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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실크로드 불교문화의 꽃, 돈황을 가다

浮萍草 2014. 6. 26. 20:29
    "좋은 것은 동쪽으로, 나쁜 것은 무조건 서쪽으로"
    국‘서부대개발’경제발전전략 뒤에는‘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라는 중화제국주의적 발톱이 숨어 있다
    ‘덩샤오핑의 先富論’, 중국 서부대개발의 정치사회적 전략
    안서 사내를 벗어나니 곧바로 잿빛 황량한 벌판이다. 
    사막 길에는 언제나 먼지가 심하다. 
    바람이 드나듦에 장애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사막에 바람의 장애물이 생겼다. 
    송전선과 가스관, 고속철도가 그것이다. 
    끝없는 사막의 벌판을 가로질러 송전선이 늘어서 있다. 
    가스관과 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굴착공사도 한창이다. 
    중국의 서부대개발 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30여년간 개혁 개방 정책으로 고도성장을 이룩하였다. 
    그 결과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도 생겼다. 
    지역격차, 도농격차, 빈부격차가 말해주듯이 불균형 성장이 계속됐다. 
    중국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2000년부터 본격적인 서부대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서부지역의 자원을 개발하여 서부 및 중동부의 경제발전을 촉진하고 서부지역의 소득격차를 줄여 주민들의 불만 해소 및 정치사회적으로 안정을 꾀한다
    는 전략이다.
    중국의 경제개발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선부론(先富論)에서 시작된다. 
    선부론은 여건이 좋은 곳을 먼저 발전시켜 부유하게 한 후 이 지역을 기반으로 낙후된 지역을 발전시킨다는 정책이다. 
    이에 의하여 중국의 경제개발은 동부 연해지역부터 발전시킨다. 
    그런 후에, 점진적으로 동부에서 중부,중부에서 서부지역으로 개발범위를 확대하는 전략이다. 
    서부대개발은 이러한 경제발전전략에 따른 것이다.
    ㆍ“좋은 것은 동쪽으로, 나쁜 것은 서쪽으로”
    서부대개발은 크게 5가지 사업에 집중된다. 전기,천연가스,석유,물,교통이 그것이다. 이른바 국가적인 동맥을 건설하는 기간산업이다. 이중 3가지(전기,천연가스,석유)는 서부지역에서 동부지역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고속철도로 대별되는 교통은‘팔종팔횡(八從八橫)’이란 말처럼 전국적으로 교통 그물망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 서부대개발 사업의 하나인 송전선 건설

    오직 수자원만 장강 지역에서 서부지역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서부대개발 사업은 자원의 이동과 교통의 확장에 불과하다. 즉 이 사업으로 서부지역민들이 직접적인 수혜를 받기에는 아직은 먼일인 것이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의 불만은 식을 줄 모른다. “좋은 것은 동쪽으로 다 가져가고, 나쁜 것은 서쪽으로 다 보낸다.” 나쁜 것은 무엇일까. 환경오염,공해,간섭 등이다. 서부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도로와 철도를 개설하고 그 길을 통하여 자원만 가져가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마치 눈뜨고 도둑맞는 심정으로 이들이 이러한 생각을 갖는 것은 왜일까. 단지 경제적 격차 때문에 갖는 생각일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서부대개발의 집중지역은 신강(新疆)과 서장(西藏)이다. 이 두 지역은 각각 위구르민족과 티베트민족의 자치구이기도 하다. 이곳은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한 지역이다. 지금도 수시로 독립을 위한 투쟁이 벌어져 중국정부가 골치를 앓는 곳이기도 하다. 서부대개발 사업은 이처럼 정치적 독립을 원하는 두 민족과, 이를 용납하지 않고 ‘중국’이라는 하나의 국가와 체제 내로 통합하려는 치열한 움직임이 숨어 있다. 그래서 한쪽은 허울뿐인 약탈을 미워하고, 한쪽은 체제의 안정을 위하여 개발에 심혈을 쏟는 것이다.
