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스크린 속 의학

38 스틸 라이프

浮萍草 2014. 7. 28. 10:15
    아름답고 멋지게 죽으려면

    음을 앞두고 있다는 데에는 의사들도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반인과 다른 점은 죽음을 많이 관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과 연관된 직업을 가진 사람은 의사 장의사가 대표적입니다. 그 차이는 사람을 대하는 시점이 죽음 전과 후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는 의사의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사명감이나 봉사 정신이 없으면 견뎌내기 어려운 일입니다. 너무 냉정해도 안되지만, 많은 감정이입이 일어나면 의사 자신에게 심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습니다. 중증 외상 암병동 호스피스 병동 등의 중환자를 다루는 분야의 의사들에게는 더 힘든 일이겠지요. 필자가 20년 전 모 종합병원에서 혈기 넘치는 신경외과 의사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는 교통사고 환자가 많을 때여서 매일 밤 응급실은 전쟁터 같았습니다. 특히 중증의 뇌손상 환자들이 많았는데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의 출혈성 뇌좌상,경막하 뇌출혈 등 생존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경우들이지요. 온갖 치료를 해도 결국 동공이 다 풀리며 뇌사상태로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당직 근무 때는 중환자실의 호출이 불티났습니다. 대부분 호출은 뇌사 환자의 심정지였습니다. 심정지 환자의 심장마사지를 한 번 하고나면 온 몸이 땀으로 푹 젖고는 하였습니다. 그리고 보호자 면담이 이어집니다. “심장 박동은 다시 살아났지만 이제 곧 다시 심정지가 발생할 것 같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아직 아들이 도착하려면 멀었습니다. 지금 오는 중이라는 데 조금만 더 끌어주시면 안 될까요?”
    “아, 네, 한 번 최선을 다해보기는 하겠지만···.” “선생님 부탁합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임종지키게 해주세요.” “네, 일단 빨리 오시라고 하십시오. 장담 하기 어렵습니다” 그때 중환자실 간호사가 문을 열고 신호를 보낸다. “선생님 다시 어레스트예요.” “네, 갑니다.” 보호자께는 대기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심장마사지를 하러 들어갑니다. 이미 환자는 뇌사 상태로 의학적으로는 사망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뇌사에 대한 법률적인 지침이 내려진 상태가 아니라서 심장이 완전히 멎기 전에는 의사가 사망선고를 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나라는 1998년에 대한의사협회에서 뇌사 판정 기준을 만들고 2000년에 법 제정이 이루어짐). 하지만 보호자 청에 의해 어쨌든 시간을 끌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온갖 약을 퍼붓고, 갈비뼈가 부서져라 심장마사지를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것인가? 이것은 환자를 위한 치료가 아니고 보호자를 위한 치료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어거지로 심장 박동을 유지하다가 도착한 보호자 앞에서 사망선언을 하고나면 창밖은 뿌옇게 밝아오곤 하였습니다. 의미 없는 연명치료 마치 거창한 장례식과도 같습니다. 죽은 사람은 자리에 없고 남은 사람들을 위한 자리 그 의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영화 <스틸 라이프>는 이러한 고민,즉 떠난 사람들과 남는 사람들이 만나는 접점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는 영화입니다. 2013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한 작품으로 에디 마산의 표정 연기가 뇌리에 여운을 남깁니다. ​존 메이(에디 마산)는 런던 케닝턴 구청의 고객지원과 직원입니다. 그가 하는 일은 홀로 죽음을 맞이한, 이른바 고독사한 노인들의 유품을 거두고 장례를 지원하는 일입니다. 특히 유품 속에 있는 망자의 지인들의 연락처를 찾아, 장례식에의 참석을 유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는 표정이 없습니다. 마치 정물화 속의 인물처럼 보입니다. 영화의 제목 <스틸 라이프>가 정물화라는 뜻을 가졌는데 그것은 마치 죽은 사람의 그림자만 쫒는 주인공 존 메이의 생기 없는 일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던 그의 일상에 변화가 옵니다. 맞은편 아파트에 살았던 빌리 스토크가 고독사한 채 발견되고 그의 유품 속의 지인들을 찾는 여정 에서 인생의 다른 면을 찾게 됩니다. 특히 빌리 스토커의 딸 캘리 스토커(조앤 프로갓)를 만나면서 그의 정물같은 표정에 생기가 돌게 됩니다. 영화의 흐름은 존 메이의 열굴 표정의 변화를 따라갑니다. 존 메이의 표정은 더욱 밝아지게 되면서 영화는 예기치 못한 반전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영화 <스틸라이프>는 세상을 떠난 사람의 의미가 살아 남은 사람에게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잔잔한 화면으로 보여줍니다.
    존 메이는 상사에게 해고 되면서‘장례식은 죽은 사람이 아닌, 살아 남은 사람들을 위한 자리야’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수긍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떠난 사람을 되새기는 것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삶의 에너지로 이어질 수 있다면 죽은 사람과 산사람이 이별하는 과정의 시간은 우리에게 큰 의미 입니다.

    영화가 추구하는 의미는 단순히 죽은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자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한 번 돌아 볼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삶은 사랑하고, 기뻐하고, 칭찬하고 배려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시간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을 싸우고,미워하고,시기하고,경쟁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우리들, 참 불쌍하지 않습니까?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명제입니다. 물론 죽음을 항상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없지요, 의사와 장의사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의사도 장의사도 편안한 죽음을 꿈꿉니다. 아름다운 죽음, 존엄하고 행복한 죽음은 좋은 병원에서 많은 가족들에 둘러싸여 거창하게 맞이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온 인생의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며 고통없이 눈감는 그런 죽음을 맞이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돈과 권력과 명예가 아닌 풍성한 삶의 기억들입니다. 의학적으로 접해온 수많은 죽음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많은 시간을 공들여 싸웠지만 헛되이 흰 시트에 싸여져 내려가는 환자들을 보며 어떤 죽음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해 봅니다. 여러분은 지금 준비하시는 것은 무엇 입니까?
    Premium Chosun ☜       임재현 나누리서울병원 원장 nanoori1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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