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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태국 ⑤

浮萍草 2014. 11. 3. 10:37
    여성과 불교
    국 속담에 ‘여자는 물소, 남자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열등하며 가족을 위해 물소처럼 묵묵히 일하는 존재라는 뜻이 담겨 있어 태국역사 속에 각인된 여성의 지위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이에 비해 오늘날 태국의 여성들은 명석하고 강인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공무원시험에 합격하는 비율은 남성의 배 이상이고 성적 또한 압도적으로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사회제도가 인격은 물론 인간의 능력까지 통제하고 좌우해왔음을 새삼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조선왕조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태국의 아유타야왕조는 남녀차별을 둘러싼 관습과 규범에서도 서로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여성을 종속적 위치에 두는 남성중심사회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실상 조선과 아유타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크다.
    태국에서 이 시기에 마련한 가족법에 따르면 여성을 남성의 재산으로 간주하여 딸과 아내를 마음대로 시집보내고 선물하거나 매매까지 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근대화와 함께 법률은 바뀌었지만 심각한 여성 불평등의 인식과 관습은 깊이 뿌리를 내려왔다.
    그런가하면 가정 내에서는 모계(母系)의 전통이 뚜렷하다. 
    혼인을 하면 남성은 처가에 들어와 살고 아버지의 권위는 아들이 아니라 집에 들어와 사는 사위에게 넘어간다.
    공적인 우두머리이자 집안의 대표성은 남성이 가지게 되지만 실질적 연결고리는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조상신은 부계가 아니라 어머니 쪽의 조상을 모시면서 가신신앙(家神信仰)의 주체는 어머니에게서 딸로 계승된다.
    15세기에 명나라의 관리가 태국을 방문하고 적은 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국왕이 형벌을 내리려 하거나 평민이 장사를 하거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부인에 의해 결정된다. 
    여성의 재능과 견식이 남성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실질적 결정권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철저한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도 여성과 남성이 각자 지닌 특성을 조화롭게 운영하며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태국사회에 뿌리 깊은 여성 불평등의 근원을 ‘상좌부불교’와 ‘국가체제’에서 찾는다. 
    여성의 출가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불교가 생활전반에 성차별을 고착시키고 여성의 지위를 가정이란 울타리에 가두는 이념적 수단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특히 근대화된 학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서민들의 교육은 사원에서 스님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때의 교육기회는 남자들에게만 주어졌다. 
    국가체제 또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절대군주제로 운영되었기에 여성들 스스로 이를 성차별로 여기기보다 전생의 공덕이 부족한 탓에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라 받아
    들인다.
    그러나 변화의 물결은 서서히 일고 있다. 
    태국에서 여성들은 단기출가조차 할 수 없지만 수년 전부터 많은 여성들이 송크란 축제 때 삭발을 하고 탁발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이러한 금기를 깨기 시작했다. 
    또 송담마카야니 사원에서는 비구니스님들이 비구스님들만 입을 수 있는 붉은 가사를 갖춘 채 예불을 하고,지역주민들은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승단에서도 사회에서도 ‘스님은 남성만 될 수 있다’는 편견이 조금씩 무너지면서, 사부대중이 함께 태국불교를 굳건히 이끌어나갈 그날을 기대해본다.
    
    ☞ 불교신문 Vol 3050 ☜       구미래 동방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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