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쥑'이는 여의사의 행복처방

35 '호스피스 이야기'를 마치면서

浮萍草 2014. 7. 19. 06:00
    가족을 화해시키는 죽음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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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살 미은씨는 어쩔 수 없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마냥 슬퍼하지만은 않았다.나는 미은씨의 이모가 들려주는 가녀린 플룻 소리를 따라 임종실(평온실)에 들어
    섰다.미은씨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남동생은 발치에 앉아 음악소리를 듣고 있었다.옆방에서 슬픔에 잠기었던 미은씨의 아버지는 일어나서 아내의 발을
    어루만졌다.
    “아니 이제 아내를 포기하란 말입니까?” 말기 뇌종양환자를 상담하러 신경과 입원실에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 호스피스에 온다고 해서 죽음이 앞당겨지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는 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죽음이란 단어조차 꺼내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죽음이란 진취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한껏 재능을 발휘해야 할 젊은이들에게는 더더군다나 알리고 싶지 않은 주제이다. “나는 김 선생 말에 백퍼센트 동감해요. 하지만 글쎄요. 아들 녀석은 아직 몰랐으면 합니다.”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1위를 기록할 만큼 가뜩이나 괴롭고 우울한 청년들한테 어두컴컴한 죽음을 알리면 큰일인 것이다.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이든 죽음이 등 뒤에 온 사람이든‘죽음’을 늦게 알려줄수록 죽음과 반대되는‘삶’을 더 열심히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이래저래 ‘죽음’은 천덕꾸러기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죽음과 호스피스 이야기’를 시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죽음이란 나와는 상관없는 먼나라 이야기로만 들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끌어내야 하는 작업은 많은 희생을 각오해야 했다. “당신, 그렇게 죽음에만 빠져 있다가는 삶 자체가 이상해져요”라는 진심어린 충고도 아낌없이 받았다. 하지만, 내가 삼킨 죽음은 나를 시원하게 바꾸었다. 수많은 걱정과는 달리 나는 호스피스 의사가 된 후에도 죽음에 익숙해지거나 삶이 허무해지지는 않았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라고 한 카프카의 말처럼 여전히 삶이 던져주는 달콤함에 열정을 느낀다. 나에게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이 끔찍한 주제가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로 들려왔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결론적으로 죽음에 도달하지만 죽음보다는 그 직전에 일어나는 깊이 있는 삶의 이야기였다. 비록 암은 이기지 못했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삶의 끝자락 이야기들이 실패한 인생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생 중 가장 힘든 시기는 보증을 잘못 서서 거액의 부도를 냈을 때나 남편이 바람펴서 이혼할까 말까 망설일 때가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더 이상의 인생 반전이 없는 죽음 직전까지의 ‘짧은 삶’이다. 그때 잘 보내야지만 살아 온 세월이 온전한 나의 인생이 되고, 남겨진 사람의 인생도 편안해질 수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 남편이 살림을 거덜내고 여자 문제까지 복잡해지자 견디다 못해 세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도망간 여인이 있었다. 이혼한 전(前) 남편과 25년을 외면하고 살다가 안타깝게도 말기 간암환자가 되었다. 여인이 임종실에서 있을 때 뿔뿔이 떨어져 지냈던 가족들이 처음으로 모였다. 5살과 3살짜리의 아기 엄마가 된 여인의 딸은 엄마를 임종실에 눕혀두고 그동안 왕래가 없었던 아버지와 함께 뜨끈한 칼국수 한 그릇을 사 먹으러 나갔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힘이다. 때로는 삶의 마지막 몇 시간이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나는 여인의 마지막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씩씩했는지 확실히 보았다. 마치 연극배우가 연극이 마칠 때쯤이 되어서야 배역이 한 역할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는 것처럼.

