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커플링 법칙

서양에는 창세기(創世記), 동양에는 창성기(創性紀)가 있다

浮萍草 2014. 12. 17. 18:03
    <몸속의 생태학을 모르고서는 스스로의 몸의 정체성을 알 수 없다. 
    여기 당신의 몸과 마음,그리고 뇌가 연동되어 빚어내는 다채로운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인간 행동학의 세세한 빛과 그림자를 따라가 보라. 
    그러면 인간 이해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본성은 어디서 오는가? - 마음의 기원
    양에는 천지만물이 어떻게 7일 동안 만들어졌는지 그 하나하나의 역사가 성경에 세세하게 기록되어 전하여진다. 이름하여 창세기다. 비록 그것이 실물의 역사가 아닌 하나님이 역사(役事) 하신 그 역사의 역사(歷史)이긴 하지만. 그러나 동양에서의 우주의 태초는 만물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어디서 어떻게 나왔느냐 하는 시기적 구획이 있다. 서양에서는 만물, 동양에서는 인간의 본성,그리고 서양에서는 만물창조의 기록,그리고 동양에서는 본성이 생성되는 기원(紀元)이 있을 뿐이다. 기원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 태어나는 그 시초는 태극의 성(性)이 인간의 본성으로 잉태되어 인간의 몸에 품수되는 그 이전의 순간과 그 이후의 순간을 구별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태극은 만물의 본체로서 리(理)이기도 하며 기(氣)이기도 하며 성(性)이기도 하다. 인간이 만물의 본체인 태극, 즉 리로부터 본성을(이것이 성(性)이다) 품수받고 그것을 그렇게 받게 하는 이치가 작용하며(이것이 리(理)이다) 또 그 품수받은 본성을 현실 에서 작동시키는 구체적 기제를 마련함으로써 (이것이 기(氣)이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구실을 하게 된다. 그 인간으로서의 구실을 하게 된다고 할 때의 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기서는 태극의 리가 가지는 무한한 우주적 덕성의 표현인 인(仁)의(義)예(禮)지(智)의 인간적 발현을 의미한다. 인의예지는 인간의 의지나 좋고 싫음의 표현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태극적 순연지성의 표현이다. 그러나 인간이 가지는 이런 네 가지의 순연지성이 기를 만나 하나의 감정적 정(情)으로서 발현될 때는 7가지의 색깔이 제각기 다른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형성하게 된다. 곧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7정이다. 따라서 인간이 가지는 본연지성인 성(性)과 기질지성인 정(情)이란 인성의 두 가지 나뭇가지가 생성되었다. 성은 리의 표현이요 정은 기의 표현이다. 성과 정이 둘 다 기의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성에는 리(理)의 기를 100% 물려받아 선(善)적인 요소만 충만하고 악(惡)의 요소는 1%도 섞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정에는 선적인 요소도 섞여 있지만 악적인 요소도 아울러 섞여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 기독교적 창세기에는 삼라만상이 생겨나는 그 순서와 현장이 생생하게 전개되지만 동양적 창세기에서는 인간의 성(性) 또는 인성의 실마리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그 생성의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느냐는 일종의 성리적 연원의 줄기를 캐는데 초점이 모이고 있다. 창세기 아닌 창성기다. 서양의 세상 시작이 물리적인 것이라면 동양에서의 세상시작은 비물리적인 심리적인 것으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어디에서 어떻게 그리고 왜 그렇게 결정됐는가하는 문제가 바로 그런 것이다. 이와 관련돼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인간이 가지는 선(善)적인 요소와 악(惡)적인 요소가 어디서 연유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서양적 시작과 동양적 시작이 이렇게 다르다. 동양은 처음부터 인본 적이고 인륜적이고 인간만이 가지는 도덕률의 시원에 대해서 깊이 천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조선조 중기인 명종 때에 이르러 일종의 성리학 논쟁이 일어났다. 논쟁이라야 편지로 일종의 논변(論辨)을 서로 주고받는 것인데 그 당사자가 된 사람들이 바로 퇴계와 기고봉(奇高峯)이었다. 퇴계는 이미 조정에 한 두 번 출사를 거친 이미 당시에 유학의 거봉으로 소문이 자자한 지성계의 거두였고 기고봉은 전라도 장성에 거주지를 둔 이제 막 과거에 급제한 한갓 서생의 신분에 불과했다. 이 두 사람 사이의 논쟁 주제는 리와 기에 관한 것이었다. 