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敢言異說, 아니면 말고

빨리 하시나요?

浮萍草 2014. 11. 21. 09:52
    신경쇠약은 전기·전신 '速度' 못 미친 부적응
    100년 지난 현대 탈진증후군도 '빠른 생활' 탓
    '저녁·주말 있는 삶'이 집단 신경쇠약 예방策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상의 남자는 둘로 나뉜다. 대중 목욕탕에서 팬티를 가장 먼저 입는 남자와 가장 나중에 입는 남자다.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다 맨 후에야 팬티를 입는 내 후배 허태균 교수는 매사에 자신만만하다. 자신의 심리학적 견해를 주장하는 데도 거침이 없다. 그는 정신병리학적 질환은 대부분 문화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흑인 노예에게는 자유를 얻으려 도망하려는 정신적 질환(Drapetomania)'이 있다는 주장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 '노출증(exhibitionism)'의 경우를 살펴보자. 노출증 환자는 대부분 남자다. 실제로 노출증 사례로 보고된 미국의 자료를 살펴보면 노출증은 주로 18~50세의 백인 남성에게서 나타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바리 맨'만 있다. '바바리 우먼'은 없다. 노출증은 왜 주로 남자에게 나타나는 것일까? 여자의 노출에는 관대한 남성 중심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나 여자나 성기 노출은 현대사회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정신질환이다. 그러나 극단의 성기 노출을 제외하고 한번 생각해 보자.
    과감한 신체 노출은 여자들만 할 수 있다. 여자는 '성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체를 드러내는 것이 허용된다. 오히려 은근히 장려하는 문화다. 그러나 남자는 다르다. 만약 과감한 의상을 즐겨 입는 여자 수준으로 보통 남자가 일상생활에서 신체 노출을 한다면 아주 심각한 노출증 환자로 진단받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이는 정신질환 여부를 결정하는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 대부분이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 모든 남자에게 여자의 노출은 과감할수록 고맙고 감사하지만 같은 남자들의 노출은 몹시 불편한 까닭이다. 나도 목욕탕에서는 허 교수가 아주 많이 불편하다. 실제로 정신질환의 적지 않은 경우가 문화사회적으로 결정된다. 오늘날 그 결정의 기준은 대부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정신장애 진단 분류 체계(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에 있다. 가장 최근 버전은 2013년에 다섯 번째로 개정된 'DSM-5'다. 1952년에 'DSM-1'이 나온 이후로 60년 동안 5번째 개정판이 나왔다면 거의 10년마다 정신질환의 기준이 새롭게 규정되었다는 이야기다. 흔히 '노이로제'라고 부르는 '신경쇠약(Neurasthenia)'도 마찬가지다. 이 또한 어느 날 갑자기 정신질환으로 결정됐다. 신경쇠약을 정신 병리 현상으로 처음 지목한 이는 미국의 의사 비어드(G M Beard)였다. 그는 1881년 '미국의 신경증(American Nervousness)'이란 책에서 피곤·불안·두통·신경통·우울 등 증상을 동반하는 심리 상태를 신경쇠약이라고 지칭했다. 원인은 시계였다. 당시 시계가 너무 정확해져서 단 몇 분,몇 초 차이로도 일생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었다. 긴장한 사람들은 시계를 자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손목시계가 발명된 것도 신경쇠약의 한 원인이었다. 사람들은 손목시계를 힐끔 쳐다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고 진땀이 났다
    마음만 급했던 저녁—괜히 했어…. /김정운 그림

    그러나 신경쇠약이 본격적 정신질환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꼭 한 세기 전 유럽에서였다. 20세기 초,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 느닷없는 무기력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13년 정신과 의사들은 이를 신경쇠약이라고 공식적인 진단을 내렸다. 신경쇠약은 유행병처럼 번졌다. 20세기 모더니즘 계열의 대표적 소설가인 로베르트 무질,사회학자 막스 베버 당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신경쇠약의 대표적 사례였다. 신경쇠약은 한마디로 전기·전신·기차의 발명으로 인해 생활의 속도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자 생긴 심리적 부적응 현상이다. 마음의 속도가 생활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생긴 정신질환인 것이다. 그러나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람들은 빨라진 생활 속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신경쇠약으로 진단받는 경우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현대사회에서 그 정도의 심리적 불안은 누구나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 인류는 또다시 속도 부적응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번-아웃(Burnout)'이라는 새로운 이름이다. '탈진증후군'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번-아웃'은 주로 정력적으로 '일 잘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갑자기 다 타버린 성냥처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주저앉아 버리는 경우다. 오늘날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매개되는 생활 속도는 100년 전에 전신과 기차로 매개 되었던 생활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빨라졌다. 일 잘하는 사람은 그 속도를 죽어라 하고 따라가다가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IT 선진국을 자부하는 한국 사회다. 모든 게 무지하게 빠르다. 서구 사회의 수백 년에 걸친 근대화 과정을 불과 수십 년 만에 압축해 이룬 대한민국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먼 훗날 20세기 한국 사회의 이 놀라운 압축 성장은 800년 전 칭기즈칸의 몽골제국만큼이나 위대하게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얻는 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게 있다. 놀라운 속도로 이뤄낸 한국 사회의 발전은 어떤 형태로든 부작용을 낳게 되어 있다. 집단적 신경쇠약이다. 한 개인이 얌전하게(?) 주저앉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서구의 '번-아웃'에 비해 한국의 집단적 신경쇠약은 매우 공격적이다. 감당할 수 없는 변화의 속도로 인해 생긴 한국식 부적응은 집단적 분노와 자기 파괴적 적개심을 동반한다. 내면의 불안을 외부로 바로 쏟아낸다. 시도 때도 없다. 그리고 인터넷과 SNS를 통해 순식간에 번진다. '누구든 한번 걸리기만 해라'라고 한다. 황폐화된 마음의 이 같은 집단적 신경쇠약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는 정말 빨리 망하게 된다. 칭기즈칸의 몽골제국보다 더 빨리 망한다. 진짜다. 천천히 사는 것에 관해 아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이 대안이다.
    Premium Chosun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