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커플링 법칙

동양에서의 태초는 태극이다

浮萍草 2014. 12. 12. 12:00
    몸속의 생태학을 모르고서는 스스로의 몸의 정체성을 알 수 없다. 
    여기 당신의 몸과 마음,그리고 뇌가 연동되어 빚어내는 다채로운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인간 행동학의 세세한 빛과 그림자를 따라가 보라. 
    그러면 인간 이해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본성은 어디서 오는가? - 마음의 기원 “하늘의 패턴을 보다 보면 인간의 패턴이 보인다.” 우주천문학자 홍승수 서울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이미 앞서 글에서 동양의 우주관,특히 음양사상이 동양의 인륜 질서의 근간이 되어왔다는 사실을 부분적으로나마 분석해 보인 바 있다. 이제 하늘의 패턴이 어떻게 인간의 패턴에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더 광범위하게 연결되는가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우주의 법과 인륜법 사이의 패턴의 유사성을 다뤘다면 지금부터는 우주의 법과 인간의 심성 사이의 패턴의 근사성을 다루고자 한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 번 의문을 갖고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하늘의 패턴을 인간의 패턴이 닮았다고 할 때 하늘의 패턴과 인간의 패턴의 그 연관성은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것인가 아니면 우연의 소산일까 하는 의문이다. 이를테면 동양의 지배적 윤리관인 부모와 자식 간의 벼리 관계는 정말로 하늘의 이치가 땅에 사는 인간의 이치로 변환된 것인지 또는 하늘의 이치가 강제된 결과인지 아니면 인간의 상상력이 우주의 이치를 단순히 인간 세상에 전치시킨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하늘의 이치에 대해서는 인간의 형이상학적인 또는 추상적인 인식과정을 거친 인위적 상상의 산물인 것은 알 수 있지만 말이다. 동중서는 “인의(仁義)와 제도의 법칙은 모두 하늘에서 취했다”고 한 바 있다. 여기서 인의는 주로는 예절에 관한 제도를 말한다. 그러나 역으로 하늘의 이치가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우주의 힘으로 발휘돼서 인간으로 하여금 우주와 비슷한 사고를 하게끔 하지 않았을까하는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 인간의 윤리와 제도를 시공간적으로 분자나 입자로 압축 환원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우주의 음양 탄생 당시의 어떤 우주적 움직임과 연관성이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우주의 시원과 그 성분과 운행 원리라는 우주의 패턴과 인간의 심성과 제도라는 인륜 패턴 사이의 상관성을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얘기가 아닌가. 이 물음이 중요한 것은 음양의 시작을 알게 됨으로써 그것이 인의와 제도로 확대되어 재생산되는 과정 자체가 인간의 자의적이고 작위적인 창작의 결과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우주의 뜻이 어떤가에 대해서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노력 자체가 하나의 추상적 상상에 불과한 것이지만 말이다. 왜 이런 질문을 새삼스럽게 품지 않을 수 없느냐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의 음양론과 또 앞으로 전개될 오행론에서는 음양오행적 우주 질서가 인간의 인성과 심성과 본성에 어떻게 연결되느냐 하는 둘 사이의 일종의 근사(近似)성과 상사(相似)성을 마이크로 레벨에서 논하기 때문에 논리적인 연결을 비증험적으로 전개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과학적인 것이 다 증험적인 것은 아니고 증험적인 것이 다 과학적인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비증험적’이라는 것은 ‘비과학적이란’말과 동일한 의미로 쓴 것이다. 그런데 음양오행이 인륜과 사회제도에 변환되어서 논의될 때는 비과학적인 논리도 논리로서의 효용성을 반드시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음양오행이론이 인간의 신체에 적용되어서 논의될 때는 그것이 과학적 이여야 하고 최소한도 증험적,경험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음양오행의 신체적 적용을 시도하는 이 글의 후반부에서는 음양오행의 과학적 측면을 충분히 다룰 수 있고 또 다룰 예정이기 때문에 우선 이런 말을 미리 해두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의미로 무엇을 얘기하느냐 하면 지금 추상적 레벨에서의 음양오행론이 설사 믿음성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나중의 음양오행론의 과학적 분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추상적 분석을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얘기다. 각설하고. 동양의 우주관은 태초의 시작을 태극의 개념으로 시작한다. 마치 서양의 태초가 천지창조로부터 시작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태극이란 무엇인가? 태극은 리(理)이고 리는 마땅히 그러해야 할 자연 이치의 총합이다. 그리고 모든 우주 섭리의 총합이다. 그것은 곧 우주의 근원이요 본원체인 태극의 다른 이름일 뿐 태극이 곧 리를 의미한다. 태극은 그 존재 자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시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불가해한 어떤 ‘무존재의 존재’다. 존재가 없는 존재기 때문에 볼 수 없고 감촉할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증험할 수 없지만 태극은 우주 시작의 본체로서 의연히 존재 아닌 존재를 점하고 있다. 태극의 개념으로서의 혼돈성은 이런 데 있다. 즉,태극이 만물의 본체로서 그것이 곧 리(理)이기도 하며 또 기(氣)이기도 하며 또 인간에게 품수되는 순간 성(性)이 되기도 한다. 구태여 비유를 하자면, 태극의 구성성분은 리(理)이고 운영 체계는 기(氣)이다. 그것은 컴퓨터 본체에 딸려 있는 하드웨어이자 소프트웨어이자 그 모든 것이 동시에 움직이는 일원적 작동체계라고 할 수 있다. 본체적이고 본원적이고 본질적이고 가장 근원적인 어떤 우주적 섭리의 원천이 되는 그 존재 아닌 존재 그리고 그 존재 아닌 존재의 운영체계와 작동체계 그리고 그것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합쳐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동양적 ‘하늘’개념이다. 그리고 거기서 음양이 탄생하고 화, 수, 목, 금, 토의 오행이 생겨났다. 이런 추상적인 레벨의 분석을 내려놓고 동양의 우주관에서 인간의 선함과 악함이 어디서 오는지 그 근원을 생각해보면 태극이 포괄하는 성과 리와 기가 좀 더 분명하게 다가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성은 자연 그대로의 즉, 본연지성(本然之性)을 말한다. 본연지성에는 악한 것이 일 퍼센트도 섞이지 않은 백 퍼센트의 선 덩어리 즉 순연지성(純然知性)의 집합체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이 성이 전해지는 과정 즉,우주의 그 선한 기가 인간에게 품수되는 그 과정에서 밝고 맑은 기운에 섞여서 어지럽고 탁한 기운이 혼재돼서 전해질 수 있다. 우주의 선한 부분을 적어도 반 혹은 그 이상 전해 받은 사람은 선한 기운이 충만한 사람이요 반 혹은 그 이하로 물려받은 사람은 악한 기운이 넘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하늘로부터의 시혜의 차별이 생겨난 것일까?
    Premium Chosun        허경구 국제정치문제연구소 이사장 aronge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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