    ㆍ중국 서부대개발은 중화제국으로의 비전과 연결
    중국의 서부대개발은 선부론에 의거한 낙후지역의 경제개발이라고 하지만 사업의 실질적인 뿌리는‘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서 비롯된다. 이는 곧 현대 중국의 정체성과도 연결되는 중차대한 것이다. 즉,‘너희 가운데 우리가 있고 우리 가운데 너희가 있다(你中有我, 我中有你)’며 한족과 소수민족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단결체임을 강조한다.
    ▲ 돈황시 상징인 비천상
    이는 국가,영토,민족,역사 등이 맞물려서 종국적으로‘중화민족 대가족’이라는 중화제국의 건설에 닿아 있는 것 이다. 특히,소수민족의 한족화(漢族化)를 통한 민족적,문화적 통합은 21세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최우선적 해결과제인 것이다. 서부대개발은 대외적으로 동서지역 간의 빈부격차와 지역 간의 균형성장을 위한 경제개발사업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러한 과제 수행의 절실함 때문에 중국정부가 시급하고도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으며 맹진 (猛進)하고 있는 것이다. 서부대개발은 중국의 향후 국가적 비전과도 연결되어 있다. 중앙아시아와 유럽 및 인도지역으로 진출함에 있어서도 중요한 교두보가 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는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화제국의 번영을 이끄는 지역이 될 것 이기에 중국정부는 철저한 계획에 따라 절대적인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ㆍ실크로드 꽃 ‘돈황’
    돈황(敦煌)이 지척임에도 사막 길은 끝날 줄 모른다. 기련산맥이 힘을 잃을 즈음, 삼위산(三危山)이 다시 왼쪽에서 나를 굽어본다. 삼위산은 말이 산이지 산맥이나 다름없다. 시커멓고 우락부락한 산봉우리가 서로 힘자랑을 하기라도 하듯 불쑥불쑥 연이어 솟아 있는데 모습이 장대하다. 잿빛뿐인 사막과 시커먼 삼위산의 평행. 그 거대한 자연 사이로 미약한 삶의 인간이 종종걸음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특고압선 송전선이 함께 줄달음질 친다. 사막과 삼위산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하여 가르쳐 주지 않는다. 다만 함께 있으며 지켜볼 뿐이다. 바람이 대신 알려줄 뿐이다. 때로는 시원하게 때로는 따끔하게 때로는 땀 뻘뻘 흘리게 때로는 눈도 못 뜨게. 하지만 인간은 전령사인 바람의 언어를 듣지 못한다. 자연이 알려주는 지구의 메시지를 어린아이들의 우스개 놀이로 치부한다. 전 지구적 문명 건설만이 듣고 싶은 정답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매 그 어떤 바람도 밀쳐내며 더 거세게 자연을 몰아붙인다. 저만치 장엄한 삼위산이 끝나는 곳에 은색의 모래산이 마주 보고 있다. 명사산(鳴沙山)이다. 이제 실크로드의 꽃이자 사막 속의 오아시스, 돈황에 이른 것이다. 시내에 들어서니 한여름의 열기가 도시 전체를 감싸 돈다. 하지만 실크로드의 요충지답게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지도를 보며 서로의 목적지를 찾는다.
