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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리스트가 사랑한 여인

浮萍草 2014. 7. 15. 11:31
    누가 리스트를 나쁜 남자로 만들었는가?
    스트만큼 많은 수식어를 가진 음악가도 드물다. 
    주로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쳤던 리스트는 음의 마술사,피아노계의 파가니니로 불렸고 성직자가 된 이후에는 ‘메피스토펠레스(파우스트에 나오는 악마)’로 묘사
    되기도 했다. 
    그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는 파가니니의 연주를 접하고 나서 하루에 10시간 이상 피아노를 연습했다. 
    리스트는 현란한 테크닉과 과장된 쇼맨십으로 청중을 현혹했다. 
    사람들은 리스트가 마귀의 힘을 빌려서 연주한다고 했다. 
    그만큼 그의 연주는 누구도 따라 할 수 없을 만큼 기교적이었고 이러한 모습은 그를 모델로 한 캐리커처에서 많이 드러난다. 
    한마디로 리스트는 테크닉,예술성,쇼맨십을 겸비한 최고의 ‘브라뷰라(bravura, 화려하고 힘찬 연주) 피아니스트’였다.

    그런 리스트의 연주회에서는 어디서나 여성팬들의 열광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리스트와 눈만 마주쳐도 기절하는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꽃다발 대신 보석을 던지고 그가 피우다 버린 궐련을 죽을 때까지 간직했던 여인도 있었다. 이러한 여성들의 히스테리 증상에 대해 시인 하이네는 리스 토마니아(Lisztomania)라 부르기도 했다. 언제나 많은 여성에게 둘러싸여 ‘로맨스의 챔피언,사교계의 왕,카사노바’라 불린 리스트는 정작 자신이 무릎을 꿇고 사랑을 고백했던 여인은 몇 안 되었다. 언제나 여자들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고 그를 유혹 했던 것이다.

    ㆍ아버지의 유언은 “여자를 조심하라”
    1811년 헝가리 라이딩 태생의 리스트(Franz List, 1811-1886)는 9세에 무대에 데뷔하면서 지역위원회로부터 6년의 장학금을 약속받고 가족 모두 빈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리스트는 체르니와 살리에리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배우게 된다. 1823년 4월 14일, 12세의 리스트가 베토벤 앞에서 연주했을 때 베토벤은 소년 리스트의 어깨를 잡고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리스트는 이 거장이 찍어준 낙인을 평생 잊지 않고 새겼다. 이후 체르니는 리스트에게 파리음악원으로 갈 것을 권유했고 리스트 가족은 파리로 떠나게 된다. 슈만, 쇼팽보다 한 살 아래인 리스트는 그들과 친분을 맺으며 파리에서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을 쌓아간다. 그러던 중 리스트가 16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리스트는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이때 아버지의 유언은 “여자를 조심하라”였다.
    ㆍ10대의 첫사랑, 유언서에까지
    아버지의 사망 후 어머니를 보살펴야 하는 가장이 된 16세 리스트는 한 소녀를 만난다. 리스트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있던 15세 소녀 카롤린 드 생 크리크 (Caroline de Saint Cricq)였다. 둘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싹텄을 때 그것을 알게 된 카롤린의 아버지의 반대로 리스트는 그 집의 출입마저 제지당하고 말았다. 이 시련의 상처로 리스트는 수개월 동안 누워 지냈으며 1년이 넘도록 피아노를 멀리했다. 무대에서 젊고 유능한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자 파리의 신문에는 그의 사망기사 소식마저 실리게 된다. “프란츠 리스트, 1811년 라이딩에서 태어나 1828년 파리에서 죽다” 결국 리스트는 카롤린을 다시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 첫사랑을 평생 잊지 못했다. 16년이 지난 1844년에 리스트는 당시 포에 살고 있던 카롤린을 만나러 일부러 방문하기도 했고 다시 16여년이 지난 1860년 사제 서품을 받으며 작성한 유언서에서 그녀를 위한 반지모양의 보석을 남기게 된다. 카롤린은 리스트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 여인이었고 수많은 염문설을 뿌렸던 그의 인생에 단 한 번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었다.
    Paganini Etudes No.3 La Campanella. piano 파가니니 대연습곡집 (S.141) 중 3번 라 캄파넬라(종):손열음.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2번 마지막 악장
    론도를 주제를 기반으로 작곡. 영화 ‘샤인’, ‘더 크러쉬’,‘피아노의 숲’ 등에 삽입되었던 곡.

