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쥑'이는 여의사의 행복처방

30 77세 암환자, 임종이 가까워 오자 "내가 왜 벌써 죽어야 해?”

浮萍草 2014. 6. 26. 06:00
    “자연은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세상에서의 첫날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날을 선사한다.” - 장 그르니에
    리가 정말 배웠어야 할 건 따로 있다. 
    예를 들면 여자들이“나 살쪘어?”라고 물어볼 때 실수로라도 고개를 끄덕이면 안 된다는 것. 
    위장 내시경을 할 때는 숨을 입으로 들어 마시면 안 된다는 것. 
    버림받은 첫사랑을 30년 뒤에 만나면 그때 버려줘서 고맙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할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 등이다. 
    경험을 통해서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몰라서 치러야 할 대가는 크다.
    “내가 왜 벌써 죽어야 하는데?”
    태순할머니가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 봤다. 얼떨떨했다.
    “이렇게 가만히 놔두면 안 되는 거잖아.”
    어제까지만 해도 그녀는 안 아프게 해줘서 고맙다며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던 77세 대장암환자였다.
    당황한 사람은 내가 아닌 그녀의 딸이었다.
    “아니, 엄마가 왜 그럴까요? 
    나쁜 소식을 알리니까 다 받아들인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굿이라도 해보자하고 한 것도 취소하고 부랴부랴 입원하셨는데….”
    딸이 너무도 상심해 보여 잠시 병실 밖으로 내보냈다.
    이제 태순할머니와 나, 
    단 둘이 남았다.
    “할머니, 이제까지 한 번도 죽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세요?”
    “그래.”
    태순할머니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얼마 전에 세월호 사건도 있었잖아요. 
    할머니 손자 같은 고등학생 아이들이 갑자기 죽었어요.”
    이럴 때는 괜찮아질 거라는 비현실적인 희망으로 위로를 하는 것보다 곧 밀어닥칠 현실을 귀띔해 주는 것이 낫다.
    “그건 어쩔 수 없었잖아. 
    그리고 아무리 의사라도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태순할머니는 눈을 아래로 깔고 그녀가 죽어가는 것이 마치 내가 아무런 치료를 안해서인양 투덜거리셨다.
    태순할머니는 부정,분노,타협,우울 그리고 수용에 이르는 죽음의 5단계를 거꾸로 밟아갔다. 
    그녀는 40년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식들을 위해서 억척같이 살았다. 
    아낌없이 베풀면서 잘 살아온 사람들은 마지막 날은 언제나 평화로웠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죽음의 순서는 그리 상관이 없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그 어느 단계도 밟지 않는 경우가 제일 안타깝다. 
    그런 환자와 가족은 ‘죽음’이라는 말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게 한다.
    2주일이 지나자 태순할머니는“눈을 떠보니 오늘도 살아 있는 거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드디어 어두운 터널을 무사히 통과했다.
    “할머니, 이제까지 살아오신 것처럼 따님을 위해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 오신대로 살아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힘들어 하시는 동안 따님이 많이 우셨어요.”
    나는 기다렸던 작은 위로를 했다.
    잘 죽어가기 위해 정말 배웠어야 할 것은 죽음의 5단계를 외우거나 혼자서 관속에 들어가 보는 것이 아니다.
    “저요 이미 죽음을 다 받아들였어요”하면서 의젓하게 지내다가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면 불안해 떠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기보다는 결과물이다. 
    그리고 삶이란 누구에게나 신산스럽고 일상은 상처와 갈등의 연속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만큼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을 마지막 날은 달라진다.
    
    Premium Chosun ☜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dodo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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