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쥑'이는 여의사의 행복처방

15 말기암 할머니 죽기 전에 '진짜 아들' 두명이 나타나...

浮萍草 2014. 6. 11. 06:00
    사랑이란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것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대는 가졌는가
    ···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 함석헌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 중에서
    아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마지막이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헛된 만남보다는 단 한사람의 진심과 만나야 죽음이 쓸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떠날 때 손을 잡아 줄 사람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중에서
    금자 할머니는 음치였다. 오전 11시만 되면 이어폰을 끼고 엠피쓰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음정과 박자가 엉망이었다. 하지만 도통 주눅이 들지 않았다. 목소리가 하도 쩌렁쩌렁해서 노래만 들어서는 3주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신 말기 위암 환자인 줄은 아무도 모를 게다.“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모~옷 하고~”라고 부르는 이미자씨의 ‘여자의 일생’은 처량하기 조차 했다. 어찌됐던 환자들은 매일 들려오는 이 어색한 노래를 불평불만 없이 잘 참아냈다. 박금자 할머니는 노랫소리만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입원하고 한 달쯤 지나서 생판 모르는 청년 둘이 아들이라면서 떡하니 나타났다. 금자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는 입원 상담부터 가족 상담까지 매번 참석해서 내가 모를 리 없었다. “저, 선생님, 어머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요?” “박금자님과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아드님한테는 벌써 몇 번이나 말한 걸로 알고 있는데.” “아뇨. 저희는 전혀 못 들었어요. 저희가 박금자님의 진짜 아들입니다.” 진짜 아들? 그동안 나하고 만나서 구구절절 장례절차까지 상담했던 아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러고 보면 금자 할머니는 입원 기간 내내 심하게 아들 눈치를 봤다. 아들하고 따로 면담이라도 하는 날이면“우리 아들이 뭐라고 하던 대요?”라고 꼭 물었다. 아들도 그랬다. 부모님 중 한분이 말기 암에 걸리면 보통 아픈 쪽이 우선이다. 그런데 금자 할머니 아들은“이러다가 산 사람부터 죽겠어요”라며 아버지 걱정부터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족마다 분위기가 다르니 그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호스피스 첫 상담에서 “환자의 인생을 이야기해주세요”라고 꼭 물어본다. 왜냐면 환자의 의학적 상태야 보호자한테서 듣는 것보다 의사소견서 한 장이 더 명료하고 상세하기도 하거니와 호스피스는 말기 암의 종류가 아닌 환자가 어떤 인생을 살아 왔는지에 따라 많이 달라지기 때문 이다. 정선 카지노에서 전 재산을 날려버린 후 이혼당한 말기 폐암환자의 마지막과 84살까지 별 탈 없이 곱게 살아온 말기 위암 할머니의 죽음은 다르기 때문이다. 인생의 마지막 병동에는 살면서 말하기 쑥스러워 덮어 두었던 삶의 비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죽음 앞에 꺼릴 것이 뭐가 있을까? 나는 입원한지 한 달쯤 지나서 금자 할머니의 진짜 아들들에게서 할머니의 진짜 인생이야기를 들었다. 금자 할머니는 15년 전에 이혼을 했고 곧이어 지금의 남편과 재혼을 했다.
    지금의 남편은 폭력적인 전(前)남편과 달리 따뜻했다. 재혼한 남편에게도 아들과 딸이 있었고 최선을 다하면서 행복했다. 그러는 사이에 며느리도 보고 손자도 태어났다. 그러나 운명은 형편없이 잔인했다. 나이 60에 십이지장 바로 근처에 생긴 위암 덩어리가 손 쓸 겨를도 없이 위장을 막아 버렸다. 물이라도 마시면 구역질 때문에 식도가 찢어질 지경이었다. 금자 할머니는 하루 아침에 수술도 할 수 없는 말기 위암환자가 됐다. 그동안 금자 할머니는 단호하게도 전(前) 남편과 아이들 셋과는 인연을 끊고 살았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금자할머니의 친 아들은 15년 만에 어머니를 호스피스 병동에서 다시 만났다. 진짜 아들들은 금자 할머니의 제사를 자신들이 모시고 싶다고 했고 자신들을 버리고 간 어머니를 이제는 이해한다고도 했다. 나는 병동에서 찍은 금자 할머니의 참한 사진들을 진짜 아들에게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그들이 다녀간 뒤부터 나는 금자 할머니처럼 그녀의 아들 눈치를 봤다. 행여 말실수를 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웠다. 진짜 아들이 왔다는 등등의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았고 간호사들에게도 조심해달라고 부탁했다. 환자의 인생이 힘이 들면, 호스피스 주치의도 힘이 드는 법이다. 금자 할머니에게도 인생의 마지막이 왔다. 사망선언을 하러 임종실에 가보니 금자할머니 옆에는 지금의 남편과 진짜 아들 두 명이 따로 따로 서서 나지막이 흐느끼고 있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것인가? 삶의 끝자락에는 의심스러웠던 사랑이 단단해지기도 하고 철썩 같이 믿었던 사랑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기도 한다. 암 덩어리 때문에 얼굴이 심하게 부풀어 오른 젊은 여인 옆에서 환한 모습으로 함께 했던 젊은 남편도 있었고 죽어가는 부인이 무섭고 소름끼친다고 간호사에게 부탁 하고 밤에 집으로 몰래 도망가서 자는 남편도 있었다. 나는 이런 일을 한 번씩 겪고 나면 괜히 가만히 있는 남편을 속으로 의심하는 버릇이 생긴다. 과연 이 사람은 나의 마지막을 지켜 줄 것인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아직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진실은 삶의 마지막, 심연의 밑바닥에 있다. 그래서 호스피스의사는 “사랑이란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Premium Chosun ☜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dodo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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