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스크린 속 의학

37 :대학살의 신

浮萍草 2014. 7. 21. 10:48
    핸드폰으로 환자 말만 믿고 약 줬다가 사망하면 누구 책임?
    통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은 말입니다. 
    우리는 집과 직장에서 그리고 친구들과 수없이 말을 주고받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진심이 담긴 말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언어는 교양이라는 껍데기에 지저분한 발톱을 숨긴 채 돌고 돕니다. 
    그래서 언중에 숨어있는 서로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 눈치를 보고 도발하기도 하며 한 발 물러서기도 합니다.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 실려있는 말 그 화려한 포장을 걷어내면 추악한 본성에 역겹기도 합니다. 
    마치 ‘대학살의 신’ 같습니다. 
    동명의 연극을 영화화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학살의 신>은 우리가 주고 받는 말이 얼마나 위선으로 가득차 있는 지를 유쾌한 코미디로 풀어낸 수작입니다.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네 명의 배우가 쏟아내는 속사포같은 대사들의 리듬은 마치 실내악 4중주를 보는 듯, 감칠 맛납니다.

    영화 <대학살의 신>은 두 쌍의 부부가 주인공입니다. 이 부부들이 한 아파트에 모입니다. 모인 목적은 아이들 싸움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부부의 아이가 막대기를 휘둘러 다른 부부의 아이의 앞니를 부러트리는 사고가 발생하고 부모들은 잘잘못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습니다.

    이들은 수위를 넘나드는 팽팽한 긴장을 탁구공처럼 주고 받다가 몇 잔의 스카치 위스키에 결국 추악한 본심을 드러내며 언쟁을 벌입니다. 처음에는 부부간의 말싸움이지만 점차 남녀 간의 말싸움으로 변하고 끝내 막장으로 망가져갑니다.

    극중에 긴장을 돋구는 물건으로 핸드폰이 등장합니다. 네 명의 대화 중에 수없이 끼어드는 핸드폰은 극 중의 긴장을 고조시키다가 결국은 어항 속에 수장되면서 망가집니다. 마치 망가지는 네 명의 등장인물의 위선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은 되살아난 핸드폰의 울림으로 끝납니다. 되살아난 대학살의 신처럼 말입니다.​ 조디 포스터,케이트 윈슬렛,존 C.라일리,그리고 크리스토프 왈츠,이 쟁쟁한 네 명의 배우들이 쏟아 내는 언어의 유희는 아파트 거실이라는 한 공간에서 벌어 지는 한시간 남짓의 시간을 한 눈 팔지 않고 몰입하게 합니다. 특히 주고 받는 대사의 타이밍과 리듬 그리고 아슬아슬한 긴장의 수위는 영화 <대학살의 신>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극 중의 변호사로 나오는 앨런(크리스토프 왈츠)은 대화중에 걸려오는 전화 받기에 바쁩니다. 극 중의 인물들에게는 상당히 거슬리지요. 통화 내용은 좋지 않습니다. 그가 고문 변호사로 있는 제약회사에서 발매한 고혈압 치료제의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객인 제약회사 담당자에게 핸드폰으로 일일이 지시를 내립니다.

    그 와중에 다른 부부에게도 전화가 옵니다. 마이클 롱스트리트(존 C.라일리)의 어머니 전화입니다. 마이클의 어머님은 무릎의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으며 혈압약까지 챙겨먹어야하는 상태입니다. 한참 통화를 하던 중, 마이클은 어머니가 먹는 혈압약이 앨런 핸드폰 통화의 그 문제 약임을 알게 됩니다. ​그 약을 먹지 말라고 어머니와 실갱이를 하던 마이클은 전화기를 앨런에게 넘깁니다. 당신 책임이니까 알아서 하라는 의미지요. 그러나 마이클은 마치 의사처럼 넉살 좋게 어머님에게 상담을 해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족은 답니다. “제가 의사가 아니라서 뭐라고 할 수는 없고”라고 말입니다. ​의사라도 전화로 진료를 할 수 있을까요? 올해 의료계의 가장 큰 핫 이슈가 바로 이것, ‘원격 진료’입니다. IT의 발달로 환자의 정보 전송이 가능해지면 충분히 가정해 볼 수 있는 것이 원격 진료입니다. 우주 정거장에 있는 우주인들의 심장· 호흡에 대한 정보는 지구의 관제 센터에 있는 의료진에 의해서 분석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오지에 있는 환자들이 의료진을 접하기 어려운 경우 생체 정보 전송과 함께 의사의 진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극한 상황의 특별한 경우입니다. 집에 있으면서, 우리 동네 병원을 가지 않고 진료를 받는 것을 원격진료의 장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원격 진료의 가장 큰 문제는 환자 정보의 정확성 유무와 의료행위의 책임소재 설정 문제입니다. IT 기기에서 전송된 환자의 정보, 의사가 직접 환자를 보는 것처럼 정확할까요? 만약 잘못된 정보에 의한 진료로 의료사고가 생겼을 때 그 책임이 의사에 있는지, 아니면 IT 회사인지를 가리는 것부터 애매합니다. ​물론 핸드폰으로 환자와의 상담은 가능합니다. 인터넷으로도 환자와 이메일로 상담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료가 아니고 상담일 뿐입니다. 포탈 사이트 Q&A의 상담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의료 소송을 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진료가 되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의료 행위에 대한 법적인 책임이 따르게 됩니다 ​저도 가끔 원격진료를 합니다. 환자는 전남 신안의 한 섬에 계시는 할머님입니다. 저에게 척추 수술을 받고 가끔씩 약을 타러 오십니다. 어느날 보호자 따님만 오셔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뜸 저에게 전화기를 내미시는 겁니다. “어머님과 통화 좀 해보시겠어요?” “네? 아, 네.” 저는 엉겹결에 전화기를 건네 받습니다. “할머님, 안녕하셨어요?” “응, 나는 잘 지내제. 근디 얼마전에 하루 종일 마늘을 뽑았더니 허리가 많이 아파! 약 좀 줘야 쓰것당께?” “할머님, 이제 힘든일 하시면 안 되요. 허리 다 망가져요! 그리고 아프시면 한 번 올라오세요.” “앗다, 멀어서 어째 간다냐? 그냥 우리 딸한티 약이나 좀 지어서 보내, 잉?” 하고 끊으십니다. 저는 따님에게 웃으며 필요한 약을 처방해 드리고 맙니다. 다음에는 꼭 한번 모시고 오시라는 당부와 함께 말입니다. 물론 다음에도 할머님은 전화로 목소리만 남기시겠지요. 원격진료,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준비와 검토를 거쳐야합니다. 환자의 생명이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진료나 상담이 아닌 고도의 판단이 필요한 진료 행위를 위해서는 아직도 준비해야하고 보완해야할 문제들이 산적해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이 무리한 원격 진료의 강행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원격진료의 전문가는 행정가도 IT전문가도 아닌, 의사입니다.
    Premium Chosun ☜       임재현 나누리서울병원 원장 nanoori1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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