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浮萍草音樂/아시아 불교민속

<36〉 태국 ④

浮萍草 2014. 10. 14. 19:31
    불교와 왕
    국에서 국왕과 관련해 날아드는 소식은 놀랍기 그지없다. 수년 전 술에 취한 스위스여행객이 국왕의 초상화에 페인트를 뿌려 10년형에 처해졌는가하면 자국의 대학생이 애왕가(愛王歌)가 연주 될 때 기립하지 않아 기소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죄목은 모두 ‘국왕모독죄’이다. 태국여행길엔 어김없이 ‘국왕에 대해 모욕적 행위나 말을 해선 안 된다’는 주의사항을 듣게 마련이다. 국왕을 만나는 자는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알현하고 국왕과 왕족의 사진은 늘 잘 팔리는 상품이어서 집집마다 걸어놓고 사진 앞에서 두 손 모아 절을 한다. 영국과 일본처럼 상징적 존재로서 국왕이 아니라 21세기가 무색한 절대존경과 절대복종, 불가침의 신성영역이 아닐 수 없다. 1932년에 쿠데타로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바뀌어 실질적 권력을 상실했건만 이토록 강력한 왕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거기에는 ‘불교와 국왕’이 두 축을 이룬 태국민족의 정체성이 자리하고 있다. 13세기에 타이족은 인도차이나반도에 최초의 통일국가로 수코타이왕국을 세웠고 람캄행 왕은 상좌부불교를 구심점으로 하여 불법에 입각한 통치이념을 다져나갔다. 왕은 백성을 자식처럼 여기고 백성은 왕을 아버지처럼 따르는 강력한 가부장적 왕권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교외의 당종나무 숲속에서 한 달에 네 번, 보름ㆍ그믐ㆍ상현ㆍ하현 때마다 고승을 모시고 함께 수행하면서 백성들에게 불법을 가르쳤다. 왕의 비문(碑文)에는"수코타이 백성들은 불교계율을 준수하고 이웃의 불쌍한 이들을 도와주며 스님들에게 보시하기를 즐겨한다”“물에는 물고기가 살고 논에는 벼가 자랐다”고 새겨져 있다. 백성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하였고 그러한 태평성대의 모습을 물고기와 벼가 제 자리에 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셈이다. 이후 굴절의 역사를 거치는 가운데서도 불교와 국왕이 태국을 지탱하는 굳건한 두 다리가 되어온 데는 변함이 없다. 국민의 95%가 불교신자인 나라,단기출가를 거친 불교신자라야 국왕이 될 수 있는 나라로 불교적 왕권을 이어온 것이다. 그런데 국민으로부터 절대적 존경을 받는 일이 단지 관습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현재 국왕은 왕권이 약화된 1946년에 열아홉으로 왕위에 올라 60년 가까이 재위하고 있는 푸미폰 왕이다. 그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지위에 안주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전 국토를 누비는 근면한 왕으로,언제 어디서나 국민의 희망을 선택할 것이라는 진심어린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다. 1970년대에 민주화봉기가 일어나 시위자들은 국가전복의 반역폭도로 매도되며 유혈사태에 휩싸이던 때였다. 일촉즉발의 시기에 그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 “억울하게 희생된 양민 한 사람의 생명은 나의 생명과 똑같이 소중하다. 시위자와 군인 모두 한발씩 양보하여 본업으로 돌아가라”고 호소하였다. 반역폭도라는 딱지가 붙은 채 쓰러진 이들을 양민이라 부르며 자신의 생명처럼 소중하다는 천명은 거칠어진 국민의 마음을 감동시켰고,시위도 후속조치도 차분 하게 마무리되었다. 오늘날 태국불교에는 자성과 개혁의 목소리가 높다. 람캄행 왕에서부터 푸미폰 왕에 이르기까지 그들 스스로 불교의 가르침과 일치된 군주가 되고자 했던 세왕(世王)의 실천을 되새겨볼 만하지 않은가.
    ☞ 불교신문 Vol 3048 ☜       구미래 동방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