    ▲ 명사산 풍경

    돈황은 한 무제가 흉노를 몰아내고 무위, 장액 추천과 함께 하서4군(河西四郡)을 설치하며 붙여진 이름이다. ‘한서’‘지리지’에 보면,‘돈(敦)은 대(大)요,황(煌)은 성(盛)’이라 하였으니,곧‘크게 번성한다’는 뜻이다. 무제는 하서4군을 서역 정벌의 전진기지로 삼기 위하여 많은 한족을 이주시켰다. 그때부터 돈황은 이민족의 침략에 맞서고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시키는 거점도시가 된다. 또한 서역에서 사막을 통하여 중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길은 돈황에서 만난다. 돈황은 중국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이처럼 돈황은 그 이름답게 동서교통의 중요한 요충지로서 시대마다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하서4군 중 가장 빠르게 발전하였다. 한나라 때 개척된 돈황은 당나라 때 전성기를 맞는다. 중앙아시아 및 서역 각국과의 교류가 더욱 확대되고 각종 종교와 풍속들도 함께 들어온다. 바야흐로 돈황은 동서문화의 교류지로서 백화난만(百花爛漫)한 사상을 꽃피운다. 특히 불교문화의 응집과 번성은 돈황을 실크로드의 꽃으로 부르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ㆍ風沙海 속의 ‘월아천’은 오아시스의 대명사
    시내의 남쪽으로 들어서자 도로 한가운데 불쑥 솟은 명사산이 나타난다. 입구에 들어서니 황금빛 모래산이 웅장하게 펼쳐지고 사구(沙丘)마다 낙타행렬이 거창하다. 하지만 이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명사산을 둘러보는 관광 상품이다. 명사산에 오른다. 동서 40㎞ 남북 20㎞의 거대한 모래산이 따가운 모래를 흩뿌린다. 정상에 선다. 그야말로 풍사해(風沙海) 바람과 모래가 만든 바다가 하늘까지 이어진 듯 아득하다. 수천 년 동안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사막을 넘어온 사람들 그들을 이곳까지 오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경제적 이득 종교적 열정과 구원 미지에의 동경과 사랑 아니면 영토 확장을 통한 제국건설이었을까.
    ▲ 사막속의 오아시스 월아천.

    명사산이 끝나는 곳에 반달 모양의 월아천(月牙泉)이 보인다. 월아천은 천연의 샘물이 만든 오아시스다. 이곳은 천 년이 지나도 샘물이 마르지 않고 거대한 명사산의 모래에도 매몰되지 않은 채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신기루를 물리치고 사막을 건너온 이들이 월아천을 보는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살았구나’를 넘어 종교적인 희열을 느꼈으리라. 눈물의 성수(聖水)를 마시며 감사함에 향불을 피웠으리라. 그리고 깨달았으리라. 살아있음을 감사하고 살아있음에 보답하며 살아있음으로 이를 전하는 삶의 고귀함을 그 어떤 굳건한 신념과 정신을 가진 자도 욕심을 내려놓고 만족할 줄 알고 쉬어 가는 법도 배웠으리라. 청나라 때의 소이길(蘇履吉)도 돈황팔경의 하나인 ‘월아천의 새벽 물빛(月泉曉澈)’에 매료되어 시 한 수를 남겼다. 물 맑고 신령스런 명승지 월아천은 勝地靈泉澈曉淸 그 옛날엔 악와지로 불리었다네. 渥洼龍是昔知名. 상현달 같이 휜 물굽이에 一灣如月弦初上 반원형 맑은 물결이 거울처럼 밝구나. 半壁澄波鏡比明. 바람에 나는 모래는 샘물에 이르지 않고 風卷飛沙終不到 샘물도 모래를 넘지 않아 서로를 위하네. 潚含止水正相生. 모래와 물이 정자에서 만나 즐겁게 노니나니 竭來亭畔頻遊玩 향기로운 차 한 잔에 스스로 취하여 무르익노라. 吸得茶香自取烹.
    ㆍ불교문화의 정수 막고굴에서 혜초를 만나다
    돈황 불교문화의 핵심인 막고굴(莫高窟)로 향한다. 막고굴은 40㎞ 길이의 명사산이 끝나는 동쪽 계곡에 있다. 막고굴은 서기 366년 낙준(樂僔)이란 수행승(修行僧)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삼위산을 가는 도중에 이곳에서 삼위산에 비친 석양을 보게 되었는데 산봉우리가 휘황찬란한 금빛으로 빛나고 수많은 부처님의 광명과 함께 하늘을 날며 춤 추는 향음신(香音神)의 형상을 보았다고 한다. 이에 낙준은 이곳에 석굴을 파고 수행을 하였다. 당시 불교는 굴을 파고 정좌로 참선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속세에서 떨어진 조용한 곳이 필요한데 명사산 절벽 아래 물이 흐르는 오아시스가 제격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막고굴은 승려와 화가 석공과 도공 등에 의하여 하나씩 정성스레 석굴이 생겨나기 시작하여 원나라 때인 13세기까지 천여 년이 지나는 동안 수많은 석굴이 개착되었다.
