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쥑'이는 여의사의 행복처방

19 욕설로 거칠게 키운 아들, 폐암 말기 엄마에게...

浮萍草 2014. 6. 15. 06:00
    평생 쌓인 분노는 죽음 앞에서 폭발한다
    평상시 배려란 남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기술
    희 할머니가 희멀거니 잘 생긴 아들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아들이 소희 할머니한테 찬물을 막 퍼부으면서 죽어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상황이 이쯤 되자 병원의 누군가가 알려줬다. 막돼 먹은 행동을 하니까 지나가던 행인이 112에 신고를 해서 경찰도 왔다. 소희 할머니는 처벌을 원하지 않았고, 아들도 사과를 해서 경찰의 훈방조치로 일단락이 됐다. 폐암이 머리까지 전이된 소희 할머니는 이 사건으로 풀이 많이 죽었다. 잠잠해져 있던 통증도 다시 생겼다. 덕분에 나는 소희 할머니한테도 가봐야 했고, 대낮에 소주 1병을 마시고 온 아들도 토닥거려야 했다. 소희 할머니는 젊은 시절에 유부남과 바람이 나서 아들 하나를 두었다. 식당일 하면서 억척같이 돈을 벌었으나 없는 살림에 병든 남편 수발까지 하느라 겨우 장만한 집까지 홀라당 날렸다. 소희 할머니는 하나 뿐인 아들한테 ‘내 신세 망친 놈’이라고 모진 말을 해대면서 거칠게 키웠다. 서른 살을 갓 넘긴 아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엄마한테서 칭찬을 받은 적이 없었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남편 제삿날에 아들을 본처 집으로 보냈다. 아들은 이복 형제한테서“우리는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난다”면서 된통 당하고 돌아왔다. 그 후 아들은 소희 할머니를 대구에 두고 서울로 가버렸다. 소희 할머니는 대구에서 막창 집을 하면서 근근이 살았다. 두 달 전에 기침이 심해서 병원에 가보니 말기 폐암이었다. 다행히 아들이 소희 할머니의 마지막을 돌보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왔고 엎치락뒤치락 간병을 하던 중에 이 일이 터졌다. 종기가 곪으면 터져야 낫는 것처럼 사람 사이에도 푹 곪은 갈등이 있으면 어느 순간 터져 버린다. 그것도 제일 힘이 들 때에 사단이 난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인생이 바닥을 칠 때 숨겨둔 마음의 응어리는 한번쯤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참을 수밖에 없었던 ‘삶’의 상처가‘죽음’이라는 한계 상황 앞에서 숨김없이 터져 버리는 것을 많이 봤다. “죽음 앞에서는 용서가 되겠지”“지금은 이래도 마지막에는 다 내려놓지 않겠어”라는 말은 죽음에 대한 오롯한 환상일 뿐이었다. 평생 쌓인 분노는 마지막에 폭발한다. 위암에 걸린 할아버지가 구수한 ‘집의 죽’을 먹고 싶다고 해서 할머니한테 죽 끊여 오라고 했다가 큰일 날 뻔했다. 의사가 ‘병원 죽’을 처방해야지 왜 자기한테 힘들게 죽을 끊여오게 하느냐 라는 것이다. 병든 엄마가 남긴 3000만원을 자기가 가져 가야한다며 나이든 오빠에게 대들고 있는 고집스러운 여동생도 있었고 화장을 할 것인가 매장을 할 것인가 때문에 죽어 가는 아버지와 티격태격 하는 딸도 있었다. 우리들 대다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법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살기 때문에 악에 대한 예방접종을 받았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평소에 다듬어 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힘든 상황이 올 때 크고 작은 사소한 불편함이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다. 죽음에 이르는 상황을 편안히 받아 들이는 죽을 복이 있는 사람은 남의 어려움이 보이는 사람이다.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모습은 인생의 가장 힘든 구간을 통과 할 때조차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서 배려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좋은 음식을 먹고 하루에 30분씩 운동을 하고 정서적인 평화를 위해 여행을 가는 일 못지않게 남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은 중요했다. 타인을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여유가 바로 나를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느냐이다. 그래서 배려란 남이 아닌 나를 살리는 기술이다.
    Premium Chosun ☜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dodo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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