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쥑'이는 여의사의 행복처방

24 최후의 건강식단 ②

浮萍草 2014. 6. 20. 06:00
    사람들은 마지막에 어떻게 살아갈까?
    
    2012년 여름 나는 대구 중심가의 한 아름다운 집에 있었다. 
    그 집 부엌은 꽤나 넓어서 말기 폐암으로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해 있는 금숙씨와 그녀의 언니 금자씨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폐암으로 호흡곤란 증세가 있는 금숙씨가 입원한지 한 달 만에 하는 바깥나들이였다. 
    그래서 밥만 달랑 먹으면 허전할 것 같아 오카리나 연주자와 동요가수를 초대했다. 
    호스피스병동에서 남편을 떠나보낸 비슷한 연배인 미숙씨한테도 연락을 하니 딸과 함께 와서 식탁 차리는데 도와준다고 했다.
    호스피스 봉사자인 황 선생이 이동식 산소 2통과 휠체어를 차에 싣고 금숙씨를 모셔왔다. 
    모두들 암이 지긋지긋 할 것 같아서 항암성분이 있다고 하는 식품으로 음식을 준비했다.
    나는 의사가운을,금숙씨는 환자복을,미숙씨는 상복을 그리고 황선 생은 분홍색 봉사자가운을 벗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소독 냄새나는 하얀 병원이 아닌 구수한 음식냄새가 나는 따뜻한 부엌에 모여 함께 밥을 먹었다.

    모임 전날, 금숙씨에게 환자복 대신 평상복을 입고 가자고 했다. 그런데 평상복이 한 벌도 없었다. 보통 환자들은 입원하는 날 입고 온 옷을 입원실 옷장에 보관한다. 언니인 금자씨가 “입원하기 전에 벌써 싹 정리했더라구요. 입원하는 날 입고 온 옷도 나를 주면서 버리라고 했어요. 하여튼 희한한 애예요. 암 진단 받던 날도 같이 따라간 조카 신발을 사주고 오더라니까요”라면서 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날에는 언니 옷 한 벌을 빌려 입고 언니와의 ‘마지막 식사’를 하러 나온 것이 분명했다. 음식 차리는 것을 도와주러온 솜씨 좋은 미숙씨는 모임이 있기 2주일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호스피스병동에 있는 동안 미숙씨는 아픈 남편이 잠들면 어두운 병실 불빛 아래서 뜨개질을 했다. 칼칼한 구정뜨개실로 큼지막한 쿠션을 떠서 주위사람에게 여름 선물을 했다. 나도 한 개 받았다. 죽어가는 남편 옆에서 다소곳이 앉아 뜨개질을 하는 작은 움직임이 목 놓아 울부짖는 어떤 보호자보다 슬퍼보였다. 미숙씨는 암에 걸린 남편을 살리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었다. 그러나 떠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 한 사람은 상실의 슬픔에서 회복하는 속도가 빨랐다. 나는 미숙씨를 많이 걱정하지는 않았다. 황 선생은 능숙한 발마사지사이다. 그가 다녀간 날은 환자들이 통증 없이 깊은 잠에 빠진다. 5년 전, 황 선생의 형이 내 환자였다. 젊은 나이였지만 온 몸에 누런 황달이 와서 떠나갔다. 덩치 큰 황 선생이 형님 베개를 들고 꺼이꺼이 울면서 임종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보호자로 있다가 호스피스 봉사자로 변하면 그 봉사의 색깔이 남다르다. 말하지 않는 환자의 불편함도 읽어낸다. 나는 지난 7년동안 차디찬 죽음과 함께 호스피스 의사로 살아왔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마지막 주치의도 됐다. 죽음이 다가오면 통증이나 피로 같은 여러 가지 증상이 많아진다. 환자들은 적당한 의료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들은 증상이 조절되면 살아온 모습 그대로 마지막까지 지냈다. 그래서 이제 와서 나는 삶보다 죽음을 먼저 배우지 말라고 말을 바꾼다. 금숙씨처럼 인자하게 잘 살면 죽음이란 그리 어려운 길이 아니었다. 모임이 있고 한 달 뒤, 그녀는 평화롭게 떠났다.
    Premium Chosun ☜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dodo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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