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浮萍草音樂/음악가가 사랑한 여인

4 쇼팽이 사랑한 여인

浮萍草 2014. 6. 13. 06:00
    "파리의 모든 숙녀들은 쇼팽 침실에서 까무러쳐야 할 의무가 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 마리아 보진스카가 그린 쇼팽의 초상화.미술
    감각도 뛰어나지만,쇼팽에게서 풍기는 이미지
    는 그녀가 쇼팽을 바라보는 따스한 사랑이
    담겨있다.
    1810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쇼팽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화목한 가족의 품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다. 쇼팽은 7세 때 대중 앞에서 첫 연주회를 열었고 그때 이미 첫 작품을 출판했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했던 어린 쇼팽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쓴다. “사랑하는 아빠! 나는 내가 느끼는 것을 음표들로 표현하는 편이 훨씬 쉬울 것 같아요.” 쇼팽은 16세에 바르샤바 음악원에 입학해서 정식 작곡을 배우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성악과 여학생 콘스탄치아 그와트코프스카를 만나게 된다. “나에겐 이상의 여인이 있어. 하지만 지난 6개월 동안 그녀를 충실히 사모하면서도 내 감정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네. 나는 밤마다 그녀를 꿈에서 만나지.” 쇼팽은 1829년 가을,친구 티투스 보이체호프스키에게 편지로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1836년 9월 9일 쇼팽은 한 여인에게 청혼한다. 상대는 17세의 마리아 보진스카. 그녀의 세 오빠는 쇼팽의 집에서 하숙하며 쇼팽과 함께 자랐다. 쇼팽은 마리아와의 약혼을 결심하며 어렸을 적 자신이 자랐을 때의 그런 편안하고 화목한 가정을 꿈꾸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쇼팽의 건강문제에 대한 염려가 가장 큰 이유로 보여진다. 마리아는 자신이 직접 그린 쇼팽의 초상화를 가지고 쇼팽의 부모님께 헌정했고 두 사람은 점점 멀어져갔다. 이후 쇼팽은 마리아 보진스카와 그의 가족으로부터 받았던 편지를 모아 리본으로 묶고 이렇게 적어놓는다. ‘Moja bieda (나의 절망)’
    ㆍ32장 편지로 시작된 구애
    쇼팽은 1836년 가을, 마리 다구의 살롱에서 조르주 상드를 처음 만났다. 이 첫 만남에 대해 26세 쇼팽은‘뻔뻔스러운 남자처럼’이라고 친구 힐러에게 표현했고 32세 상드는“쇼팽씨는 정말 소녀 같지?”라고 그녀의 친구 마를리아니에게 속삭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살롱에서 자주 만나게 되고, 상드는 쇼팽에게 호감을 느낀다.
    ▲ Chopin,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Op.11 2nd mov. Yulianna Avdeeva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2010년 쇼팽콩쿨 우승).쇼팽이 폴란드를 떠나기 전인
    1830년 10월,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 열었던 고별 콘서트에서 초연된 작품.쇼팽의 첫사랑인 그와트코프스카에게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고 한다.이 사랑의 로망스
    는 “쇼팽은 피아노를 노래하게 한다”는 루빈슈타인 (Artur Rubinstein)의 말을 증명하는 듯하다.