퇴계는 리와 기가 각각 따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그 두 가지가 하나의 현상으로서 나타날 때에 따로따로 나타난다는 각발(各發)의 입장이고 기고봉은 그 두 가지 현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감성 또는 감정의 줄기를 타고 현실로 부각될 때에는 그 양자가 이미 섞어져서 하나의 정(情)으로 표시될 뿐이라는 입장이었다. 고봉에게 리와 기는 같이 나타나는 공발(共發)이었다. 두 사람의 입장은 별로 서로 어긋날 게 없어 보이는데 왜 이런 차이점이 일어났을까. 퇴계나 고봉에게 리와 기는 그 각각의 존재에도 불과하고 기없는 리가 없고 리 없는 기가 없다는 그 점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일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퇴계가 주장하는 리의 표현인 인의예지라는 사단(四端)만 보더라도 역시 기가 일정 부분 포함되어 있고 정의 표현인 칠정에도 일정 부분 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두 사람은 동의하고 있었다. 리와 기가 각발하든 공발하든 그것이 무슨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실제로 어느 경우에든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어떤 지적인 지평을 넓힌다든지 철학적 조망을 충실하게 하는 문제에서 별 도움을 준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정치적 쟁론은 유행하던 시절이었지만 지적, 철학적인 논쟁은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런 논쟁이 전국 각지에 퍼져 있던 일반 유생들과 이선에 물러나 있던 사림(士林)세력들에 일종의 지적 자극을 준 것 만은 사실일 것이다. 두 사람만의 논쟁의 내용이나 실질보다는 그 논쟁의 파생적 효과라고 할 수 있는 점은 몇 가지 있었다. 우선,일견 복잡해 보이지만 단순할 수밖에 없는 논쟁의 내용이 불러온 일종의 지적 고집이랄까, 편향성이다. 퇴계는 리를 우선시하는 리발기수(理拔氣隨)설을,고봉은 기를 우선시 하는 기발리승(氣拔理乘)을 주장하였지만,두 주장이 갖는 합리적 근거는 미약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모든 종교가 합리적 근거에 그 기반을 두는 것은 아니지만 유학도 그 점에서는 다른 종교보다 더 나을 바가 없었다. 그런데 퇴계의 주장과 고봉의 주장에 굳이 차이를 둔다면 이런 점을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우선 퇴계는 선은 잡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형태의 샘물 그 자체로 보았다. 그 샘물의 모체는 자연 그 자체요 태극 그 자체지만 선이라는 물이 고여 있는 그 샘물 자체를 떠먹는 행위는 인간에게 선택사항으로 맡겨 있다는 사실이다. 그 샘물에는 인 의 예 지 라는 네 가지의 두레박이 걸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두레박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것인지 또는 넷을 다 선택할 것인지는 인간에게 맡겨 있는 선택사항이고 또 그 두레박에 얼마만큼의 물을 담아서 먹을 것인지도 그 행위를 선택하는 인간에게 맡겨 있는 선택사항이라는 것이다. 인간에게 그런 행위는 우선 스스로 자각을 요구하고 자기 마음의 마음가짐에 선한 생각을 품어야 하고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닦아야 하고 그리고 그런 행위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리와 기는 서로 만나져야 작동이 되고 그리고 융합된 상태가 완성돼서야 하나의 모양 즉 체(體)를 갖추게 되고 또 쓰임새 즉 용(用)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리 없는 기 없고 기 없는 리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퇴계는 리와 기가 각발한다고 본 것이고 고봉은 공발한다고 본 것이다. 기 없는 리가 없다고 하면서도 리의 존재를 따로 띠어서 생각하는 퇴계는 역시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이 가지는 잠재적인 성(性)의 완성을 향한 꾸준한 노력과 성인(聖人)의 목표에 도달하려는 인간의지를 독려하려는 생각을 강조하려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생리적 메커니즘으로 볼 때, 리의 발현인 본연의 성과 기질의 발현인 정은 그 두 요소가 이미 인간 속에 혼합되어 내재하여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둘이 무슨 형태로 발현되든지 간에 둘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리기불상리(理氣不相離)의 원칙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실제로 음양오행의 수리적 분석에서 리와 기는 서로 연동하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나중에 다시 논의키로 하겠다.
    Premium Chosun        허경구 국제정치문제연구소 이사장 aronge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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