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과학 이야기

17 얼치기 과학지식 장사꾼에게 보내는 경고문

浮萍草 2014. 7. 21. 18:10
    고도의 복잡성에 감춰진 놀라운 규칙성.
    학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혼란스럽다. 과학기술이 우리의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나 공유하는 진실은 거기까지다. 과학자들은 세상에 과학만큼 중요하고 흥미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목청을 돋운다. 사람들이 무엇보다 재미있는 과학을 몰라주고 관심을 갖지 않는 현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에서 문과를 선택했던 사람들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과학은 과학기술을 전공하는 과학자들에게나 필요한 것이고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과학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고, 재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과학은 너무 어려워서 문제라고 한다.
    ㆍ복잡한 자연에 숨겨진 규칙성
    과학은 무한한 상상력을 핵심으로 하는 인문학과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인문학과 달리 과학은 우리가 마음대로 상상하거나 원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과학은 지역·이념·문화·종교·시대를 초월하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특성을 갖는다. 미국의 과학이 따로 있고, 우리나라의 과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보수적 과학이 따로 있고 진보적 과학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과학 지식의 양과 질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과 오늘날의 과학이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인문학이 문화와 시대를 관통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지극히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성립되는 것이다. 과학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과학 지식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복잡하고 다양한 자연 현상에서‘찾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문학은 예술과 마찬가지로‘창조적’이지만 과학은 근본적으로 ‘발견적’일 수밖에 없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미국 화학자 로얼드 호프만은‘셰익스피어가 없었다면 아무도 햄릿과 같은 걸작을 만들어낼 수 없었겠지만 아인슈타인이 없었더라도 상대성 이론은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과학 지식은 우리의 창작품이 아니라 복잡한 자연 현상을 꿰뚫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규칙성을 정리한 것이다.
    양자역학의 정립에 기여한 위대한 과학자들.

    ㆍ천재 과학자에게만 보이는 과학적 규칙성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은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하고 혼란스럽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부터가 그렇다. 그저 아름답고 신비롭게 반짝이는 수천 개의 작은 별들 사이를 비교적 규칙적으로 떠도는 해와 달 그리고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이 전부가 아니었다. 음과 양, 그리고 오행의 운행도 말처첨 규칙적이거나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수천 년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목이 아플 정도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관찰을 했지만 음양오행의 운행 법칙을 정확하게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 뿐이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 내리는 유성(遊星)과 아무런 기약도 할 수 없는 혜성(彗星)의 존재도 골칫거리였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에 감춰진 규칙성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불과 400여 년 전이었다. 600만 년 전 지구상에 등장해서 1만 2천 년 전부터 화려한 문명 생활을 시작하여 우주 만물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영장(靈長)이라고 뽐내는 우리 인간이 자연에 감춰진 규칙성을 깨닫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긴 세월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별들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이 사실은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과학 지식을 깨닫고 발견하기 위해서는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와 같은 천재적 과학자의 창조적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상대성 이론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천재성 덕분에 베일을 벗게 되었고 양자역학은 닐스 보어를 비롯한 수십 명에 이르는 천재 물리학자들의 협력과 경쟁에 의해 그 모습이 밝혀졌다. 자연은 아무에게나 속을 함부로 드러내어 보여주는 법이 없다는 뜻이다.
    과학은 우리의 생명줄.

    ㆍ과학이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착각
    그런 과학을 쉽게 이해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다. 우리 스스로의 정체와 미래의 운명을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이 살고 있는 복잡하고 오묘한 자연에 감춰진 과학적 진실에 대한 최소한의 외경심(畏敬心)을 가지고 있다 면 감히 그런 기대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과학적 진실을 찾아낸 과학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그들의 노력과 성과가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대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 남을 천재들조차 쉽게 알아내기 어려웠던 과학 지식을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과학 지식을 오락거리로 여기는 자세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엄청난 노력과 투자를 통해서 새로운 과학 지식을 밝혀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단순히 우리의 능력을 자랑하고, 새로운 즐거움을 찾기 위한 것이 절대 아니다. 과학 지식은 불안정하고 위협적인 자연에서 우리 스스로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필수 지식이다.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과거 우리 조상들에게 자연은 감히 어떻게 해볼 수도 없었던 거대한 존재였고, 변덕스럽고 무시무시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존재는 정말 하찮은 미물(微物)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닥쳐오는 끔찍한 자연 재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자연에서 그나마 오늘날처럼 풍요롭고 건강하고, 평등하고 안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온전하게 자연과 우리 스스로의 정체를 밝혀주는 과학 지식과 그런 과학을 기반으로 우리 스스로 개발한 첨단 기술 덕분이다. 그런 과학을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해하고 즐기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어설픈 과학 지식을 동원해서 무지한 소비자의 약한 마음과 주머니를 노리는 고약한 기업과 엉터리 전문가가 판을 치는 현실은 정말 안타까운 것이다. 자연에서 우리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과학이 어려운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과학이 어렵다고 불평 할 것이 아니라 민주화·다원화 사회에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렵고 재미도 없는 과학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현명한 인식이 꼭 필요하다.
    Premium Chosun        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