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敢言異說, 아니면 말고

不安하면 숲이 안 보인다!

浮萍草 2014. 12. 12. 09:43
    은퇴 중년男, '명함' 잃고 심한 正體性 혼란
    50歲 살던 시대 價値로 百歲 살려니 힘든 것
    '제2 인생' 일찍 고민해 안정과 지혜 갖추길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난주 국민 배우 안성기 부부가 교토에 놀러 와 며칠을 함께 지냈다. 안성기 부인은 현역 배우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미모다. 그러나 말과 행동은 참 솔직하고 시원시원했다. '안성기'라는 이름에 관한 그녀 이야기다. 원래 안성기의 아들 이름에는'환'이 돌림자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큰아들이 태어났을 때 이름을 '안고환'이라고 지어야 하는 거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안성기'와'안고환',정말 어울리는 부자(父子) 이름 아니냐며 사뭇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다행히도 큰아들 이름은 소설가 고 최인호가 '다빈'으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살림 욕심 많은 안성기의 부인은 다이마루백화점 지하 식품 코너에 있는 일본 음식을 무척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사려 했다. 그는 부인에게 한 번도 '아니다' 안 된다'와 같은 부정적 표현을 쓰지 않았다. '소영아, 그건 좀 그래' '소영아,그건 좀 더 생각해보자'와 같은 표현이 전부였다. 천하의 안성기는 허접한 음식 봉투 한가득 들고 부인 뒤를 따라가며 연신 조심스럽게 '소영아, 이제 그만 다른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아' 했다. 안성기는 매번 아내 이름을 참 애틋하게 불렀다. 한국의 중년 여자 대부분은 자기 이름을 잊고 산다. 누구 엄마, 아니면 누구 와이프인 까닭이다. 자녀가 성장하고 집을 떠나면 느끼는 중년 여성의 허전함은 자아 정체성의 위기다.
    안성기가 인간적으로 참 멋있어 보였던 것은 아들 둘을 군대 보내고 유학 보낸 아내의 허전함을 끝없이 배려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중년 여성들이 느끼는 심리적 위기도 심각하지만 은퇴한 중년 남자들의 정체성 혼란은 더 심각하다. 한국 남자들에게 남들에게 내밀 번듯한 명함이 사라지는 것처럼 공포스러운 일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남들이 자신을 알아봐 주길 원한다. 남들이 알아봐 주는 것 자체가 권력이기 때문이다. 못 알아보는 듯하면 바로 명함을 내민다. 자기 입으로 자신을 폼 나게 설명하기 쑥스럽기 때문이다. 명함을 건네는 장면을 멀리서 살펴보면 누가 더 높은(?) 사람인지 금방 분명해진다. 명함을 서로 건넨 후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로 인사하는 각도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의 인사하는 각도가 훨씬 깊다. 동물의 왕국에서 수컷들이 서로의 뿔 길이를 대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명함은 참 덧없다. '사장''이사'와 같은 사회적 지위는 2~3년이 고작이다. 장차관은 1년을 넘기면 다행이다. 그래서 요즘 같은 인사철이 되면 신문의 동정란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나름 성공한 지인이나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해서다. 모임에서 만났을 때 실수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교수''선생''공무원'처럼 정년이 긴 직업이 좋은 건 절대 아니다. 오래 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정년하고 나면 바로 죽었다. 그러나 요즘은 보통 90세까지 산다. 50대에 회사를 일찍 그만두면 또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해 볼 수 있다. 아직 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년이 긴 직업은 다르다. 예순을 훌쩍 넘겨 은퇴하면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여지가 없다. 힘도 없고 용기도 없다. 정년이 길다고 자랑할 일만은 아니라는 거다.
    생각보다 너무 오래 산 고양이. /김정운 그림

    고령화 사회의 근본 문제는 '연금'이 아니다. 은퇴한 이들의 '아이덴티티(identity)' 문제다.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확인할 방법을 상실한 이들에게 남겨진 30여년의 시간은 불안 그 자체다. 불안은 원래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이들의 정서다. 경험과 경륜의 노인들이 불안해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할 때 한 사회는 균형을 잡으며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오늘날 아무런 대책 없이 수십 년을 견뎌야 하는 '젊은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문제는 불안하면 세상을 자꾸 좁혀서 본다는 사실이다. 숲과 나무로 비유하자면 불안하면 자꾸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토리 히긴스(Tory Higgins)는 인간 행동의 이유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좋은 것에 가까이 가려는'접근동기'와 대상으로부터 피하려는 '회피동기'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다가가려는 접근동기는 '전체지각(숲)'을 활발하게 한다. 반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도망치려는 회피동기는 부분을 뜯어보는'부분지각(나무)'을 더 촉진시킨다. 히긴스와 그의 동료는 불안하면 부분지각이 강해지고 행복하면 전체지각이 강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원래 노인의 지혜는 숲, 그러니까 전체를 보는 데 있다. 시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떨어질수록 전체 맥락을 볼 수 있는 지혜가 더 확대된다는 것이 노인학(Gerontology)의 일관된 연구 결과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자아 정체성의 위기에 시달리는 젊은 노인들이 많아질수록 전체를 보고 사회의 발전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혜안(慧眼)은 사라진다. 불안한 젊은이들은 나무를 보고, 불안한 젊은 노인들도 나무를 본다. 큰 틀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이는 없다. 오늘날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의 대립만은 아니다. 제각기 불안한 세대 간의 대립이기도 하다.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각 세대를 자극하는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것이다. 불안한 젊은 노인들이 보수의 이름으로 젊은 세대와 대립한다는 내 주장에 불쾌해하며 버럭 화부터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꾸 버럭 화부터 내는 것도 다 불안해서 그런 거다. 은퇴한 후에 시작될 또 다른 삶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쥐꼬리만 한 연금을 받아가며 그렇게 주저앉아 늙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평균수명 50세 시대에 만들어진 가치로 100세 시대를 살려고 하니 다들 그렇게 힘든 거다. 100년을 살 젊은 세대에게 평균수명 50세의 가치를 강요하니 더 불안해하는 거다. 따뜻한 마음으로 숲을 보는 지혜를 가져야 개인이고 국가고 편안해진다.
    Premium Chosun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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