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스크린 속 의학

46 툼스톤

浮萍草 2014. 10. 6. 09:45
    이 병 환자들은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는다
    시는 태생적으로 우울합니다.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모이고, 도시는 만들어집니다. 
    그 곳은 좁은 공간이며 쉴새 없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지요.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데 그 공간이 침범되면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우울증을 유발하고 결국 도시는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살아야하는 우울한 공간이 되고 맙니다.
    밀레니엄을 앞두고 있는 1990년대 말의 뉴욕 무겁게 가라앉은 무채색의 도시는 하드보일드 스릴러의 좋은 소재가 됩니다.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회색빛 골목 무표정한 알코올 중독자들이 배회하는 거리와 마약 그리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현대판 추리 소설의 배경으로 안성맞춤
    입니다.
    이런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배우는 단연 리암 니슨입니다. 
    그는 최근에 <테이큰>이나 <언노운><논스톱> 등에서 원맨 액션영화의 새로운 강자로 군림하였습니다. 
    특히 한물 간 루저의 고독한 표정은 그의 그전 필모그래피 <미션>, <쉰들러 리스트> 등에서 보여준 갈등과 고뇌의 그림자가 투영되어 한층 더 독특한 캐랙터로 
    발전,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개봉한 <툼스톤>은 사실 최근의 액션물과는 조금 다른 방향의 영화입니다. 로렌스 블록의 추리소설 시리즈의 하나인 ‘A walk among the tombstones’를 영화화한 것입니다. 직역하면 ‘묘비 사이를 걷다’ 이지만 ‘무덤으로 향하다’라는 제목의 소설로 국내 출간됐습니다. 차갑고 어두운 세기말적인 분위기와 하드보일드 스릴러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작품으로 <테이큰>류의 화끈한 액션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스콧 프랭크 감독이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맷(매튜) 스커터의 캐릭터를 위해 리암 니슨을 12년간이나 기다렸다는 풍문이 말해주듯,리암 니슨만의 우울한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알코올 중독인 전직 형사 맷 스커터(리암 니슨)입니다. 음주 상태로 근무 중에 실수로 발생한 사고로 퇴직을 하고 사립 탐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알코올 중독 치료자 모임에서 만난 한 남자의 소개로 한 사건을 청탁받게 됩니다. 맷은 처음에 의뢰인이 마약 중개인인 사실을 알고 거절을 했으나 자세한 내막을 듣고 나서는 승낙을 합니다. 의뢰인 부인이 납치를 당해 몸값을 요구당하게 되고, 몸값의 40%만 지불하자 범인들은 사체의 40%만을 토막 내어 되돌려 주는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범인들을 추적하던 맷은 TJ라는 흑인 꼬마를 만나 그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맷은 범인들이 경찰에 신고하기 어려운 마약상들을 노린 연쇄 살인범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에게 점점 다가가게 됩니다. 범인들의 마지막 범행의 대상인 또 다른 마약상의 딸이 납치되고 맷은 범인들과의 일전을 준비하게 됩니다.

    우울한 잿빛의 도시 뉴욕은 비가 내리고 밀레니엄을 맞는 세기말의 공포가 골목을 휘몰고 다니지만 영화 <툼스톤> 속에 두 줄기의 희망의 빛이 보입니다. 맷을 도와주는 TJ라는 흑인 꼬마와 범인들에게 납치되었던 여자아이입니다. 특히 납치되기 전, 빨간 코트를 입은 꼬마 아가씨의 밝은 미소는 영화의 유일한 유채색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뉴욕 뒷골목의 버림받은 흑인 꼬마와 마약상의 딸, 이 둘은 버림받은 도시에서 피어나는 희망입니다. 감독은 절망 가득한 화면에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고 그 아이콘은 아이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맷을 도와 범인을 쫓는 TJ는 ‘sickle cell anemia’라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는 겸상적혈구 빈혈증이라는 다소 어려운 이름의 질병으로 겸상 즉 낫 모양의 적혈구가 특징인 질병입니다. 우리 몸의 혈액 세포 중에 적혈구는 특이해서 핵이나 미토콘드리아 같은 세포 내의 소기관이 없습니다. 그 대신,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이 한 적혈구당 약 300만개정도 있는데 이 단백질은 철을 포함하고 있어서 산소와 잘 결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허파에서 산소와 결합해서 신체의 각 부분으로 나누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겸상 적혈구 빈혈증은 흑인들에게 잘 생기는 유전적인 결함으로 헤모글로빈의 구조에 이상이 생겨 산소의 농도가 떨어지면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변하게 됩니다. 낫 모양으로 변한 적혈구는 모세 혈관들을 잘 통과하지 못해 혈액순환장애를 일으킬 뿐 아니라 잘 파괴되어 빈혈이 발생하게 됩니다. 특별한 치료법은 없으며 감기 등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환경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이한 것은 이러한 낫 모양의 적혈구에는 말라리아 원충이 기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라리아는 원충이 모기에 의해 전파되어 적혈구에 기생하다가 적혈구를 파괴하는 질병인데 비정상적으로 변한 적혈구는 말라리아 원충이 살 수 없어 말라리아에 견디게 됩니다. 그래서 겸상 적혈구 빈혈증 환자가 많은 곳에서는 말라리아 환자가 상대적으로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되지요. 농기구인 낫의 용도는 절단입니다. 영화 <툼스톤>에서 낫의 의미 역시 절단 단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 범인의 살해 및 사체 훼손의 도구 역시 낫 모양의 칼이며 어두운 과거를 단절하고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TJ의 질병 역시 낫모양으로 변하는 적혈구로 인한 빈혈증입니다. TJ의 그림 속 영웅(아마도 맷 스커터를 의미하겠지요?)의 가슴에는 낫 모양의 심벌이 그려져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순박한 농기구인 낫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지키는 무기가 될 수도 있고 척박한 운명과의 단절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맷과 범인들과의 처절한 사투의 장면으로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는 12 계명의 내레이션과 중첩되면서 장엄한 분위기의 결말로 향해 갑니다. 그런데 수술용 메스 중에 절단용으로 쓰이는 낫 모양의 메스의 번호가 12 번이라는 것, 혹시 여러분들은 알고 계셨나요?
    Premium Chosun ☜       임재현 나누리서울병원 원장 nanoori1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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