    ㆍ결혼하지 않고 아이 셋을 낳았지만
    … 쇼팽이 당시 유행하던 살롱에서 조르주 상드를 만났듯이 리스트 또한 파리의 한 살롱에서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을 만나게 된다. 1833년 리스트가 22세 때, 마리 다구는 28세로 아이가 셋이었으나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마리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탈출할 그 누군가가 필요했고 리스트는 첫사랑 시련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때였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빈자리를 발견하고 그 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많은 여인의 우상이었던 리스트는 마리 다구에게 수없이 사랑 고백을 보낸다. “마리, 마리, 이 이름을 백번이고 천번이고 부르게 해 줘요. 당신의 이름이 내 맘에 자리 잡고 불타오르고 있어요. 천국도 지옥도 모두 당신 안에 있어요” 이들의 관계는 곧 살롱가에 소문이 나게 되고 이들은 사랑의 도피를 위해 파리를 떠난다. 마리와 함께한 행적은 리스트의 연작 피아노곡집 <순례의 해>로 탄생하는데 총 26곡이 담겨 있다. 그들은 10년의 세월을 함께했고 이들 사이엔 세 명의 아이가 태어난다. 그 중 둘째 딸 코지마는 한소 뷜로우와 결혼했다가 뷜로우의 스승이자 리스트의 동료인 바그너와 바람을 피우면서 음악사에 또 한 번 이름을 남기게 된다. 1939년 셋째 아이 다니엘이 탄생할 즈음부터 리스트와 마리 사이에는 틈이 생기기 시작하여 1844년 그들은 결국 파경을 맞이한다. 마리는 파리로 돌아가 다시 살롱을 열었고 리스트는 헤어진 연인 마리의 험담으로 인해 9년 동안이나 파리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게 된다.
    Franz Liszt. Après une lecture du Dante: Fantasia quasi sonata from Années de pèlerinage II, Deuxième année: Italie, S. 161, No. 7, piano ;
    ARCADI VOLODOS.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 제2년 이탈리아 중 7곡 ‘단테를 읽고’는 소나타풍 환상곡으로 빅토르 위고의 시에서 제목을 따왔으나,내용은
    단테의 <신곡> 가운데‘연옥편’에 대한 감상을 표현한 작품이다.<순례의 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언급
    되어 일본에서는 이미 절판되었던 라자르 베르만의 음반이 다시 복간되어 폭발적으로 판매되었다.하루키의 소설의 제목에서도 리스트의 작품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ㆍ>결혼 한 번 못 한 카사노바
    마리다구와의 결별 이후 리스트는 파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속 순회연주를 갖는다. 그러던 중 1847년 러시아의 키예프의 연주회에서 리스트는 거금이 동봉된 팬레터를 받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팬레터의 주인공 카롤리네 비트겐슈타인 공주를 만난다. 카롤리네는 러시아의 자인 비트겐슈타인 왕자와 결혼해 딸이 있었지만 별거 중인 28세 여인이었다. 급속히 친해지게 된 두 사람은 1848년에는 바이마르에 정착하게 된다. 이때 리스트는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을 버리고 작곡에만 전념할 것을,카롤리네는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결혼은 교황의 허락이 필요했다. 갖은 노력을 다했음에도 그들은 끝내 결혼허락을 얻지 못했고 1862년 리스트의 큰딸 블랑딘이 사망하자 리스트는 종교에 귀의하게 된다. 카롤리네와의 동거는 12년 만에 끝을 맺게 되었지만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정신적인 동반자의 관계를 이어갔다. 20년이 더 지나 리스트가 세상을 뜬 지 8개월 만에 카롤리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ㆍ바람둥이에서 사제로
    프란츠 리스트
    첫사랑 카롤린과의 사랑이 실패로 끝났을 때에도 사제가 될 생각을 했었다. 리스트는 정식으로 수사가 되기 위해 종신서약을 받고 1865년 서품식을 갖는다. 리스트는 수사로서의 생활과 음악가로서의 생활을 병행한다. 하지만 이때도 그에게는 스캔들이 있었다. 1869년 리스트가 58세 때, 24세의 올가와 스승과 제자로 만난다. 이후 올가는 스승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니며 리스트에게 구애를 한다. 리스트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던 올가는 급기야 권총을 들고 찾아와서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리스트를 죽이거나 독약을 먹이겠다고 협박한다. 그러다 자신이 독약을 먹고 쓰러지지만 의사로부터는 독약이 아니라는 진단이 내려지고 올가는 리스트 앞에 다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ㆍ사랑했던 여인들로 인해 더럽혀진 명성
    음악가로서 리스트의 삶은 크게 네 시기, ▲예비시기 ▲연주시기 ▲바이마르 시기 ▲반-은퇴 시기로 구분된다. 흥미로운 것은 각 시기는 위에 언급한 리스트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여인들과 만났던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 이다. 그러나 올가는 리스트를 떠나고 2년 뒤‘어느 코사크인의 추억’과‘어느 피아니스트의 추억-코사크 인의 추억에 답함’을 출간한다. 또 그녀는 실비아 로렐리란 필명으로 ‘어느 코사크인의 연인들 x신부에 관한’과‘피아니스트와 코사크 여인의 로망’을 연달아 내놓음으로써 리스트는 또다시 대중의 가십거리에 오르내리게 된다. 10년이란 시간을 함께했던 마리다구도 마찬가지였다. 리스트와 결별 후 리스트를 돈후안에 비유하며 격분하던 그녀는‘네리다’라는 책에서 리스트 흠집 내기를 서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리스트에 관한 전기 작가들마저도 올가와 마리다구의 책의 내용을 인용하여 리스트 전기를 썼다 고 하니 음악가로서의 리스트의 명성만큼이나 항상 따라다니는 불명예스런 별명은 한 시기를 함께했던 여인 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사랑의 파탄이 그토록 심한 증오를 가져오게 했던 것이었을까?
    Piano Concerto No.1 in E flat major,S.124,piano: Lang Lang,BBC Symphony Orchestra,conductor: Edward Gardner.피아노 협주곡 1번은 1839년 작곡,
    1855년 리스트 자신의 피아노 솔로와 베를리오즈의 지휘로 바이마르 궁정에서 초연. 4개의 악장을 쉬지않고 하나로 연결하였고 3악장에서 트라이앵글의 울림이
    특징적이다.

    평생 숱한 스캔들을 뿌리고 다녔으나 생의 마지막 20년 동안 흑의를 걸치고 사제의 길을 걸었던 리스트는 과연 나쁜 남자였을까? 리스트는 어느 정도는 자신의 인기를 즐겼고 자신을 향한 수많은 시선을 외면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사랑을 맹세한 여인들에게는 진실했고 성실했다. 나쁜 남자에게도 진실한 사랑이 있다면 리스트 마음에 끝까지 남은 여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Premium Chosun         고은영 피아니스트 21c.muse.ke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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