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쥑'이는 여의사의 행복처방

20 "엄마 어디에 암이 생겼는지 가르쳐줘 감사해요"

浮萍草 2014. 6. 16. 06:00
    암환자 엄마에게 매일 인사하고 등교하는 두자매
    ▲ 병원에서 등교하는 지은이와 효은이.
    38살의 엄마보다 86세의 엄마를 떠나보내는 것이 더 팍팍했다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 나이가 지긋 하면 죽음이 쉬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거대한 상실의 과정은 누구나 처음 겪는 일이라 서툴고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쉬워 보인다’는 것은 죽어감 속에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고 일상의 일들을 천연덕스럽게 해나가기 때문이다. ‘쉽다’는 말이 결코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지효(지은·효은) 엄마가 죽어가고 있다. 지은이는 초등학교 5학년 봄방학을 동생과 함께 엄마가 입원한 호스피스병동에서 지냈다. 그들은 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되어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얌전하게 인사하고 병원에서 등교를 했다. 젊은 엄마의 죽음이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없는 일도 아니다. 4년 전, 지효 엄마의 얼굴에 암이 생겼다. 살아나기 위해서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것 같아서 독하게 마음먹고 이별 준비도 했다. 종교를 가졌고, 아이들과 여행을 했다. 머지않아서 얼굴이 일그러질 것 같아 수술 후에 리마인드 웨딩촬영도 했다. 수술한 자국이 표시나지 않게 신부화장을 짙게 해야만 했다. 남편한테는 검은색 턱시도를 입히고 두 딸에게는 하얀 드레스를 입혀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지효 엄마는 지은이가 초경(初經)이 나올 때 옆에 없을 것이 분명했다. 겁내지 말라는 짧은 편지와 생리대 생리양이 많은 날에 깔고 자면 좋은 짙은 색의 담요 한 장을 넣어 꾸러미를 만들었다. 예상대로 지효 엄마는 얼굴이 망가져 갔다. 오른쪽 눈이 불룩하게 툭 튀어 나오고 광대뼈와 아래턱에는 잔뜩 부풀어 오른 붉은 암 덩어리로 울퉁불퉁해졌다. 피부가 하늘하늘해져서 얼굴에 살짝이라도 부딪히면 진물이 줄줄 흐를 것만 같았다.
    지효 엄마는 두건과 마스크를 쓰고 아이들 밥을 차렸다. 숟가락도 들 수 없을 것 같은 가녀린 손가락으로 먹다 남은 반찬을 주섬주섬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만약, 우리가 단 하루만 세상에 머물 수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나도 그녀처럼 사랑하는 아이의 밥을 차릴 것 같았다.
    ▲ 지효 엄마와의 카카오톡 대화

    지은이가 호스피스 병동에 머무는 동안 죽음교육을 급하게 해야 했다. 회진을 갈 때 마다 지은이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의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지은이에게 엄마가 어떤 곳에 암이 생겼고 암은 어떤 병인지에 대해서 소상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집에서 죽은 금붕어 이야기를 했다. 죽어서 어항을 둥둥 떠다니는 금붕어를 효은이가 건져서 휴지에 곱게 싸 주었단다. 지효 아빠가 언제까지 아이들을 엄마 옆을 두어야 하는지 차분히 물어 왔다. 나는 아이들을 믿었다. 지은이와 동생은 엄마가 떠나는 그 순간까지 함께 하기로 했다.
    ▲ 지은이가 필자에게 쓴 편지.

    석례 할머니도 죽어가고 있었다. 8년 된 유방암이 소뇌로 전이되어 걸을 수가 없었다. 열이 펄펄 나는 폐렴으로 입원을 했다. 석례 할머니는 휠체어에 우두커니 앉아서“이제 그만 빨리 갔으면 좋겠다”라고만 되뇌었다. 55세 된 석례 할머니의 딸은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세련된 옷차림으로 병문안을 왔다. 엄마의 병이 이제는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석례 할머니의 상태에 따라 감정의 기복이 심했다. 환자에게 필요한 약을 처방하면 쓰라고도 했다가 쓰지 말라고도 했고 석례 할머니가 식사를 못하시는 날이면 괜한 간병사만 닦달했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는 것처럼 ‘이별 뒤의 평온함’은 자연의 순리대로 저절로 오지는 않았다. 이별이란 남는 사람이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떠나는 사람이 완벽하게 준비해 주어야지만, 남는 사람이 인생의 이별 여행을 순탄하게 함께 할 수 있었다.
    Premium Chosun ☜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dodo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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