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생로병사

한쪽에선 타투(tatoo) 새기고, 한쪽에선 문신 지우고

浮萍草 2014. 7. 13. 10:16
    가로수길 타투 숍 온종일 분주… '밝게 빛나라'는 'Lucete' 인기
    근처 피부과엔 지우는 자로 북적… 지나온 생활 오해 낳을까 걱정
    뇌는 철들어도 몸은 그대로인 법, 후회 안 할 흔적 남기기 쉽지 않아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울 강남 가로수길 한복판에 있는 타투(tattoo) 숍은 잉크가 진피에 촘촘히 박히는 곳이다. 일부 타투는 잉크를 표피에만 넣어 얼마 지나서 사라지나 요즘 거의 모든 타투는 잉크가 진피로 들어가 문양이 영구히 박히는 기존의 문신과 같다. 이를 타투라고 하면 오빠, 문신이라고 하면 아저씨다. 몸을 화폭 삼아 잉크를 찍는 서너 명의 타투이스트(문신 전문가) 손길이 노출의 계절을 맞아 온종일 분주하다.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의 타투를 가져와 똑같이 해달라는 의뢰인들 속에서'문신 있는 자 출입금지'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다. 호기심에 새기는 고등학생부터 죽기 전에 꼭 넣고 싶어 왔다는 60대 신사까지 문신인(人)의 연령대는 다양하다. 수술 흉터를 가리려고 타투를 넣는 것은 이제 고전이 됐다. 20대 청년은 사랑하는 연인의 이름을 추억과 함께 새기고 30대 회사원은 인생에 대한 다짐을 써 넣는다. 요즘은 '착하게 살자' 대신 '밝게 빛나라'는 뜻의 라틴어 'Lucete' 같은 레터링이 인기다. 자기 이름 석 자를 굳이 어깨나 팔뚝에 박아 넣는 자들도 있다고 하니 가히 자아(自我)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느껴진다. 가슴에는'앞'등에는'뒤'라고 써놓은'신체 정의(定義) 문신'이후 새삼'나는 누구인가'를 떠올리게 하는 타투다. '안녕'이라는 말이 만남과 헤어짐 둘 다에 쓰는 지구상 유일한 단어라며 몸에 간직하는 이도 있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소맥'의 절묘한 비율을 손가락에 눈금 격자로 문신하는 이도 있었다니 이 정도면 타투가 재미고 유흥이다. 여전히 용과 호랑이를 고집하는 토테미즘파(派)도 남아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개신교인은 십자가를 넣고 가톨릭 신자는 세례명을 쓰고 불교인은 불상(佛像)을 그린다. 외국인은 한글이나 한문 캐릭터를 좋아하고 한국인은 영어나 로마어 계열의 알파벳을 선호한다. 의외로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개성 표현의 방식으로 주술 문양에 과감하단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무언(無言)의 억압이 심한가 싶다. 남들이 봐주고 멋있다는 칭찬은 문신 중독을 유도한다. 팔목이나 발목에 조그맣게 시작한 문신은 반대편에도 가고 어깨로 번지고 등으로 퍼지는 경향을 낳는다. '한조''린진'등 아호를 쓰며 문신 바늘 40여개를 다루는 타투이스트가 현재 3000여명이다. 타투가 한국인의 몸에 점점 넓게 차츰 깊게 박히면서 어느덧 문신인이 100만명으로 추산된다. 가로수길 타투 숍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신사역 지하철 근방 한 메디컬 건물에는 문신 있는 자들이 북적인다. 여기는 문신 출입 금지가 아니라 대환영이다. 첨단 레이저로 문신을 깔끔하게 지워주는 곳으로 소문난 피부과다. 지우는 사연도 새기는 것만큼 다채롭다. 평소에 집에서 웃통을 훌러덩 벗던 아들이 어느 날부터 몸을 감추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엄마에게 문신이 발각돼 끌려온 고등학생부터 변심한 애인의 이름을 지우고 새 출발을 다짐하는 청년 꽃다운 시절 섹시하게 새겼던 문신을 초등학생 딸아이가 자꾸 이상하게 봐서 지우려는 가정주부가 있다. 회사 임원이 되면서 젊은 날의 치기를 메우려는 40대 직장인이 앉아 있고 짙은 반달 모양의 고전적 눈썹 문신이 나이 드니까 촌스럽고 인상을 너무 강하게 한다며 50대 아주머니가 순서를 기다린다. 더 늦기 전에 호랑이를 지우겠다는 60대 신사가 시술대에 눕는다. 결혼과 취업을 앞두고 몸의 표식이 지나온 생활에 대한 오해를 낳을까 봐 걱정돼 오는 남녀들도 주요 고객이다. 문신 새긴 지 하루 만에 후회된다고 오고, 모양이 마음에 안 들어 지우고 다시 새기겠다며 온다. 경 찰 시험 앞두고, 승려 입문을 준비하다 문신이 결격 사유가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응급으로 지워달라고 애원하는 경우도 있다. 문신의 잉크는 표피 밑 진피에 들어가 벗겨지지 않고 오래 생존한다. 몸에 들어온 외부 물질은 면역세포가 잡아먹지만 잉크 방울은 탐식세포가 삼키기에 입자가 너무 커서 살아남는다. 문신 제거 레이저는 잉크 방울에 순식간 강한 파동을 주어 방울을 쪼개는 방식이다. 바위를 자갈로 자갈을 모래로 부수는 작업이다. 그렇게 하면 탐식세포가 잉크 방울을 잡아먹으면서 문신은 서서히 사라진다. 명함 크기의 문신을 지우는 데 색깔과 선의 치밀도 면의 크기에 따라 20만~40만원 든다. 여러 번 받아야 보기 좋게 지워진다. 기세등등한 시절 새겼던 등판의 용(龍) 문신을 지우는 데 1000만원이 넘게 든다는 말에 조폭 아저씨들의 어깨가 축 처지곤 한다. 한쪽에서는 타투를 새기느라 바쁘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우느라 분주하다. 첨단 디지털과 전통 아날로그가 혼재한 대한민국의 세태가 우리 몸에 그대로 묻어난다. 한편에서는 문신을 신체 언어로 받아들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신체 치부로 여긴다. 뇌는 철들어도 몸은 그대로인 법이다. 타투와 문신 백태를 보면서 인생 화폭에 후회하지 않을 흔적을 남기기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Premium Chosun ☜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 기자,의사 docto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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