    ▲ 돈황 막고굴

    당나라 무측천(武則天) 시기에 이미 천 개가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인간과 자연에 의하여 파괴된 석굴도 많아 지금은 492개의 석굴만 남아 있다. 막고굴의 석굴이 많이 파괴되었음에도 1987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에 지정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불교예술지다. 막고굴은 당나라 때 번성하였다. 이는 실크로드의 전성기를 맞이하여 최고의 경제력을 축척한 결과이기도 하다. 전성기를 구가한 당 제국시기의 막고굴은 어떠하였을까. 눈 덮인 삼위산은 하늘 높이 솟고 雪嶺干靑漢 명사산 절벽에는 공중누각이 걸렸네. 雲樓架碧空 수많은 석굴이 겹겹이 늘어서고 重開千佛刹 사천왕상도 사방 곳곳에 나와 있네. 旁出四天宮 상서로운 난조(鸞鳥)가 구슬을 문 듯하고 瑞鳥含珠影 신령한 꽃들이 향내음을 풍기는 곳. 靈花吐蕙藂 번뇌를 씻으면 유유자적의 경지에 이르나니 洗心游勝境 이참에 오염된 속세로부터 벗어나고 싶구나.從此去塵蒙
    막고굴에 도착하니 입구부터 전 세계서 모여든 관람객들로 붐빈다. 진정 실크로드 불교문화의 중심지인 것이 실감난다. 회랑처럼 늘어선 석굴들이 각자의 방 번호를 달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석굴마다 문을 만들어 불상과 벽화의 훼손을 방지하고 있다. 자물쇠가 굳게 잠겨있는 문들을 바라보자니 마치 석굴마다 스님들이 무더운 날씨를 이겨내며 하안거에 들어간 듯하다. 안내인을 따라 석굴로 향한다. 이곳은 방문객의 국적에 따라 개방하는 석굴이 틀리다. 천 년 동안 만들어진 벽화와 불상들이 약탈의 상처를 딛고 찬란한 빛을 발한다. 그중에는 한반도에서 온 우리 선조의 벽화도 보인다. 서역악기인 비파, 서역의 춤인 호선무 사이로 우리 민족의 대표악기인 장고의 초기모습도 보인다.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17호 굴에서는 한동안 발길을 떼지 못한다. 석굴에는 왕과 귀족은 물론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염원을 위하여 돈독한 신심을 표현한 불상들이 앉았거나 누웠거나 서 있다. 석굴의 사방은 지상과 천상의 세계가 화려하게 피어 있다. 어느 것 하나 혼신을 다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들은 불상과 벽화를 만들고 흡족했으리라. 평안과 극락이 예있으리라 여겼으리라.
    ▲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돈황 장경동 17호굴

    ㆍ제국주의자들의 약탈, ‘돈황학’으로 발전
    그러나 오늘의 막고 굴은 황폐하다. 그 옛날 번성했던 실크로드의 요충지에는 제국주의의 문화재 약탈과 파괴의 흔적이 거세게 남아 있다. 그들은 흡족해하였다. 자국의 텅 빈 창고에 타국의 보물들을 빼앗아 채워놓음으로써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고 문화대국임을 자랑하였다. 그렇다고 정녕 문화대국이런가. 부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부서지고 빼앗기고 산산이 흩어지는 것이 곧 새로운 극락을 건설하는 것임을.비우고 내려놓고 다 주어버림으로써 보다 넓고 새롭게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을.그리하여 전 세계가 ‘돈황학’으로 돈황을 알고 돈황에 모여 ‘돈황학’을 더욱 승화시키리라는 것을 부처는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감동의 막고굴을 돌아 나오는데 더 많은 세계인이 입구에 길게 늘어선 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순수한 영혼들이 만들어낸 찬란한 극락 막고굴은 비움으로서 이처럼 다시 차고 있는 것이다. 어찌 제국의 창고가 이에 견줄 수 있겠는가. 고요한 모습의 불상이 되돌아보는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그 사이 불현듯 다가오는 부처의 미소가 시대를 넘어 너무도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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