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생로병사

환자는 서운하고 의사는 억울한 '3분 진료'

浮萍草 2014. 8. 17. 12:25
    컨베이어 연상되는 '셔틀 진찰'에 IT 도입으로 의사는 모니터만 봐
    화장실 못 가는 '메뚜기 의사'도 모두가 薄利多賣 병원의 피해자
    애틋한 말과 따뜻한 손길이 절실… 환자·질병 따라 진료 시간 달라야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난달 말 월요일 오전 서울의 한 유명 대학병원 심장내과 진료실 대기실은 수십명의 환자로 북적인다. 진료 순서가 적힌 모니터에는 새로운 환자 이름이 수시로 업데이트된다. 그만큼 환자 진료가 빨리 돌아간다. 이곳에는 진찰실이 두 개다. 교수가 한쪽 방에서 환자를 보고 있으면 다른 방에서는 환자가 미리 들어와 앉는다. 의사가 등장하자마자 청진기를 금세 갖다 댈 수 있게 환자는 허리춤을 풀어놓고 기다린다. 교수는 양쪽 방이 연결된 진료실 뒤쪽 공간을 왔다 갔다 하며'셔틀 진찰'을 한다. 환자에게 인간적인 안부를 물어볼 시간도 사적인 근황을 나눌 여유도 찾아보기 어렵다. 진료 이외의 대화란 없다. 환자들은 진찰실에 더 남아 있고 싶어도 자세히 물어볼 게 있어도 밖에서 기다리는 환자들 눈치가 보여 불편하다. '컨베이어벨트 진료'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이날 오전 환자 90여 명이 진료를 마치고 돌아갔다. 이른바'3분 진료'는 우리나라 환자들이 대학병원에 가진 대표적인 불만이다. 주로 환자가 몰리는 서울의 대형병원과 지방의 주요 국립대병원 얘기다.
    환자들은 의사 얼굴을 보는 듯 마는 듯 처방을 받고 진료실을 빠져나와야 한다. 대기실의 동료 환자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의사와 긴 시간 얘기를 나눌 수 없다. 더욱이 진료 기록과 의료 영상이 전산화되면서 의사는 환자 얼굴 대신 컴퓨터 모니터를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의사는 모니터를 보고 있고, 환자는 의사 얼굴만 바라보는 것이 요즘 진료실 풍경이다. IT를 통한 진료 시스템 도입은 업무 효율성을 높여 인간적인 교감을 더 늘리도록 하는 게 목적일 텐데 지금은 진료 효율성이 목적이 된 듯한 기분이다. 가뜩이나 한국말로 오래 설명해도 알아듣기 어려운 게 의학 용어인데 말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환자들은 왜 이런 식의 3분 진료가 이뤄지는지 자세한 사정을 알 길이 없다. 내 목전의 의사가 자기에게 낸 시간이 고작 3분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여기서 대학병원에 대한 모든 불만이 비롯된다. "의사가 모자라니까 이렇지 의과대학을 늘려서 의사를 양산해야 한다니까…""의사들이 환자를 뭐로 아는 거야. 인성교육부터 시켜야 해""이렇게 환자를 공장 제품 취급하고도 무슨 놈의 의료수가를 올려달라고 데모를 하나" 등등. 하지만 의사들도 할 말이 있다. 통상 의대 교수들은 하루 중 오전이나 오후에 반나절 외래를 본다. 이를 한 세션이라고 부른다. 정상적이라면 오전 세션 외래는 아침 9시부터 12시 정도까지다. 오후는 2시부터 5시까지다. 그래야 하루 8시간 근무하는 간호사나 의료기사와 근무 시간을 맞출 수 있다. 그런데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은 내과 교수의 한 세션당 평균 외래환자가 약 45명이다. 이를 정규 진료 시간 3시간 즉 180분 기준으로 나누면 환자 한 명당 딱 4분이다.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을 빼면 정확히 3분 진료가 된다. 외래환자가 많은 내분비내과나 심장내과는 한 세션에 외래환자가 80~90명이다. 정규 세션에 환자를 1분 30초만 봐야 한다. 외래환자가 많은 교수는 최대 120명을 본다. 이런 경우는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왔다가 인사만 하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외래를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2시까지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3분 진료다. 교수들은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는 '메뚜기 의사'가 되어야 한다. 아마도 뒤쪽 시간에 진료받는 환자들은 피곤하고 집중력이 떨어진 의사의 얼굴을 봐야 할 것이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원인은 자명하다. 우선은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집중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전반적으로 의료수가가 낮은 상황에서 외래환자 진료가 큰 수입원이다 보니 환자 수를 줄일 이유가 없다. 상품 판매로 치면 박리다매(薄利多賣)를 해야 한다. 의사들도 어찌 보면 3분 진료의 피해자다. 환자는 서운하고 의사는 억울한 게 한국 의료의 진료 체계다. 그것의 핵심이 '3분 진료'다.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집중을 막기 위한 의료 전달 체계 개선 논의는 차치하고, 당장 진료 난도에 따라 시간 병산(竝算)이 가미된 진료비 제도라도 도입했으면 싶다. 애절한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절박한 질병의 정도에 따라 진료 시간이 달라지도록 해야 한다. 택시도 시간 병산제가 있는데 생명을 다루는 진료가 어찌 머릿수로만 돌아가야 하겠는가. 병원은 질병 치료만 하는 곳이 아니다. 질병 속에서 고통받고 두려워하는 환자가 위로받는 치유 공간이다. 그들은 의료진과의 인간적인 대화를 열망한다. 애틋한 말 한마디와 따뜻한 손길이 절실하다. 의사도 그러고 싶을 것이다. 대리석이 깔린 널찍한 병원 로비를 하루 1만명 안팎 환자가 드나드는 모습을 보면서 3분 진료가 지속되는 한 감성 진료는 어림없는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Premium Chosun ☜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 기자,의사 doctor@chosun.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