    그동안 내가 했던 호스피스 이야기는 암 덩어리를 주렁주렁 달고 잠깐 살다가 떠나가는 평범한 환자 이야기의 반복이다. 사람들은“그저 어둡고 축축한 죽음의 병동에서 무슨 삶의 비밀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되물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이 그저 뚝하고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환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잔잔하게 자기가 살아 온 인생을 이야기 하고 싶어 했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귀 기울여야 했다.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도 아직은 살아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속삭여주는 삶은 죽음 뒤에서도 변하지 않는 보석과 같았다. 아등바등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세상살이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오늘을 아름답게 행복하게 사세요’라는 작은 희망을 던져 주고 있었다. 나는 철학자도 성직자도 아닌 그저 암 환자의 통증을 조절하는 아줌마 의사다. 깊이 있고 현란한 언어로 삶의 의미를 해석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고 죽음 뒤의 삶에 확신을 가질 만큼의 종교적인 신념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권위 있는 의사선생님이 아닌 아름다운 호스피스 의사가 되고 싶은 의료인으로서 어머니를 호스피스병동에서 떠나보낸 호스피스 경험자로서 사랑하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꼭 한번은 들려주고 싶었던 인생의 마지막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누구나 한번은 가야하는 길이지만 모두 나처럼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눈치 보지 않고“죽음은 더 이상 일상생활에서 꾸겨서 깊숙이 넣어버려야 할 무거운 이야기도 그저 스쳐지나가야 하는 가벼운 이야기도 아니다”라는 것을 당당하게 말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의 삶이 달라진다면 죽음은 그 이상의 가치를 충분히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10살에 찾아오든지 90살에 찾아오든지 죽음은 언제나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찾아온다. 그래서 한없이 당황스럽다. 내가 돌본 많은 사람들도 힘겨워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죽을 준비를 하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나중에 천천히 준비해도 늦지 않다. 준비 없이 떠나는 사람이 바로 호스피스 의사인 ‘나’ 일수도 있다고 할 만큼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밝혀지는 삶의 속살을 만났으면 한다. 살아본 사람들은 한결같이“사람은 참 바뀌기 어렵다”라고 하지만 극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가장 극한 상황인 호스피스 이야기를 통해서 당신이 좀 더 현명한 당신 삶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한다.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삶의 밑바닥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인생의 진정한 이정표를 보여주고 싶었다. 죽음으로도 해결되지 못하는 감정의 정리의 필요성이라든지 마지막에 지켜주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는 것 또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더 인간 답다는 이야기들도 해보고 싶었다. “어쩌죠. 순애님만 안 아프시면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인데. 어렵게 공부한 아들도 이제 취직해서 예쁜 여자 친구도 생겼고.“ “그러게 말예요. 할 수 없죠. 생명이 우리 것은 아니잖아요.” 죽음 앞에서 이렇게 차분하게 말하는 반백의 깡마른 그녀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내가 돌본 환자들이 남긴 아름다운 마지막 이야기를 통해서,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모두가 당신의 소중한 인생임을 느끼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동안 부족한 저의 작은 글에 관심을 가져주신 프리미엄조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인은 “천지(天地)는 여관이요 산 사람은 여관에 묵는 나그네(過客)”라고 했다. “죽은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인(歸人)”이라고 했다. 철학자는“존재는 존재하지 않음과 대비할 때 참모습을 드러낸다. 우리의 삶도 삶이 아닌 것 즉 사람들이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과 대비해봐야 진상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산 사람이 어찌 죽음을 알 수 있을까. 기껏해야 타인의 죽음을 많이 보고 겪을 따름이다. 우리 시대에 가장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고 타래진 사연을 들어준 의사 가운데 한명인 김여환 센터장이 인기코너였던‘'쥑'이는 여의사 김여환의 행복처방’을 마감한다. 그는 그동안 연재를 통해 죽음 직전에서 발가벗는 천태만상의 인생 성적표를 묘사해왔다. 사망선고 이후의 삶에 확신을 갖고 있었고 깊이 있고 진솔하고 현란한 언어를 사용해 삶의 의미를 해석했다. 문학의 힘으로 의학을 주무르고 의학의 힘으로 문학을 틀지우는 그의 글쓰기 능력은 뭇 시인과 철학자를 넘어선다. 김 센터장은 앞으로 운동사 자격증도 따고 딸 아이와 빵도 만들면서 평범하게 지내려고 한다. 수많은 죽음을 관조한 호스피스 여의사의 결론은 가족과 건강인 것 같다. - 편집자
    Premium Chosun ☜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dodo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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