 제 부모도 속인다.”고 할 정도로 정직하고 신용이 있는 상인을 찾기 매우 어려웠다. 그 시대에 정직과 신용이 사업성공에 가장 중요한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임을 깨달은 그녀는 판매된 물품을 실은 배가 제주도에서 육지로 가다 폭풍을 만나 침몰하면 다시 똑 같은 물품과 수량을 육지로 보내 주었다. 탁월한 서비스를 하는 아리따운 미녀가 좋은 물품들을 좋은 가격에 신용을 철저히 지키며 장사를 하니 3년 만인 27세 때에 자신의 선박까지 소유한 제주도 최대의 거상이 되었다. 아래는 김만덕 객주 집터 앞의 건입 포구 모습이다.

    6. 김만덕은 250년 전에 하바드 경영대의 전략경영 패러다임 구축해
    고아 출신으로 기생 경력만 있는 김만덕이 세계적인 경영전략 학자인 하바드 경영대의 마이클 포터 교수가 주장한 본원적 전략 세 가지 즉 원가우위,차별화,집중화 전략을 250여 년 전에 구축한 경영의 천재였다. 물품이 쌀 때 사고 항상 근검절약으로 운영경비를 절감함으로 원가우위 전략을 구사했다. 신용과 정직의 상거래에다 자신의 미모와 기생 네트워크를 활용한 미인들의 환대 서비스도 해 주니 어떤 경쟁자들도 행할 수 없는 뛰어난 차별화 전략이었다. 또한 그녀는 제주도에서 객주만 하는 집중화 전략을 취하였다. 그녀 사업의 본원적 전략은 아래 모형과 같다. 또한 김만덕은 마이클 포터 교수의 경쟁세력 이론도 함께 구사했다. 김만덕은 매수, 매도할 때 공급자 상인들과 수요자 상인들도 이익을 낼 수 있도록 항상 적정 가격으로 거래를 하였다. 또한 품질 좋은 물품들을 신용과 정직을 기초로 하여 거래를 하니 수요자와 공급자들 모두 김만덕 객주를 신뢰하여 그녀와의 거래를 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협력 상인들과 신뢰 속에서 함께 성장하며 자기는 최고의 상인이 되었다. 더욱이 조선 천지 어디에도 미모의 여인이 따뜻한 배려를 해주면서 객주를 하는 상인은 김만덕 이외에는 하나도 없었다. 협력업체의 고혈을 짜 빈사상태로 만들면서 자기들 이익만 추구하는 한국 재벌기업들보다 250년 전의 기생 출신 여성 사업가 김만덕이 실로 더 위대하지 않은가? 아래는 마이클 포터 교수의 경쟁세력 모형으로 분석한 김만덕의 사업 모형이다.

    7. 굶어 죽어가는 제주도민들 위해 전 재산 다 바쳐
    12세의 고아로 단돈 몇 푼에 기생집으로 팔려간 인생이니 얼마나 한이 많았겠는가? 그러나 김만덕은 한을 품기 보다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면서 모든 것에 감사하였다. 기생집에 팔려가 고생할 때도 하루 세끼 밥 먹을 수 있는 것에 대해 하늘에 늘 감사하였다. 그녀는 거부가 된 후에도 자만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늘이 도와준 것이라고 겸손해 하며 부자가 된 것은 하늘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기회를 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고 수전노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절약하며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 그렇게 30여 년 동안 객주를 하던 중 정조 19년인 1795년에 흉년과 기근이 절정에 달해 정부에서 구제 곡식을 보냈으나 배가 난파되어 제주도민은 먹을 것이 없어 20% 이상이 굶어 죽었다. 김만덕은 평생 모은 수천 냥 (현재 가치로 수백억 원)을 다 털어 육지로부터 천 수백석의 곡식을 실어왔다. 김만덕은 조건 없이 그 많은 곡식을 제주 관가에 기부하였다. 그리고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이 있는 현장 즉 현대판 노숙자들이 있는 곳에 나아가 직접 식사를 만들어 제공했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동반성장 철학을 그녀는 가진 것 모두 내어 놓으면서 실천한 것이다. 당시 관리들은 불과 100석 미만의 곡식을 기부한 대가로 현감(종6품)등의 벼슬을 얻거나 진급을 하였다. 그러나 가장 많은 천 수 백석을 기부한 김만덕은 기생 출신의 평민 여성이라 법적으로 어떠한 벼슬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선행이 조정에도 알려져 정조로부터 의녀반수(조선시대 醫女는 의료 전문직이나 신분이 기생에 준하며 반수는 서열이 가장 높은 자)라는 명예직을 받았다. 당시 제주도 여인들은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 육지로 나가지 못하게 법으로 금했는데 그녀는 정조로부터 제주도를 나와 금강산 유람을 가는 귀한 특전을 받았다. 당시 58세의 김만덕이 금지법을 뛰어 넘어 제주도에서 육지로 나갈 수 있는 은전을 받은 최초의 제주도 여인이 되었다. 더군다나 그녀의 구제에 대한 공으로 그녀의 부친이 평민으로 죽었음에도 지금의 차관급인 가의대부(종2품 상계)의 높은 품계를 추증 받고 오라비도 가선대부(종2품 하계)가 되어 집안 최고의 광영을 입었다. 그녀의 헌신적인 구제 활동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영의정 채제공이 만덕전이란 전기를 써 주었고 형조판서 이가환이 김만덕을 칭송하는 시를 작성해 주었다.
    흉년에 굶어 죽어 가는 제주도민들/사진=김만덕 기념관

    8. 한국 대기업들은 김만덕의 신뢰, 동반성장 경영철학을 배워야 해
    김만덕은 고아와 기생 생활의 불우한 환경에서 출발하여 거부가 되었지만 전 재산을 굶어 죽어가는 제주도민들을 위해 바치고 74세에 운명할 때까지 가난한 사람 들을 도왔다. 그런데 한국 재벌들이 김만덕,미국의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국가나 사회를 위해 재산의 대부분을 환원하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지금 한국경제가 매우 어렵고 많은 중소기업들과 특히 영세 자영업자들이 망하기 일보직전 상태이다. 공급 협력업체의 공급단가를 거의 강제적으로 낮추어 협력업체가 도저히 이익을 낼 수 없도록 만드는 재벌기업들이야 말로 동반성장의 최대 걸림돌이다. 또한 수백만 원 가치의 명품 백과 밍크코트 차림으로 재래시장에 나와 콩나물 값을 깎는 여인들이나 일인당 100,000원 짜리 식사 후 택시타고 요금 9,500원에 10,000원 권 화폐 내고 잔돈 500원을 악착같이 챙기는 사람들도 동반성장을 방해하며 사는 인색한 사람들이다. 관공서나 대기업 등의 대형 조직 구성원들은 좀 불편하겠지만 직영 또는 재벌계열 외식대기업이 위탁경영하는 구내식당을 없애고 주위에 있는 영세 음식점들을 이 용해 주변 상권을 살리는 것도 동반성장의 하나일 것이다. 동반성장, 신뢰, 지속가능 생태계는 한국이 창조경제와 혁신으로 재도약을 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회적 자본이다. 250년 전의 제주도 여성 사업가 김만덕은 그 때 이미 이 사회적 자본을 구축하며 사업을 하였다. 부자를 비롯한 기득권자들은 그녀처럼 전 재산을 바치지는 못해도 약자들을 죽게 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신뢰 속에 동반성장해야 귀중한 자유 대한민국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다.
    Premium Chosun ☜        장대성 전 강릉영동대 총장 dschang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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