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쥑'이는 여의사의 행복처방

16 죽어가는 남편을 간병사에 맡기고 아내는 설악산 단풍놀이 가고…

浮萍草 2014. 6. 12. 06:00
    우리들의 은밀하고도 무지한 스승
    ▲ 人生 디자이너/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한 푼 없는 50대 청각장애인이 입원을 했다. 그가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면 나는 메모지에 글을 써서 답을 해야 했다. 전에도 청각장애인을 돌본 적이 있어 장애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전직 의사라는 점은 까다로웠다. 의사가 의사를 진료하려면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더군다나 그는 20년 전에 의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알고 있는 의학 상식이 좀 구식이었다. 나는 처방한 약물과 몸 상태를 의과대학생에게 강의하듯이 상세히 알려주었다. 그가 모르는 약은 약국에서 약품 설명서를 일일이 구해도 줬다. 그가 앓고 있는 대장암의 통증에는 모르핀을 꼭 써야하는데 옛날 의사답게 마약성 진통제 쓰는 것을 매우 꺼렸다. 하기야 20년 전의 의사들은 암환자가 지금보다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핀에 대해 배운 것이 별로 없었다. 나는 최근에 나온 완화의료 교과서에서 마약성 진통제에 관한 페이지를 복사하는 등 다른 환자보다 회진을 준비하는 시간이 두 배로 길었다. 의학적인 설득이 먹혔는지 아니면 나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모르핀을 처방해달라고 했다. 통증이 없어지자 평소 좋아했던 얼큰한 컵라면 국물을 훌훌 마셨다. 그는 20년 전 원인불명의 병으로 귀가 들리지 않기 전까지는 잘 나가던 외과 의사였다. 청각장애인으로 의사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가족도 인생도 모두 잃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기 6개월 전에 대변에서 피가 나왔다. 대장암이었다. 장루(인공항문)를 복부에 만들어 대변을 배출하는 시술을 해야 한다기에 포기했다. 팔십 노모(老母)가 천덕꾸러기로 변한 아들이 깡마르고 통증이 심해지자 호스피스로 데려 왔다. 그는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아야 했던 지난 세월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생명의 건전지가 다 할 때 까지 용하게 잘 버티고 있었다. 검버섯이 잔뜩 오른 누런 얼굴의 그에게서 오히려 죽음은 쉬워 보였다. 인생은 쓰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저절로 쓰이는 소설책이다.
    때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 그러다보면 사랑하는 가족한테서 조차 한없이 멀어진다. 난소암에 걸린 홀시어머니가 외동며느리를 타박했다. 닭죽이 먹고 싶다고 해서 사오면 사온 음식이라 성의 없다하셨고 어린 손자 때문에 자주 올 필요 없다고 해놓고서는 하루라도 거르면 병동이 떠나 갈듯이 목 놓아 우셨다. 참다못한 며느리가 하소연을 했다. “선생님은 죽어가는 영혼이 속삭이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지만 어머님은 마지막이 되시니까 저한테 역정만 내세요.” 마지막이니까 무조건 참고 견디라는‘무식한’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달리 그 말을 대신할 뾰족한 답도 없었다. “살면서 생긴 응어리를 여기서라도 풀면 좋지만 못 풀고 가는 것도 인생이더라구요. 오늘 난 신문기사 중에 아름답지 못한 것이 더 많은 것처럼 우리의 마지막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남편을 간병사에게 맡겨두고 설악산 단풍놀이 가는 아내도 있고 시아버지를 간병하면서 따뜻한 말 한번 하지 않고 팔짱만 끼고 있던 며느리도 있어요. 지금이 기회예요. 어머님한테 잘하시면 남편이 평생을 부인에게 고마워 할 거예요.” 다음날, 젊은 며느리는 손수 끊인 버섯 죽을 따뜻하게 가져 오느라 교통 딱지까지 떼였다고 겸연쩍게 웃었다. 나는 호스피스의사로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의 마지막 인생에 푹 빠져 들었다. 통증이란 감정이라서 환자의 인생을 알지 못하고는 이해 할 수도 조절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뜻하지 않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여행 다니면서 프랑스 교육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가 쓴 <무지한 스승>을 떠올렸다. 책에는 19세기 프랑스인 조세프 자코토 이야기가 나온다. 자코토는 벨기에로 망명한 뒤 먹고 살기 위해서 네덜란드어를 가르쳐야했다. 자코토는 네덜란드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학생들은 프랑스어를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자코토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함께 쓰인 책을 펴놓고 프랑스어로만 수업을 했다. 얼핏 보면 진짜 무식한 교수법이지만 시간이 흐르자 학생들은 작가를 뺨칠 정도로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란한 솔로를 들려주는 악기 연주자에게 악기를 배워야만 훌륭한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역경을 버젓이 극복한 덕성스러운 인격자만이 우리의 인생을 깊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무지한 인생’의 스승이다.
    Premium Chosun ☜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dodo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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