    1838년 6월 상드는 쇼팽의 친구인 보이체흐 글치마라에게 4000단어로 된 32페이지짜리 편지로 자신의 사랑을 호소한다. 쇼팽의 가슴 속에 마리아 보진스카가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지를 혹은 그가 그녀로부터 사랑받고 있는지 또는 그가 나보다 그녀를 약간 더 사랑하는지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가 오직 그녀에 의해서만 행복하거나 또는 그렇게 될 것이라면 그렇게 되게 놔두십시오. 만약에 그가 불행해질 것이라면 막아야 합니다.” 쇼팽은 상드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1838년 11월 상드의 아들딸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이듬해 1839년부터 이들은 상드의 고향인 노앙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이 생활은 9년 동안 이어진다. 쇼팽의 마음을 확인하고 행복에 젖어든 상드는 쇼팽과 상드 두 사람 모두에게 친구인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행복한 사랑이 주는 감미로운 피곤함에 젖어 거의 기절할 지경입니다. 나는 아직도 도취상태입니다.”
    ▲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F.Chopin,1810-1847)과 상드(G.Sand,1804-1876).이 작품은 원래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쇼팽과 그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상드의 모습
    으로 하나의 그림이었다.그런데,누구의 장난인지 쇼팽과 상드를 가위질해서 두 개의 그림으로 만들어 버렸다.쇼팽은 피아노와 양손이 잘린 채 루브르 미술관에
    있고 상드는 코펜하겐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ㆍ9년의 인연? 악연?
    천재음악가와 여류 소설가의 사랑으로 유명한 쇼팽과 상드의 러브스토리에는 그러나 그다지 정열적이거나 애틋함이 없었다. 그들이 사랑을 확인하고 나서 바로 동거에 들어가서였을까? 아니면 쇼팽의 건강문제로 인해 상드가 모성애적 사랑을 발휘했기 때문일까? 그들이 헤어지고 난 후 상드는 “9년 동안이나 보살펴줬는데….”라고 불만을 표시했고 쇼팽은“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함께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결별 후 상드는 쇼팽의 고집스러움과 변덕스러움에 대해 지인들에게 비방 아닌 비아의 편지를 보냈고 쇼팽은 끝까지 상드를 존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르주 상드는 73세까지 100여권의 소설을 쓰며 쇼팽 사후에도 많은 예술가의 연인으로 정열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쇼팽은 39세의 짧은 생애에 9년을 상드와 함께한다. 쇼팽의 전기에서 다뤄지는 상드의 비중은 크지만 상드의 전기에서 쇼팽은 수많은 연인 중 한 예술가로 비칠 뿐이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사람이 예술가였다는 점에 비춰볼 때 그들이 함께한 시간이 분명히 서로에게 창작욕을 불러일으켰고 두 사람은 어떤 일이든 의논하고 의지 하는 좋은 동료였다는 것이다. 쇼팽은 상드와 함께한 시간을 ‘9년 동안의 정리된 생애’, 상드는 ‘9년 동안의 독점적인 우정’이라 표현했다.
    ▲ Chopin - Polonaise As-Dur op 53 "Heroique".연주: Rafal Blechacz (라파우 블레하츠,2005년 쇼팽콩쿨 우승).1840년 작곡된 ‘영웅’ 폴로네즈는 폴란드의
    화려한 시대를 상기시키는데,쇼팽은 평생 조국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ㆍ쇼팽은 바람둥이?
    쇼팽은 파리에 머무는 동안 조르주 상드 등과 함께 거의 매일 밤 살롱에 참석하고 그곳에서 연주했다. 동시대 작곡가였던 베를리오즈는 1849년 쇼팽에 관해 이런 기사를 남긴다. “자정 무렵 살롱의 유명인사들이 떠나고 당시의 사건들에 대한 폭넓은 토론들이 끝나고 모든 가십과 뒷담화가 소진되었을 때 어떤 아름답고 지성적인 눈들의 말 없는 요청에 의하여 비로소 그는 시인이 되었다. 어쩌면 그렇게 절묘하게 감정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자신의 영혼을 음악으로 쏟아붓는 저 놀라운 열정의 불꽃들과 음울한 몽상들!” 분명히 쇼팽의 예술적인 연주에 대한 찬사였으나 ‘어떤 아름답고 지성적인 눈들의 말 없는 요청에 의하여….’란 말이 흥미롭다. 조르주 상드에 의하면 쇼팽은 하루 저녁에 여성들에게 세 차례나 빠져들기도 했다고 한다. 1990년 ‘쇼팽’을 출간한 아담 자모이스키는 쇼팽의 바람둥이 기질을 독특한 시각으로 설명했다. ‘그는 동석한 여성들을 흠모했는데 그러나 이들이 잘 교육받고 옷맵시가 단정해야 했다. 그리고 도달할 수 없는 대상이어야 했는데 따라서 희롱의 행동들은 그냥 단순한 재미 생기에 넘치는 레슨, 사교적 만남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또 쇼팽과 상드와 절친한 사이였던 성악가 폴린 비아르도는 쇼팽이 죽음을 앞두고 누워 있을 때 많은 방문객이 쇼팽에게 작별을 고하길 바라던 상황을 이렇게 회상 했다. “파리의 모든 이름난 숙녀들은 이곳으로 와서 그의 침실에서 까무러쳐야 할 의무가 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조르주 상드는 이렇게 회상했다. “쇼팽이 사랑했던 것은 그의 어머니뿐이었다.” 그의 어머니란 쇼팽의 조국 폴란드를 말한 것이었으리라. 쇼팽은 삶의 반을 바르샤바에서 그리고 나머지 반을 거의 파리에서 보냈다. 쇼팽이 고향을 떠날 때 친구들은 폴란드의 흙 한 줌을 보내주었으며 쇼팽이 죽었을 때 그의 유해는 파리에 남겨졌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그의 누이에 의해 바르샤바의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되었다. 어쩌면 그가 죽는 순간까지 끝없이 사랑했던 것은 첫사랑도 마리아 보진스카도 조르주 상드도 아닌 바로 그의 조국 폴란드였을지 모른다.
    Premium Chosun         고은영 피아니스트 21c.muse.ke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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