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과학 이야기

19 올해 추석이 빠르니 가을도 빠를까?

浮萍草 2014. 8. 14. 15:22
    태양과 지구 자전축의 방향에 의해 결정되는 24절기.
    해는 가을이 일찍 시작되고 그래서 겨울이 상대적으로 길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가을의 상징인 추석(秋夕)이 9월 8일로 예년보다 훨씬 이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서늘한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立秋)와 여름의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말복(末伏)이 겹친 지난 7일부터 아침 기운이 부쩍 차갑게 느껴진다. 벌써부터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됐다는 주장이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기록적인 늦더위로 우리 모두 순환 정전의 어려움을 겪었던 2011년의 추석도 올해와 비슷한 9월 12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ㆍ어설픈 상식에 밀려나버린 과학
    계절의 변화가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만큼 기울어져 있어서 나타나는 자연 현상이고 계절은 우리가 1896년부터 쓰기 시작했던 ‘양력’(陽曆)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래서 윤년 때문에 하루 이틀 바뀌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가을의 정점인 추분(秋分)은 9월 21일이다. 그리고 역시 양력에 의하면 가을이 시작되는 8월 7일(立秋)부터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7일(입동)의 전날까지가 학문적인 가을에 해당한다. 가을이 시작되는 날이 해마다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누구나 과학 시간을 통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배우는 상식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과학 상식이 교실 밖의 현실에서는 무용지물(無用之物)로 변해 버린다. 그래서 올해처럼 추석이 양력 9월 초에 찾아오면 가을이 일찍 시작되고 양력 10월 초로 늦어지면 가을도 늦게 시작된다는 황당한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 한다. 사실 해마다 절기가 일찍 또는 늦게 찾아오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음력의 특징이다. 1년이 354일로 구성된 음력에서는 해마다 절기가 11일 정도씩 늦어지게 된다. 그래서 음력에서는 절기를 맞추기 위해 대략 3년마다 한 번씩 윤달을 넣는다. 우리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음력의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다. 절기와 계절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불편한 음력을 사용할 때의 문제일 뿐이다. 입추가 지난 첫 번째 경(庚)일을 뜻하는 말복이 입추와 겹치게 되는 경우도 생각처럼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은 대략 10년마다 한 번씩 일어나게 된다.
    햅쌀로 빗은 추석 송편.

    ㆍ과학으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전통 명절
    양력으로 결정되는 춘분·하지·추분·동지를 비롯한 24절기와 달리 설날,한식,단오,삼복(초복·중복·초복),칠석,추석과 같은 전통 명절은 음력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음력을 포기한 것이 벌써 한 세기가 훌쩍 넘은 상황에서는 해마다 바뀌는 전통 명절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 모두가 양력에 익숙해졌고, 전기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차고 기우는 달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 크게 줄어들었다. 자연을 떠난 산업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오락가락하는 전통 명절이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음력으로 정해지는 전통 명절을 포기하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전통 명절에는 단순히 생활의 편리함이나 과학적 합리성으로도 어쩔 수 없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을 없애고 싶었던 일제와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했던 권위주의 시대에는 가장 대표적인 전통 명절인 설날을 새로운 시대와 맞지 않는 낡은 명절이라는 의미에서 ‘구정’(舊正)이라고 불렀지만 우리의 풍속을 함부로 바꿀 수는 없었다. 우리보다 가을이 일찍 시작되는 중국의 중추절(仲秋節)을 흉내 낸 우리의 추석이 절기에 비해 너무 이른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9월 하순이 되어야 햇곡식과 햇과일이 본격적으로 출하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여름이 짧았는데 최근의 지구 온난화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주장은 확실한 근거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결국 올해처럼 추석이 일찍 찾아오는 경우에는 소비자와 농민의 입장이 모두 난처해진다. 소비자는 추석에 필요한 햇곡식과 햇과일을 즐길 수 없고 농민들은 추석 특수를 포기해야만 한다. 그런 사정을 고려하면 일부 경제 단체가 주장하는 10월 하순 경의 ‘양력 명절’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추석과 같은 의미를 가진 기독교의 추수감사절은 양력 11월의 4번째 목요일이다. 조상 대대로 지켜오던 전통 명절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면 추석에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음식을 찾아내는 노력이 오히려 더 현실적일 수도 있다. 명절에 즐기는 음식은 세월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뜨거운 북태평양 고기압을 밀어내버린 태풍 할롱

    ㆍ절기와 상관없이 변하는 날씨
    양력으로 결정되는 절기(節氣)는 천문학적으로 계절을 구분해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그런 절기를 은유적인 방법으로 설명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우수(2월 19일)에는 봄비가 내려 새싹이 돋아나고 경칩(3월 6일)에는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백로(9월 9일)에는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고, 상강(10월 23일)에는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날이다. 물론 우리의 그런 해석이 언제나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우수에 봄비가 내릴 것을 기대할 수도 없고 개구리가 하필이면 경칩에 겨울잠에서 깨어나야 할 이유도 없다. 태양과 지구 자전축의 상대적인 위치에 의해 결정되는 절기와 달리 날씨를 비롯한 기상 현상은 지구 대기권의 특성에 따라 변화한다. 실제 절기로 가을이 시작되는 입추가 되었다고 여름의 더위가 완전히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1994년에는 입추가 지난 8월 9일에 낮 최고 기온이 37도까지 치솟는 최악의 폭염이 찾아왔고 2012년에도 입추의 낮기온은 35도까지 올라갔었다. 올해 입추가 지나면서 유난히 가을 기운이 짙게 느껴지는 것은 연이어 한반도 근처까지 접근해왔던 태풍 덕분이었다. 우리에게 뜨거운 열기를 쏟아내던 북태평양 고기압이 일본 동남쪽까지 밀려나 있는 상태다. 올 여름이 얼마나 순조롭게 끝날 것인지는 아직도 분명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추석과 말복의 시기와 가을의 시작은 과학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Premium Chosun        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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